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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4. 2020

1,000일이 넘도록

사랑해줘서 고마웠어

 "결혼식이 사랑의 증명이 아니며, 생의 남은 나날 동안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것이 결혼이다"라는 말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안타깝게도 1,0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해왔던 연애의 끝을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관계란 생명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생명체 중의 하나인 나무에도 적용이 된다. 나무를 자라게 하고 가꾸려면 양분과 햇볕과 물 등을 제공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상할 것이고, 너무 적게 주면 나무가 말라죽게 될 것이다.


 함께 가꿔왔던 사랑의 나무가 시들어버린 상황에 마주하고 난 뒤에야,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고 곱씹어볼수록 하임리히의 법칙(1:29:300의 법칙)처럼 수많은 문제점이 떠올랐지만 이미 늦었다. 강태공에게 질려서 떠났던 부인이, 입신양명하여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 강태공에게 다시 받아달라 말했지만 강태공은 그것은 엎어진 물을 다시 주워 담는 일과 같다고 싸늘하게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해서 영어로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It is no use crying over a split milk. 직역하면 쏟아진 우유를 앞에 두고 울어봐야 아무 소용없다(우유가 다시 담길 리 없다)는 소리고, 그게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이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해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고, 섣부른 확신은 재앙을 부를 것이기에 타인의 속 마음은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못해줬던 것들, 내가 놓쳤던 것들, 내가 실망시켰을 것들에 대해 너무나 미안해서 심히 먹먹해졌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괴롭다. 죄책감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본다. 그와 나는 많이 닮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와 나는 서로 사랑의 나무를 가꾸는 것을 서로를 믿는다는 이유로 미뤘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별은 벼락이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가물어가는 상황에서 물을 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지 않은, 전형적인 인재와 같았다. 


나는 그를 믿었을 것이다. 내가 소홀하더라도 그가 이 나무를 계속 가꿔주겠지라고. 

그도 나를 믿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그렇게 나무는 속절없이 시들어버렸다.

그와 나는 더 이상 같은 세계에 있지 않게 되었다.


 그와 나는 카톡 대신 별개의 메신저를 사용했었다. 이제는 절대 그 알림음이, 그 진동음이 다시 울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세계의 단절이다. 이별이란 그런 것이리라.


 비록 이별이 찾아오고 세계가 단절되었지만 그의 삶과, 나의 삶은 각각 계속되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나를 응원할 것이다. 나도 그를 응원한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멈춰버렸지만, 멈춤이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멈춰버렸기에 비록 과거형이지만, 감사와 사랑이 시제의 차이에 결코 빛 바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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