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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n 28. 2021

발현하여 증명하라

#1

   몇 년 전에 취업을 하자면 어학 점수가 있어야 했었다. 토익 점수를 따야 했고, 기왕이면 고득점이면 좋지 않겠냐는 것이 모두의 생각일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어떤 근사한 계획은 존재했고, 그것만 따라가면 대충 900점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다만 이 작전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성실하고 꾸준함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시간 관리의 심판자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 자유라고 쓰고 방종이라고 읽는 생활태도를 가진 내게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 근사한 계획이 머리에 있기는 했으나 그것을 구현해내지 못했고, 처참한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토익 고득점이라 내세울 정도의 점수도 아닌 그야말로 완벽하게 어중간한 점수를 받았고 이후에도 몇 번 그 점수대에 들어가는 점수를 반복해서 받았다.



#2

   이 경험이 내게 좀 많은 깨달음을 줬었다. 이 경험이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라는 적당한 변명을 완벽하게 깨부쉈기 때문이다. 저기서 우리 애라 칭해지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적정한 계획,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성공적으로 실행해내지 못하면 도루묵이다. 공부 머리는 좀 있었고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실천해내지 못했기에 어중간한 결과를 받아 들게 된 것이다. 또한 뼈저리게 느낀 것은 결국 결과를 낸 결과만이 내 실제 역량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토익 950점을 받을 수 있는 공부 머리, 950점을 받을 수 있는 일정 기간의 공부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해내지 못해서 받은 그 어중간한 점수가 내 실력인 것이었다. 내 머리가 토익 950점 이상을 받을 수는 있었다지만 그것을 현실화하지 못해 나온 내 그 어중간한 점수, 그게 내 실력이었을 뿐이다. 이 깨달음 이후에는 꽤나 담담해졌다. 공부머리 자랑이나 그런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발현하지 못하면, 내 능력이 아니다.



#3

   이런 깨달음 이후에도 방종의 시기는 길고 길었지만 이제는 좀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 정도는 될 것이다. 회사 다니면서 몇 년 간 찌운 살을 운동을 습관화하여 다 반납했으니 나는 체중 관리에 대해 발현하여, 증명했다. 방법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사실 살을 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매일 2시간씩 실내용 자전거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가져오는 여러 결과물 중에 하나가 체중 감량이었을 따름이다. 지금은 정체기가 되었지만, 한동안은 계속 적정으로 생각했던 체중의 방향으로 꾸준히 우하향하였다. 이제는 좀 더 엄격한 식이관리라든지, 방법을 세련되게 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는 그저 "맨날 운동하기"라는 이 단순한 한 가지로 증명이 가능했다는 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4

   장르는 다르지만 대개 조언들이란 비슷비슷하고, 당연한 소리이고,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인생을 바꾸는 것들은 그런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매일매일 이뤄질 때만 일어난다. 천재들은 모르겠지만 일단 평범한 사람들이 변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본다.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을 매일매일 해나갈 때만 변화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건강을 유지하려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술과 담배를 끊고 기름진 음식, 소금기 있는 음식, 서구식 식습관을 하지 않고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으면 된다. 대략 그 어떤 건강 관련 글이나 프로를 보더라도 다 이런 내용이다. 뭐 가끔 물건을 팔려고 "무엇이 건강에 좋다~" 하면서 소개하는 경우도 많지만, 저 진부한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건강에 좋은 것만 챙긴다 한들 사실 건강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저런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특별해 보이는 행동(어떤 음식을 즐겨먹는다든지)보다도 그냥 저 사람들의 생활태도가 진부하지만 당연한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어떤 음식 정도야 뭐 약간 거드는 정도일 뿐이다.



#5

   정답을 알고 있더라도(내 경우 토익 공부법을 알고 있었던 것), 그 방법을 제대로 갈고닦지 않으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이미 많이 알고 있다. 부모님에게는 어떻게 하고, 형제자매간에는 어떻게 하고, 사회에서는 어떻게 하고, 친구 관계에서는 어떻게 하고,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경력 관리는 어떻게 하고,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내 신조 중 하나는 "인생에 늦은 때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없다고 하기엔, 몇 가지 사례들이 떠올라서 부사가 추가되었지만, 그래도 거의 없다. 이미 머릿속에 잘 알고 있는 것들, 진부하고 당연한 것들을 정말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지? 실천하고 있지 않다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르는 것이고, 할 줄 모르는 것이다. 능력이 없는 것이다. 내 토익 점수 사건 때처럼. 토익은 실패했지만 체중관리는 성공했던 나에게 있어서 영어 공부는 못하는 것이고, 체중 관리는 할 줄 아는 것이다. 성패는 결국 당연한 것들을 해나갔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 갈렸다.


   머릿속에만 알고 있는 지식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뤄내는 것만이 증거이다.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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