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일기 2. 주말에만 갈 수 있는 짜뚜짝 시장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어느 하나 이거다 싶게 맛있는 건 없었으나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부족하진 않은 무난한 식사. 우리가 조금 늦게 내려가서 그런건지 없는 메뉴가 좀 있었다. 오렌지주스도 맛있게 마시다가 리필하러 가니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게 조금 아쉽지만 스크램블도 즉석으로 해주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아침을 먹고 올라와 나갈 준비를 했다. 한국에서도 아침 준비 단계 중 화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5분도 되지 않는 우리가 외국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아침 중 제일 중요한 준비는, 공동 경비와 개인 경비를 오늘 쓸 만큼만 꺼내기.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자 유일한 일정은 짜뚜짝 시장이었기에 개인 경비를 두둑하게 챙겼다.
여행 중 번외 편 #여행경비
첫 여행에서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여행을 할 때 무조건 공동경비부터 걷고 시작한다. 아예 환전하기 전부터 한화를 걷어 환전을 할 때도 있고, 각자 환전 후 경비를 걷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경비를 걷는 건 일 순위로 하는 일이다. 보통은 환전한 돈의 3/4 정도를 공동경비로 내고, 1/4만 개인경비로 갖고 있는다. 여행지에서 마그넷이나 엽서 정도를 제외하고는 크게 쇼핑을 하는 편이 아니라 딱히 개인경비를 쓸 일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나와 여행을 하는 친구들의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특히나 나와 여행을 자주 하는 P는 여행 시 지출 스타일이 나와 굉장히 비슷하다.
내가 공동경비를 가장 먼저 걷는 가장 큰 이유는 구질구질하지 않고 편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야 계좌이체로 1원 단위까지 칼 더치가 가능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계산이 귀찮기 때문에 칼 더치를 하지 않고 그냥 큰 단위로 끊어버린다) 해외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화폐 단위도 달라 지기 때문에 계산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여기에 만약 식당에서 서로 다른 메뉴를 시켰다면? "너는 12,000원짜리를 먹었고 나는 10,000원짜리를 먹었으니 너는 12,000원을 내." 하지만 분명 쟤 메뉴를 나도 먹고 내 메뉴를 쟤도 먹었을 텐데. 쟤는 음료수를 추가해서 먹었고 나는 먹지 않았으니 음료수 값을 빼서 식사값을 청구한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구질구질해서 싫었다. 뭐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계산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서 공동경비를 걷는다. 주문할 때도 먹고 나서도 구질구질함 없이 쿨하다. 거기다 계산할 때 공동경비를 가지고 있는 나만 조금 머리를 쓰면 되니 모두가 편하다.
쓰고 보니 공동경비를 걷는 이유가 더 구질구질한 것 같네.
호텔에서 BTS 타러 아속역 가는 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길거리 노점상이 서있다. 주로 쏨땀과 팟타이 등을 판다.
호텔에서 아속역까지 툭툭으로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한다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오늘은 한 번도 못 탔다. 뭐 그렇지만 우리가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게 좋아 어지간히 피곤한 게 아니면 툭툭 생각이 안 나긴 했다. <골든 튤립 맨디슨>에서 아속역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어제 픽업 차량을 타고 들어오면서 길을 봐 두었기에 크게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었다. 크게 어려운 길도 아니었고.
(내 멋대로) 방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속역은 수쿰빗역과 이어져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전철처럼 환승할 수 있는 같은 노선은 아니기 때문에 개찰구 밖으로 나와서 이동해야 한다.
tip. 아속역에서 짜뚜짝 시장 가는 법
아속역에서 BTS를 타고 종점인 모칫역에서 하차. 외국인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된다지만 그들은 사방으로 다 나간다. 모칫역 1번 출구로 나와 왼쪽에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짜뚜짝 시장이 나온다.
태국에서 가장 큰 주말시장
짜뚜짝 시장(혹은 제이제이 마켓)
짜뚜짝 시장에 가는 여러 방법 중 우린 모칫역 1번 출구로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개찰구를 나와서 1번 출구 계단까지 사람들로 꽉 차 계단을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을 위에서 둘러볼 수 있었다. 짜뚜짝 시장을 가기 위해선 이 공원을 거쳐가야 했는데 공원의 분위기가 진짜 좋았다. 가본 적은 없지만 사진이나 영화에서 보던 유럽 속의 공원 같았다. 돗자리를 깔고 호수 근처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거나 데이트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현지인도, 외국인도 모두 자연스럽게 공원에 어우러졌다. 나도 호수 근처로 가고 싶어 잔디밭으로 들어가던 중 P의 발이 젖은 흙더미에 빠져 다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근처에 화장실이 있어서 발을 씻을 수 있었는데 그 상황이 어찌나 웃기던지. 공원은 돌아가는 길에 다시 보기로 하고 짜뚜짝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짜뚜짝 시장을 봤을 때는 별로 넓지 않네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시장은 정말 넓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짜뚜짝 시장을 다 둘러본 줄 알았는데, 두 번째로 방콕에 갔을 때 미처 가보지 못했던 짜뚜짝 시장의 다른 구역을 가고는 정말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사람들이 짜뚜짝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냥 사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봐 둔 가게를 다시 찾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짜뚜짝 시장의 어플을 깔라고 추천하는 거였구나. 괜히 태국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블로그나 인스타에서 보던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쇼핑을 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꽤 샀다. 살 때도 그랬고 지금도 생각해보면 이곳 태국이나 동남아가 아니면 입지 못할 옷들이지만, P의 말처럼 나는 또 태국에 올 것 같으니 괜찮다. 긴 바지 한 벌과 민소매 두 벌, 점프수트 한 벌, 수영복 한 벌 (수영 안 할 것도 같은데 괜히 샀다), 부채와 파우치 그리고 마그넷까지. 두어 시간을 계속 돌며 쇼핑했다. 이렇게 다 사도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얼마 안 되는데 살 때는 첫날부터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며 왜 이렇게 벌벌 떨었는지. 나름 흥정한다고 했는데 사실 크게 하지도 않았다. 일단 던져보고 그다지 갖고 싶은 게 아니면 돌아 나오거나 진짜 갖고 싶으면 그냥 샀다. 그래 봤자 몇백 원인데.
한바탕 쇼핑하고 나와 발견한 땡모반. 땡모반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시선으로 쫓았다. 그리고 근처를 배회하다 발견했다. 역시 땡모반은 동남아!
땡모반을 먹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져서 어쩌면 짜뚜짝 시장에서 가장 유명할지도 모를 빠에야 집에서 빠에야를 먹었다. 모칫역에서 오면 짜뚜짝 입구에서 바로 보인다. 저 아저씨 앞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있거든.
이곳은 아저씨 때문에 유명하지 맛 때문에 유명한 집은 아닌 듯했다. 옆에 있던 한국인도, P도 빠에야가 짜다고 했고 내 입맛에는 밍밍했다.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없는 이맛도 저 맛도 아닌 맛. 그러나 함께 마신 맥주의 맛은 좋았다. 사실 맥주가 맛없는 곳이 어디 있겠어.
모든 쇼핑을 끝내고 다시 짜뚜짝 공원으로 가는 길.
왁자지껄한 시장과는 다르게 한적한 짜뚜짝 공원. 코앞인데도 이토록 분위기가 다르다니. 짜뚜짝을 다 돌고 나올 때쯤엔 더위와 사람들에 지쳐서 뭔가를 더 할 여력이 없다. 시장에서 쏙 빠진 정신을 공원에서 추스르고 움직이는 것을 추천한다.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BTS를 타고 다시 아속역으로 그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쇼핑샷을 찍고 잠시 휴식 시간.
2017년 11월 18일
캐논 EOS 6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