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일기 7.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방비엥은 이제 안녕
블루라군에서 두 시간 정도 놀다가 다시 툭툭을 타고 방비엥 거리로 돌아왔다. 툭툭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인 팬케이크. 나는 이 팬케이크의 맛을 아직도 모르겠으나 J와 M, 특히 M은 엄청 맛있어했다. 요즘도 가끔가다 라오스 여행을 화두로 삼을 때가 있는데 M의 입에서는 꼭 이 팬케이크가 나온다. 마치 내게 땡모반 같은 존재인 건가.
씻고 짐을 챙기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 라오스에서 매 순간 감탄했지만 이때만큼 큰 감탄을 했던 순간은 없다. (매 순간 감탄에서 블루라군은 제외. 블루라군 보고하는 감탄은 어떻게 하는 거냐니까?) 라오스에서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꿈속에 있는 것 같아”였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골목은 꿈 그 자체였다. 해지는 하늘의 색과 피어오르는 연기와 그 속의 사람들까지. 여행 후 방비엥을 떠올리면 꼭 영화 세트장 같았는데 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서인 걸까? 모르겠다. 그냥 좋다.
이 호텔도 영화 세트장 속 건물 같지 않은가? 「라라랜드」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세트장. (신기하게도 이 두 영화 모두 내가 싫어하는 영화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싫어한다.)
우리는 오전에 체크아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런트 직원의 배려로 호텔 맞은편 게스트하우스의 공용 샤워실에서 씻을 수 있었다.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 같거나 친분이 무척이나 두터워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그 직원이 챙겨주지 않았다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슬리핑 버스를 탔응 테지. 씻고 나와서 카메라 배터리도 충전하고 짐도 정리했다. 그렇게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할 준비를 마치고 나니 해가 지고 있었다. 라오스 그 어디에서든 일출과 일몰은 끝내줬다.
씻고 나니 또 허기가 져서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하지 않던가. 몸이 지쳐서인지 한식이 생각나서 한식당을 찾다 들어간 <수끼>. 처음엔 다른 한식당에 가려했는데 그곳은 예약제라 별 수 없이 간 곳이었다. 가게 앞에서 바비큐를 굽던 주인아저씨가 고기는 무한 리필이고 된장찌개까지 준다고 엄청 어필해서 겸사겸사 들어간 건데 별로였다. 바비큐는 과자 마냥 바삭했고, 삼겹살은 온통 비계뿐. 주인아저씨의 말대로 계속 고기를 리필해주고 밥도 끝없이 줬지만 돈에 비해 맛과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 한 사람당 60,000낍이라는 (라오스 기준으로) 엄청난 거금을 주고 들어간 건데 뭘 먹는 건지 참. 먹다가 도중에 나왔다.
이미 버린 입맛, 또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슬리핑 버스 픽업까지 시간이 꽤 남아 식당 대신 카페를 찾았다. 카페보단 바 bar가 많은 방비엥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카페의 뒷문으로 나가니 야외에도 자리를 마련해두었길래 음료를 시키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카페 문을 닫을 준비를 하더라. 우리도 나가야 하나 했는데, 쿨하게 콘센트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실내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아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었다) 문 닫는 것과 상관없이 더 있다 가라 했다. 더불어 카페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그쪽 직원에게 말도 해주었다. 그 덕분에 슬리핑 버스를 타기 전까지 분위기 좋게 또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직원은 우리에게 콘센트라고 알려준 것을 우리는 야외 조명의 전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슬슬 버스 탈 시간이라 조명을 끄려다가 그것이 콘센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또 나갈 때 조명 꺼달라는 줄 알았지 뭐야.
슬리핑 버스를 타다
어제 방비엥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루앙프라방으로 떠나는 슬리핑 버스를 예약했었다. (예약하는 곳은 많은데 어느 여행사에서 예약하든 결국 같은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떠나기 때문에 그냥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예약하면 된다.) 슬슬 픽업 시간이 되어서 슬리핑 버스를 타기 위해 돌아온 프렌즈펍. 오늘도 역시 「프렌즈」를 틀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을 딱 맞추어 대기하고 있었으나 이곳은 라오스. 30분이 넘도록 우리를 픽업할 툭툭은 오지 않았다.
라오스의 시간만큼 기다린 뒤 겨우 툭툭을 탔다. 버스 정류장으로 갔더니 정류장 맞은편에 이렇게나 예쁜 간판의 펍이 있네.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이 펍의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하여 큰 기대를 안고 갔다. 아, 나는 블루라군에서 얻은 교훈을 잊고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펍 자체는 간판만큼 마음에 들었지만 직원들이 기분 나빴다. 펍 밖에 서있던 직원들이 우리에게 집적대는 행동을 취했는데 굉장히 불쾌했다. 왜 이토록 예쁜 공간에 그토록 저질스런 사람들이 있는 걸까. 그들에겐 늘 하는 장난일지라도 당황스럽고 기분 나빴다. 애초에 그런 장난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여차 저차 해서 탄 슬리핑 버스! 인터넷에서 본 사진 속 슬리핑 버스는 우등 고속버스의 의자가 확 젖혀진 형태로 훨씬 쾌적한 느낌이었지만 우리가 탄 버스는 후줄근했다. 철제 프레임으로 짜인 2층 침대가 버스 앞부터 뒤까지 양옆으로 쭉 이어져 있고 철제 프레임 위에 아주 얇은 매트리스만 얹혀 있었다. 심지어 버스 이용객이 많다면 한 칸에 최대 둘은 들어가야 해서 나와 J는 같은 2층 침대를 이용했다. 거기에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나눠준 담요를 안 덮을 수가 없었는데 그 담요도 냄새가 나서 찝집했다. 생각보다 더 열악했던 슬리핑 버스.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 및 하루치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한터라 그대로 곯아떨어져서 악명 높은 낭떠러지 구간을 아예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라오스 사고를 검색하면 거진 슬리핑 버스가 낭떠러지를 지나갈 때 일어났는데, 내가 만일 잠들지 않았더라면 그 구간을 지날 때 벌벌 떨며 기도란 기도는 다 했을 거다. 루앙프라방에 도착해서 1층에서 잔 M의 말을 들어보니 M은 슬리핑 버스에서 잠을 자지 않아서 그 구간을 다 보았다고 한다. 심지어 M은 낭떠러지 쪽 침대였다는데 얼마나 살벌했을고.
다시 타라면 정말 많은 고민을 할 것 같은 슬리핑 버스. 돌이켜보면 지금이야 추억이지만 그땐 춥고 찝찝하고 무서웠다. 우리 바로 앞 버스를 탄 사람들은 이 짐칸 같은 버스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본 그 버스 같아 보였는데 복불복인가 보다. 슬리핑 버스, 우리는 불!
2015년 11월 28일
캐논 파워샷 g7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