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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May 12. 2021

우정에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나는 어제 중/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가 모처럼 이번 주 내내 휴가라서 그가 아직도 살고 있는 마을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퇴근 후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아직도 사는 곳, 즉 내 유년기의 마을로 향했다. 도시 사람들에게 고향이 없다고 하지만, 아마도 내 고향이라 할 곳은 저곳이기에 생각보다 바뀌지 않는 풍경을 보며, 다소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도 사교 범위가 좁고, 나도 사교 범위가 좁기 때문에 공통의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는 없지만 오랜만에 본 것이니 자주 언급되곤 하는 그의 친구들이자 나의 동창들(나는 그들이 누군지는 알지만, 딱히 그들과 교류하지 않는다)과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곧 잘 지내고 있는 사이도 있지만 최근에 서먹해진 동창도 있다고 했다. 어찌 보면 나보다 친하다고도 여길 수 있는 오래된 친구일 텐데(아마 그들은 초등학생 정도 때부터 친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찌하여 서먹해졌을까.


 자세한 것은 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생략한다. 어찌 되었건 서로 힘들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소하지만 그냥 넘기기 껄끄러운 부분이 앙금이 된 것이었다. 잘잘못을 가릴 것도 아니긴 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그의 성격상 상당히 싫어할 법한 행동을 그의 친구가 한 것이라서 다소 의아했다. 물론 그들은 엄청 오래된 세월 동안 교류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앞으로의 우정에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을 위해 지금도 거주하는 자들이 많은 곳이 내 유년기의 마을이기에 상당수는 자녀의 교육이 끝나면 이사를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나 조차도 학교는 계속 그 마을이었지만 통학을 하던 위치는 다소 멀어진 것, 이사를 간 것이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대략 그 시절부터 동네 친구의 개념은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 성인이 되고 각자의 장소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되어갔다.


 어렸을 시절에야 하루 대판 싸워도 다음 날이면 다시 만나고 하며 화끈하게든 소심하게든 화해를 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30대가 되고 각자의 삶에 치이듯 살다 보면 추억도 우정도 어느 정도 주판알 굴리듯이 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서먹해져서 보지 않게 된 학부시절의 지인이나 현재 직장에서 절교를 한 채 서로 외면하는 중인 직장 동료를 떠올리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관계라는 것은 생명이 깃들어 있다. 과거에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관계를 이루었다 해도 그것을 돌보고 가꾸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 아무리 과거부터 좋은 관계였더라도 서로 조심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 약간의 실수나 과오가 쌓이면서 관계는 이내 무너지고 만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관계는 오래되었거나 소중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형태는 달라도 무너지는 방식은 비슷하다. 소중한 관계이든 아니든 부서지는 것은 비슷하다. 다만 누구나 착각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은 관계를 대하듯 소중한 관계를 대한다고 해서, 소중한 관계가 절대 더 튼튼할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잘 되진 않지만 가족 간에도 예의, 연인 간에도 예의, 친구 간에도 예의, 지인 간에도 예의, 동료 간에도 예의, 모르는 사람 간에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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