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두목분석

두목과의 흉한 일화들

by 김독준

나는 지금 몇 년째 다니는 여기가 첫 정규직 생활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돌이켜보았기에 더욱 역겨운 일들이 있었다. 지분이 가장 큰 두목에 대한 이야기다.


내 두목은 첫인상 부분만 따져봤을 때는 썩 나쁘지 않다. 뭔가 사람이 적어도 악인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좋아 보인다고 하기에는 이미 내 마음속에서 너무 흉측하기에 용납되지 않는다. 쨌든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바로 불신과 경계를 사진 않을 듯하다. 하지만 첫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 존재를 보고 꽤 통렬히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나의 글감의 소재를 많이 제공해주는 존재이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상당히 웃긴 일이다.


#1 태업 혼의 시작

나는 태업을 사랑한다. 이것은 두목의 세뇌가 정반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게 조언이랍시고 "신입은 3개월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해야 된다"라고 했다. 출근은 어찌어찌 지각은 없게 했고(절대 새벽같이 나오진 않았지만, 1등은 꽤 했을 것이다), 퇴근은 어지간하면 가장 나중에 했던 것 같다. 종종 지가 말한 대로 하고 있는지 물어보긴 하던데, 딱히 걔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위에서 첫인상 이야기를 했듯이 아직 본색을 모를 때였으니 그럭저럭 수행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쓸데없이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은 정말 쓸데가 없다"는 점이었다. 돈을 포괄임금으로 주니 오래 죽치고 있게 하는 것이 투입한 임금을 뽑아내는 길이라 생각하나 본데, 절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때의 반동이 커서 그런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며,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도 여유로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내가 된 것은 저때의 억울함을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 두목과 기적의 수학

지금은 두목이나 나나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지만, 몇 년 전에는 두목이 있던 지역과 내가 근무하던 지역이 달랐다. 자연스럽게 어쩌다 두목을 마주치는 나날이었는데, 재수가 없게도 마주쳤다. 그런데 그때 들려준 기적의 수학을 잊을 수 없다. 대뜸 미안하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때는 아직 착했기도 하고 해서 받아치기 대신에 무슨 일로 그러시냐고 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마 죽기 전에 주마등으로 그 광경이 스쳐 지나가겠지. 아래 문장은 아무리 기억의 왜곡이 있다고 해도 당시 들었던 것과 거의 같다고 자부한다. "내(두목)가 눈물 쏙 빠지게(이 부사가 정말 킬포였다. 다 틀려도 이 부분은 정말 맞다) 혼내면서 일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못 그래서 미안해. 그렇게 배우는 1주일이, 여기서 나 없이 지내는 1달이랑 효율이 같아" 얼마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겁니까 두목님 당신은 도대체. 지금 생각하든 그때 생각하든 슬슬 당신의 위선적인 모습을 알아가던 시기였기에 "아; 네;" 하고 말았지만, 몇 년 뒤에 들어온 자기 자식이나 조카한테는 한 없이 관대한 걸 보니 수학이라는 게 누구에게는 맞고, 누구에게는 틀린 것이었나 의아하다. 자기 자식이나 조카들의 폐급 상태를 수리하기 위해 내가 jiral을 하고 있지만 글쎄, 아빠&삼촌의 말은 좀 더 잘 듣지 않을까 싶다.


#3 당신의 말은 말이 아니다. 막걸리다.

이 일화는 시점상으로 1번, 2번보다는 뒤였을 수도 있는데, 모두 다 입사 후 6개월 정도 내에 있던 일들이다. 이때가 완벽하게 두목을 적성 인물로 판별했던 사건이 있었다. 1번이든 2번이든, 대충 두목이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일 텐데, 이러면서 또 자기 지식 자랑 같은 것, 같잖은 수준의 인생철학 같은 것은 떠들기 좋아했지만 아무튼 식별을 잘 못했다. 내 첫 직장이 여기이니까. 경험도 부족했고. 2번에서 이야기했듯이 두목이랑 나랑 근무하던 지역이 다르던 때에, 두목이 있는 지역에 가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갔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광기에 잠식되기 전이라서 가면 돌면서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두목이 나를 불렀다.

다닌 지 몇 개월 정도 되었을 때인데, 두목은 애로사항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였다. 사실 그때 당시 내가 대적해야 했던 최대의 빌런이 두목의 부인이자 임원이었다. 실세로까지 불릴 만큼 권한이 셌고 특히 지출이 발생할 부분에 대해서 간섭이 심했는데, 나는 말단인지라 사람들이 신청하는 물건을 빨리 사줘야 하는데 빌런이 뭉개다 보니 나는 중간에 샌드위치가 되는 신세였던 상태였다. 사실 이때 두목이 내게 한 말은 너무 거나한 자폭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되는 것이, 이미 몇 년 전이라 흐릿하지만 당시에도 딱히 개선을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어서(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애로사항이긴 하지만 그냥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때 두목이 내게 한 말이 걸작인데, 그 이전까지는 어렴풋하게 느낀 위화감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언제나 처음엔 거창한 말로 시작하는데 중 후반에는 막걸리가 되는 것을 어렴풋하게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이때 내게 조언이라고 한 말이 이 존재에 대해 적성 인물로 판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두목의 명언은 아래와 같다: "다른 사람이 와서 일이 더디다 하는 것을 윗사람 탓(여기서는 자기 부인)을 하면 사람들이 회사를 싫어하게 되고 이것은 회복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와서 일이 더디다 하는 것을 자기 탓(여기서는 결국 나)을 하면 사람들이 나는 싫어하겠지만 회사는 싫어하지 않게 된다." 그럼 내가 욕받이 돼서 당하는 고통이나 수난은 어쩌라는 것인지? 이때도 "눈물 쏙 빠지게" 운운하던 날처럼 적당히 아; 네; 하고 넘어갔지만 그 사건들을 통해 두목은 내게 있어서 완벽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두목과의 일화는 구두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는 썰을 많이 풀었었지만, 그것은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기에 이렇게 글로 남겨두는 것도 언젠가 내가 집필하여 완성하고자 하는, "두목의 나라(=회사)의 흥망성쇠에 대한 것"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뭐, 두목이 내게 준 흉측한 일화들을 통해 어느 정도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특성들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게 되었던 점은 내 인생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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