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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l 12. 2021

좋은 회사에서 잘해볼 자신도 없지

#1

   비록 좋은 회사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좋은 회사가 어떤 곳일까 하는 부분에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좋은 회사에 간다고 한들 잘할 자신은 없다. 내가 떠올린 비유의 대상은 경쟁자들의 수준이 높은 대학이다. 좋은 회사는 다녀본 적 없지만 그런 대학은 다녀봤으니까. 나는 경쟁자들의 학점 자판기였다.



#2

   종종 웹서핑을 하다 보면 좋은 회사에 대해 뭔가 아름답고 부럽기만 한 것들이 가득하게 적혀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것에서 공포를 느낀다. 대충 뭐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만 일할 것도 없고 "목표치의 실적만 내면" 재택을 하든 주에 몇 시간만 일하든 되고, 회사에 게임 기기니 당구대, 농구장, 풋살장 등의 시설이나 임직원이면 무료로 제공되는 펍이나 카페라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참 많다. 하지만 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3

   저 상황을 대학으로 치면 입사는 입학으로 대응될 수 있고, 실적은 학점이라 대응할 수 있다. 좋은 곳에 합격하면 좋지만 개학하면 바로 무한경쟁의 시대가 아니겠는가. 긴 세월의 수험을 준비하면서 억눌러왔던 것을 마구 해소하자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공부를 별로 안 해도, 심지어 수업을 들어가지 않아도 시험이나 과제를 잘 처리한다면 그 사람은 좋은 학점을 받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기 때문에 저런 사람들을 따라 한다면 낮은 학점을 받거나 학사경고를 받을 것이다.



#4

   나는 좋지 않은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내 실질적 성능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는 식견이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험으로 파악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른다. 그렇기에 알곡과 가라지가 수확하기 전까지 가려내지를 못한다. 나는 가라지에 속한다. 나는 언제나 내가 사장이라면 숙청 0순위가 바로 나일 정도로 자신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물론 최대한 혼신의 연기를 통해 숙청당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만큼은 부지런하게 하고 있다. 사실 자존심이 있지 내가 나가면 나갔지, 쫓겨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5

   좋은 회사를 가는 것 자체는 좋은 대학 입학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입학은 끝이 아닌 시작이고 추억도 소중하겠지만 학사정보시스템에 보관되는 것은 그런 무형의 것이 아닌 평량평균이다. 나와 같은 곳에 있다가 좋은 회사를 옮겨 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적어도 더 받게 된 것만큼 더 일하거나, 대개는 더 많이 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급여를 더 받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일한다는 뜻이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닌 각 분야의 최고 수준의 일터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증명할 기회도 넉넉하지 않을 것이며, 증명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적을 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엄밀히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곳은 무서운 곳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있는 곳은 참으로 알량하고 하찮지만 평온한 곳이다.



#6

   그래도 기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왕 미리 사고 실험을 해본 것이 있다면 이것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냥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능사는 아니다. 좋은 회사에서도 확실히 두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옮기기 전에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고, 옮겨가서도 한동안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될 것이다. 사실 그런 각오가 부족해서 계속 이런 곳에서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지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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