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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Feb 18. 2021

나는 반역자이로소이다

 내가 현재 다니는 회사에 있어서, 나는 반역자다. 나는 출근과 퇴근을 근로 의리를 지키는 충분조건이라 생각하며 언제나 최저한의 노동을 제공하여 실질적인 시급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바쁜 나날을 보낸다.


 사실 원래부터 반역자인 건 아니었지만, 광기 어린 사투의 나날 끝에 이렇게 변모하였다.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차차 이야기할 생각이다.


 광기 어린 자들의 지배를 받는 지역답게 이곳에는 인력이 늘 부족하다. 이번 주 N요일에도 직계 라인은 아니지만 탈주를 선언한 자가 있고 이 자 외에도 며칠 전에도 탈주자가 발생하였다. 즉, 원래도 빈혈상태였는데 회칼을 2회 정도 맞아서 피가 콸콸콸하고 있는 상태가 된 것과 비슷하다.


 직계 라인은 아니지만 N 년을 같이 일한 사람들이었기에 어느 정도 면목은 없었지만, 마주쳤을 때 직접 이야기를 해보니 더욱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에 탈주를 결심한 자의 경우 나에게 감사함이 크다고 이야기하길래 무슨 말인가 하고 들어 보았다. 이 무리에 들어오고 나서 1달 정도 되었을 때 내가 다닐만한지에 대해 물어봤다고 하였고 그것이 꽤 격려 아닌 격려였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러고 다니는 편이기도 했지만 잊고 있었던 일이고, 나 살자고 챙기지 않았던 것이 명백하기에 그런 감사의 말을 들을 자격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탈주를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사실 작년에 야심 차게 물 들어온다고 노 젓는다고 도전했지만 역시나 말아먹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제조업인데 물건을 만드느라 고생은 했지만 판매에 처참하게 실패했었다.


 그가 말하길, 힘들게 일하더라도 격려와 응원이 있었으면 힘을 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점이 아쉬웠다고 하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데 스스로가 소모품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는 현타를 심하게 느낀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하였다. 물론 이곳은 급여도 엉망이고 프로젝트도 거나하게 망해서 상여도 없었기에 표면적으로 금전적인 이유를 내게 말할 수 없었을 수도 있지만, 언제나 이 곳의 내로라하는 반역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급여나 상여보다 중요했던 것은 그런 격려와 응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입사하고 1달 뒤에 들었다는 그 지나가는 말 조차도 계속 기억하고 있던 사람이 하는 말이니 말이다.


 급여나 상여가 없는 것도 큰 문제였지만, 최근 퇴사자들의 경우 그들에 대해 제대로 존중하고 격려하지 "않았던" 것이 꽤 크게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의아하게도 직계 관계자들이나 두목의 경우 유체 이탈된 상태로 이런 사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이나 수치를 느끼지 않는 것이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보다도, 정말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생각을 한다.


 오다 에이이치로의 만화 [원피스] 초반에, 주인공의 동료 검사 "롤로노아 조로"가 자신이 목표로 하는 "세계 최강의 검객"이라는 "매의 눈"을 만나서 처참하게 패배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과 세계 최강의 격차를 절감했지만 패배를 각오하고 도망가지 않으며 "매의 눈"에게 "등의 상처는 검사의 수치"라고 말하고 가슴에 일격을 받으며 패배하게 된다.


 원피스의 이 일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부하든 동료든 자기가 뜻하는 바가 있어서 퇴사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들이 직장에서 상처 입고 다닐 수 없어서 나가는 것이라면 그런 사람의 존재나 숫자는 그 위에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크게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과 맞닿아 있다. 위에 선 자라면 이런 일을 막을 책임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 나가는 사람들의 직접적인 상사는 아니어서 애매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그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아마 전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마음을 어느 정도 이야기해준 사람과 얼마 전 나간 사람은 원래 친분이 있었으니 곧 전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이들의 동료이며 비슷한 상황에 처한 직원에게 뒤늦게나마 말했다.


"나는 정말로 여러분들이 이 회사에 과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팩트이다.


 직원들에게 상처와 좌절을 주는 회사 따위 진심으로 따를 생각은 없다. 회사가 나를 이용하듯이, 나도 회사를 이용할 뿐이다. 우습게도 그런 것이 반역이라면 나는 반역자일 것이고, 기꺼이 그런 정의를 받아들이기에 나는 반역자라고 자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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