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중국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현 Nov 16. 2018

청나라 건물에 들어선 움직이는 클럽

#상해일기 2.온갖 조명이 난무하는 시탕의 밤



홍등부터 레이저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탕의 밤


고즈넉한 시탕을 산책하다 숙소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와서 또 버스를 타고 달려왔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피로가 몰려와 숙소에서 몇 시간을 누워있었다. 가만히 쉬다가 체력이 조금 회복된듯하여 삼각대를 들고 길을 나섰다. 시탕의 밤은 간판부터 시작해 물가를 따라 늘어선 상점들이 내뿜어내는 빛으로 야경이 아름답다 하였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삼각대를 들고 해외여행을 나왔다. 인터넷에서 적당한 무게와 사용법이 단순한 삼각대를 찾고, 여행 하루 전 합정의 카메라 대여점에 미리 빌려두기까지 했다. 그만큼 시탕의 야경을 찍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는 말! 사진에서 보던 제대로 된 시탕의 중심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요란한 간판들이 나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초입부터 이 정도 현란함이면 중심의 야경은 끝내주겠는데!



홍등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밤의 빛이었다. 주말이면 상해에서 또 다른 곳에서 중국인들이 몰려든다던 시탕. 그래서 우리도 티켓을 보여주고 시탕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이리저리 이동해야만 했다. 그렇게 사람들에 밀려 걷다가 우연히 들어선 곳에 홍등이 넘실대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고, 칭다오 맥주공장의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고 한껏 짜증을 내다 눈앞에 보이는 홍등에 모든 짜증이 사라졌다. 이럴 수가, 너무 예뻐! 대륙의 스케일이란 이런 것인가. 한 골목의 하늘을 가득 채운 홍등에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를 꺼낼 타이밍이었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절해 오가는 나룻배로 빛의 길을 만들 셈이었다. 잘만하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잘했는데 분명 나는 잘했는데, 사진은 엉망이었다. 삼각대의 볼헤드가 앞뒤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조이고 또 조여봐도 조여지지 않아 계속해서 움직였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연결하는 목 부분이 움직이니 무거운 내 카메라도 사정없이 흔들렸다. 휴대성을 너무 고려해서 튼튼하지 않은 것을 빌려온 건가. 아닌데 내가 분명 후기도 열심히 찾아봤는데. 목 부분뿐만 아니라 등산스틱처럼 조이고 푸는 다리 부분도 자주 풀려댔다. 이건 삼각대가 아니라 그냥 짐이었다. 쉽게 올만한 곳이 아닌데 울적해졌다.





중국에 도착해서 먹은 거라곤 버스역에서 먹은 빵이 전부였던 우리는 배도 고프고 또 너무 더워서 당장 식당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P가 블로그에서 봐 둔 식당이 있어 그곳에 가기로 하고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도 수많은 인파에 휩쓸리듯 걸었다. 이 길이 저 길 같고 사람은 많고, 흐르는 땀에 몸이 끈적여서 포기하려던 찰나 발견한 식당. 그러나 역시 주말은 주말인지라 두 시간 반을 기다려야 자리가 난다길래 돌아 나왔다. 더위를 식힐 틈조차 없었다. 이후 들어가는 식당마다 모두 퇴짜를 맞았다. 기본 두어 시간 대기라니, 우리는 지금 배가 고파요! 

가까스로 자리가 있는 식당을 찾았으나 메뉴를 봐도 온통 모르는 한자뿐이라 뭘 먹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식사하고 있던 뒷자리 현지인에게 메뉴를 추천해줄 수 있냐 물었더니 다 맛없으니 먹지 말라길래 가게 밖으로 나왔다. 정말 배고픈데 또 맛없는 건 먹기 싫다. 다시 시작된 식당 찾기! 같은 길을 몇 번 오가다가 겨우 자리를 잡고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다행히 메뉴판에 사진이 붙어있어 주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당면 볶음과 생선요리 그리고 토마토 스크램블과 맥주를 시켰는데, 토마토 스크램블이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시켰다. 짠 당면 볶음을 먹고 있자니 절로 생각나는 밥도 두 그릇 추가 주문했으나 끝끝내 밥은 나오지 않았다.



청나라와 EDM


시탕을 조금 더 돌아보고 싶었으나 밤이 되어서도 사람이 빠지지 않아서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지친 우리는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 홀린 듯 음악을 따라가 보니 전통 가옥이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청나라 시대에 지어졌다는 건물에 클럽이라니! 옛스런 나무 창틀 너머로 EDM이 흘러나오고 그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 그 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재밌어서 피곤함도 잊고 꽤 오래 구경했다. 보다 보니 사람들이 춤추는 스테이지가 마치 거대한 스프링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다들 노래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리듬을 탄다 했더니, 바닥 전체가 움직이면 저 리듬으로 똑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지. 지금도 친구들과 시탕 이야기가 나오면 저 클럽부터 먼저 나온다. 평생 가도 잊지 못할 거야. 아니 정말 전 세계 어느 곳의 클럽이 바닥 전체가 움직이냐고.



tip 아닌 tip. 시탕의 진짜 야경을 보려면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다음날 깨달았다. 이래서 다들 낮에 먼저 둘러보고 밤에 돌아다니는 거였구나. 낮에 돌면서 이곳저곳 좋은 곳을 알아둔 후, 밤에 사람이 많을 때는 사사삭 움직여서 낮에 봐 둔 곳으로 가는 게 좋다.





이대로 밤을 끝내기는 아쉬워 꼬치거리에서 꼬치를 잔뜩 샀다. 처음엔 가볍게 먹으려 했지만 고르다 보니 이것저것 다 먹고 싶어 졌다. 삼겹살 꼬치 3개, 부추 꼬치 3개, 오징어 통째로 1개, 옥수수 1개, 가지 1개, 팽이버섯 1개. 바깥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는 꼬치를 골라 말해주면 된다.




굽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그리 지루하진 않았다. 그리고 주인아저씨도 계속 웃으시며 친절하게 대해주어 좋았다. 꼬치를 사고 나오며 슈퍼에 들러 맥주와 탄산도 샀다. 하루의 마무리는 역시 시원한 맥주지! 맥주를 사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졌다. 심지어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 D가 기다렸다 가자고 했지만 숙소가 바로 옆인데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 싫어 뛰었다. 다행히 많이 젖지 않고 숙소에 도착했다.



일단 먹고 씻자. 모든 음식을 정성스레 세팅했건만 정작 병따개가 없어 맥주를 따지 못했다. 한국에서 지갑에 매일 넣어 다니던 병따개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여행을 갈 때는 지갑을 한국에 놓고 간다.) 프런트에 사람도, 병따개도 없어 일단 숟가락이라도 챙겨 왔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P가 맥주를 따는 데 성공했다. 야호! 꼬치는 자극적이었다. 짜고 또 짜서 맥주와 탄산이 없으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맥주가 있지.


2017년 8월 19일

캐논 EOS 6D

매거진의 이전글 물길 따라 꼬불꼬불, 수향 마을 시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