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중국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현 Nov 14. 2018

물길 따라 꼬불꼬불, 수향 마을 시탕

#상해일기 1. 상해가 아닌 곳에서 시작하는 상해 여행


가자, 상해로


중국은 칭다오만 여러 번 다녀왔지 베이징이나 상해 같은 다른 도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칭다오도 티켓이 저렴해서 그리고 맥주로 유명해서 간 것일 뿐 다른 여행지들처럼 '저기는 꼭 가보고 싶어'란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다. 한때 8개월가량 중국어 공부를 했으면서도 중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칭다오를 다녀오고, 이번에는 상해에 가게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가 보고 싶다! P와 D 모두 중국은 별로 끌리지 않지만 디즈니랜드는 끌린다며 이번 여행을 함께 했다. 그렇다면 가자, 상해로!


출발하는 날 아침. 평소 여행 스타일을 돌아보면 우리는 비행 출발 시간에 딱 맞춰서 공항에 가지 여유를 두고 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휴가철에 딱 걸려서 공항이 붐빌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일찍 길을 나섰다. 10시 50분 비행기로 보통은 9시에 모였을 텐데 오늘은 8시에 모였다. 셀프 체크인을 하고 수하물까지 셀프로 보내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몸! 배가 고파 뭔가를 먹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얼핏 보는 출국 심사대 줄이 우리 예상대로 어마어마해서 일단 심사를 마치기로 했다. 먹는 건 그다음이야.

지루한 기다림 끝에 출국 심사를 마치고 친구가 부탁한 면세까지 찾고 나니 정말 등가죽과 뱃가죽이 붙을 만큼 배가 고팠다. 근처에서 빵을 팔고 있었으나 빵은 먹고 싶지 않아 전에 먹었던 소고기 김밥을 찾아 15번 게이트로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얼마 전에 갔던 것 같은데 감쪽같이 사라진 김밥집! 대신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김밥집인 로봇 김밥이 있었다. 비록 그때 그 맛있는 소고기 김밥도 아니고 물도 사서 마셔야 했지만 김밥을 먹고  출발해서 다행이다.


상해를 상해라 부르는 사람도, 상하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상하이보다 상해가 더 끌린다. 고로 내 여행일기에서는 상해라 표기한다.



출국 심사 줄 뿐 아니라 비행기 탑승 줄도 어마어마했다. 보통 때라면 그 누구보다 빨리 줄을 서서 가장 빨리 비행기에 탔겠지만 오늘은 도무지 힘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되려 가장 마지막에 탑승했다. 그리고 탑승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잘 자고 있는데 승무원이 기내식으로 우리를 깨웠다. 진에어 이후 두 번째 기내식인데 음식의 퀄리티 자체는 아시아나의 것이 훨씬 좋았으나 내 입에는 진에어가 맞았다. (이 이후 세 번째 기내식을 타이항공에서 먹었는데 진에어, 아시아나 통틀어 타이항공 것이 제일 맛있었다.)



이왕 깬 김에 그리고 창가에 앉은 김에 (나는 늘 창가에 앉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하늘을 구경하다 제주를 지났을 즈음 정말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실감했다. 창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순간적으로 수평선(이 아니라면 지평선)이 둥그렇게 보였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홀로 계속 감탄했다. 그리고 이번엔 우리가 탄 비행기가 구름 아래로 날기 시작했다. 늘 위에서만 봤지 아래에서 구름을 올려다본 건 처음인데 굉장히 신기했다. 멀리 있는 구름의 아래는 짙은 회색이었고, 내 바로 위에 있는 구름은 흰색의 얇은 실이 공기 중에 퍼져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넋 놓고 하늘을 보고 있는데 중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상해 푸동 공항의 입국 심사는 무난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는 죄진 것도 없이 괜스레 겁이 났었는데 이제 이 정도는 거뜬하지. 그러나 아직도 나는 중국 공항이 제일 무섭다. 푸동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자기 부상 열차인 'maglev'를 타고 움직인다. 입국 심사를 받고 나와 maglev 이정표를 따라 이동, 왕복 카드를 구매하고 열차를 탔다. 다른 곳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상해에서는 열차(지하철)를 탈 때마다 짐 검사를 했다. 캐리어를 들고 다니니 환승하면서도 계속 짐을 넣었다 뺐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시탕에서 찍은 사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컷


상해 여행이지만
상해는 일단 뒤로 미루고


상해 여행이지만 여행은 상해가 아닌 상해 근교의 수향(水鄕) 마을에서 시작했다. 수향 마을이란 중국 강남의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로 대표적인 몇 곳을 꼽아 4대 혹은 6대 수향이라 부른다. 우리는 상해의 수향 마을 하면 많이들 추천하는 주가각, 우전 등이 아닌 시탕(西塘, 서당)에 가보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탕도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주가각과 우전은 그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인구 밀집도가 높은 중국인데 유명한 관광지라면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또 수향 마을은 물길을 따라 만든 마을이다 보니 크고 작은 다리가 많은데 나는 그중 시탕의 다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리의 대부분은 명나라 시대에 지어졌지만 몇몇 송나라 시대에 지어진 것도 있단다. 이러니 가볼 수밖에. 많은 사람들이 시탕에 가는 이유 중 하나로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의 배경지를 들기도 하는데, 사실 그 부분은 우리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흥미롭지도 않았다.


tip. 상해 푸동 공항에서 시탕까지 버스로 가는 법

푸동 공항에서 자기 부상 열차 maglev를 탑승 - 룽양루 하차 - 2호선 전철 탑승 - 인민광장 하차 - 1호선 전철 탑승 - 상해남역 하차 - South Long-distance Bus Station까지 도보 이동 - South Long-distance Bus Station에서 시탕행 티켓 구매 후 탑승


2시 30분쯤 역에 도착했는데 버스 출발 시간은 3시 9분.  빵집에서 빵과 주스를 사먹으며 중간에 뜬 시간을 채웠다.


시탕까지 가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단 상해남역에서 South Long-distance Bus Station까지 걷는 길이 고난이었다. 길을 알고 나면 걷다가 한두 번 꺾는 정도의 쉬운 길이지만, 초행길에다 한자 투성이 이정표 여기에 어두운 지하도를 걸어야 하는 터라 무서웠다. 지상으로 나왔을 때는 택시 기사 한 명이 끈질기게 들러붙어 '택시에 타. South Long-distance Bus Station까지 데려다줄게.'라고 해서 더 무서웠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본 어떤 여자분이 그를 떼어내고 버스역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버스역에 들어와서도 정신이 혼미했다. 미리 알아본 시탕행 버스 티켓은 분명 36위안인데 직원은 100위안을 달란다. 이런 곳에서 마저 팁을 요구하는 건가 싶어 직원과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버스 티켓은 36위안이 맞고 여기에 100위안짜리 시탕 입장권까지 합쳐서 100위안에 주는 것이란다. 여러 꼼수를 사용하면 시탕 입장권을 50위안에 살 수 있지만 귀찮아서 그냥 버스 티켓과 함께 사기로 했다. 50위안보다는 비싸게 사는 거지만 정가보다는 36위안이나 저렴하게 사는 것이니 이로도 충분하다.


tip 아닌 tip. 일명 개구멍

여행 전 시탕에 대해 알아보다 개구멍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말이 개구멍이지 사람이 오가도록 만들어진 제대로 된 입구 중 하나다. 대부분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작은 뒷골목 정도 된다. 아무튼 시탕 부근에서 현지인 브로커를 만나 그에게 50위안을 주면 그가 사람들을 개구멍으로 인도하고 티켓을 전해준단다. (시탕은 들어가기만 하면 끝이 아니라 안에서도 계속 티켓을 보여줘야 하므로 꼭 티켓을 전달받아야 한다.) 현지인에게는 입장권을 저렴하게 판매하기 때문에 이런 꼼수가 나오는 것 같다. 만일 시탕에서 일박을 하는 경우라면 숙소 주인에게 부탁해서 현지인 가격으로 티켓을 구할 수도 있다. 우리도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이 먼저 50위안에 티켓을 구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브로커를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냥 버스역에서 버스 티켓과 입장권을 함께 구매하는 편을 추천한다. 얼마 차이 안 하는데 제대로 된 루트로 구매해서 들어가는 게 마음 편하지.



주말이라 차가 막혀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시내에서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까지는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그러나 고속도로 밖으로 나오자마자 길이 확 바뀌었다. 매연이 뿌옇게 뿌려져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푸르고 빽빽한 나무 숲. 키 큰 건물들도 저 멀리에 있어 눈앞에 걸리는 것도 없었다. 와, 내가 생각한 중국과 전혀 다르잖아!

그런 생각도 잠시, 버스 안은 내가 생각한 중국 그 자체였다. 버스에서 좀 자볼까 했는데 선잠을 잤다. 이동하는 동안 계속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애들 때문에 도통 깊이 잠들 수가 없었다. 짜증 나서 몇 번 뭐라고 했는데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부모들 역시 버스가 떠나가라 떠들고 있었다. 아이고.





물길 따라 꼬불꼬불,
수향 마을 시탕


드디어 시탕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나오면 자전거 택시 호객꾼들이 들러붙어 시탕까지 데려다준다더니만 우리 곁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던 우리는 그럼 그냥 버스 타고 가지란 마음으로 다시 버스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에 들어선 순간, 내일 상해로 돌아가는 표를 미리 사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라 시탕 가는 버스는 잠시 잊고 상해 가는 표부터 샀다. 미리 사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상해행 티켓을 끊고 나서 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떻게 시탕으로 가야 하나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다 '우리에게 호객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냥 내가 하자'란 생각에 자전거 택시가 몰려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호객 행위 끝에 한 대에 각 20위안씩 두 대를 타고 이동, 호스트가 알려준 은행나무 아래에 내리니 호스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상해 공항으로 그리고 상해 공항에서 바로 시탕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보니 첫날은 시탕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를 묵기로 하고 숙소를 찾아보았는데 관광지 유명세에 비해 적당한 숙소가 없었다. 아니 정정하자. 숙소는 어느 정도 있었는데 죄다 중국어 후기라서 번역기를 돌려 읽어야 하는 한계상 내 마음에 딱 드는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겨우 한 곳을 찾아 예약했다. 일단 한국어 후기가 있었고 호스트와 메신저로 연락이 수월하게 된다기에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는 걱정이 무색하게 쾌적하고 넓은 데다 깨끗해서 놀랐다. 호스트도 엄청 친절했고. 이 정도면 엄청 성공한 거잖아!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숙소의 카드 단말기에서는 유니온페이로만 결제가 가능한데 우리의 카드는 전부 비자와 마스터카드라 결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위안화로 내자니 딱 쓸 만큼만 환전해서 당장 숙소비를 내고 나면 그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현금은 없고 카드는 안되고 진퇴양난. 그러다 지난 칭다오 여행에서 ATM기로 돈을 뺐던 것이 생각나 호스트에게 물어보니 근처에 ATM기가 있단다. D의 카드로 돈을 뽑기로 하고 호스트와 D가 함께 ATM기에서 돈을 뽑아왔다. 무사히 결제 완료. 여행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D가 호스트와 돈을 뽑으러 간 동안 P는 숙소에서 쉬고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가 있는 좁은 골목에서 1-2분 남짓 걸어 나가자 내 눈앞에 놓인 시탕의 풍경! 시탕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던 사진 속 그 모습이었다. 때마침 해가 지고 있어 강 위로 빛이 예쁘게 퍼져나갔다. 그 순간을 놓치기 아쉬워 계속 셔터를 눌렀다. 내가 이 모습을 보러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또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달려왔나 보다. 사실 오면서도 주가각이나 우전을 갔어야 했나 하고 조금 후회도 했는데 그 후회가 모두 날아갔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시탕이지만 나는 낮이 더 좋았다. 아직 시탕의 밤을 보지 못했지만, 보아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2017년 8월 19일

캐논 EOS 6D

매거진의 이전글 상해, Shangha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