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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n 08. 2021

맞지 않는 자와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

이제는 잘 알겠다

 몇 년 동안 교류를 끊은 채로 살던 지인(친구였던)과 몇 개월 전에 다시금 교류를 시작했었다. 당시 교류를 끊었던 것은 내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나는 그 지인의 행동이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굳이 그것을 명료하게 전달할 필요는 없으니 각자의 삶이 바쁘다는 명목 하에 "Out of sight, out of mind"를 했던 것이다. 이 관계가 잠시나마 수복되었던 이유는 연결점 역할을 하는 친구의 중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지인(A라 하자) 외에 또 하나의 지인(B라 하자)이 있는데, 총 4인의 모임에서 나는 이 지인 A와 지인 B가 각각 싫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관계 수복을 위한 연결점인 친구가 이 4인 체제에서의 핵심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가 없이는 구심점이 없어지는 관계(이 친구를 중심으로 모이는 관계)였고 실제로 친구가 개인 사정으로 바빴을 때 4인 모임은 와해가 된 상태였다. 그나마 다시 교류하고 있는 A와는 달리, B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B는 정말 싫었다).


 지금 다시금 연결점 역할의 친구가 개인 사정으로 바쁜 상황인데 A가 내 신경을 대차게 긁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로서도 잘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 시각으로 상당 부분 지나친 언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 이글거리는 분노를 최대한 단순한 화염보다는 마음의 화력발전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다행히 화를 다스리기는 했지만, A에 대한 내 평가는 다시금 짜게 식었다. 그리고 매우 큰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과거에 유사한 사건들 때문에 과거의 내가 A와의 교류를 끊었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안나 카레니나의 원칙"이라는 것이 인상 깊었다. 첫 문장에서 통찰력을 따온 것인데, 이 부분을 교우 관계에 적용시켜서 내 생활에 써먹으려 한다. 결국 나도 내 기준에 대다수가 합격점이라도 어느 한 두 가지가 낙제점이라면 최종 결과는 탈락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어지간하면 변하지 않으며, 각자의 자의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을 맞추라 강요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결국 조심스러운 각자의 기준으로 기준에 맞는 사람과의 관계를 다지게 되는 듯하다. 이 기준을 넘어서는 사람과는 좋게 지내기 어렵고, 결국에는 비슷한 일이 재발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관계는, 극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 결과로 수렴할 것이다.


 연결점 역할의 친구가 바라는 바가 있으니 어느 정도 합을 맞춰줄 필요는 있겠지만, 그 외 부분에서의 교류에 대해서는 상당히 물러나는 자세로 입장을 선회하였고, 지인 B의 경우 A보다 나와는 맞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들(친구, A)의 중재에 대한 노력은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고, 내 안일했던(B와 다시 교류하는 것이 긍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보류가 들어갔다.


 지금 연애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통찰력을 얻은 부분은 어떤 한 요소에서 문제가 되어 결별했던 연인들이 다시 만나게 된들, 그 요소들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원인이 문제였고 그것이 바뀌지 않는 한 연인은 다시 결별할 것이고 친구에서 지인, 무관심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던 요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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