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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Sep 27. 2018

나의 첫 비어라오

#라오스일기 1. 라오스에서의 시원한 첫 맥주


우리가 갈 곳은 당연히 라오스였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의 방영이 끝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라오스 여행의 열풍은 식지 않았다. 우리의 라오스행에 방송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다. 꽃보다 청춘에서 라오스로 함께 떠났던 이는 셋이었고 우리도 셋이었다. 우리는 당연한 듯 라오스로 가는 티켓을 결제했다. 동숭동에 사옥이 있을 때, 우리 셋 모두 같은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우리가 함께 여행을 떠났는가. 먼저 지금을 말하자면 우리 셋 다 저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와 M은 이 여행 이후로도 종종 같이 여행을 떠날 만큼 잘 지내고 있으나 J와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tmi를 하나 덧붙이자. 얼마 전 J가 아무런 말없이 인스타그램에서 우리 둘을 포함 여럿을 언팔했고 이를 안 우리도 기분 나빠하며 그를 언팔했다. 그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15년의 나와 J는 유일한 입사 동기로 그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다. M과는 아마 티켓을 끊을 저 무렵 퇴근 후 같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정말 이제 막 친해진 사이였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어느 날 셋을 포함한 여럿이 함께 점심을 먹다 "요즘 라오스에 많이 가던데, 한번 가자!"라고 흐르듯 이야기를 했더랬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셋이 합정에 있는 <심야식당>으로 술을 마시러 가서는 "그래! 라오스에 가자!"라고 도장을 쾅쾅 찍었었다. 어쩌다 셋이 되었는가. 아마 퇴근 후 맥주 한잔을 하던 모임의 주된 멤버가 우리 셋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자, 라오스로!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동숭동에 있던 사옥이 합정으로 이사를 했다. M과 나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J는 몇 개월 새 회사를 그만둔 터라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M과 둘이서 쪼르륵 반차를 내고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홍대로 넘어갔다. 공항철도를 타기 전 설렁탕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도 여전히 배가 고파서 공항에서 짜장면을 또 먹었다.



지금의 나는 일 년에 적어도 대여섯 번씩 해외를 나가지만 이때만 해도 공항을 가는 것이 지금처럼 일상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리 밖으로 보이는 비행기만 보아도 마냥 설레어 정성 들여 사진을 찍었다.

 


한국은 한창 겨울이라 두꺼운 패딩을 입었지만 우리가 갈 라오스는 무덥다고 했다. 우리의 겨울옷은 모두 한진 택배에 맡기고 반바지와 반팔로 갈아입고 샌들과 쪼리로 갈아신었다. 박스나 가방을 미리 준비해 갈걸, 공항에서 구매한 박스는 M사이즈가 8,000원이나 했다. 거기에 5일 동안 박스를 맡기는 비용은 30,000원. 여행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총 38,000원을 지출했다.


J는 비행기에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도 여행하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녀는 나 이상으로 쓰는것을 좋아했다.
M의 선글라스에 비친 나.



드디어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는 비행기. 어둠은 깔렸고 공항은 눈이 부실만큼 빛났다. 



이륙하자마자 창가로 보인 건 짙은 안개. 밖을 구경하긴 글렀구나 하고  그 누구보다 먼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또 그 누구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바라보았는데, 이게 웬걸. 창밖으로 장관이 펼쳐졌다. 하늘 끝에서 해가 뜨고 있었다. 이베적인 구름과 분홍빛 하늘. 잠든 두 친구를 깨울 수밖에 없던 풍경. 아주 찰나였으나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리기엔 충분했다.



십여분이 흐른 후 복도 맞은편 창엔 한없이 붉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내 자리 창가에선 달이 보였다. 달을 아래가 아닌 옆과 위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난 몇 년간 비행기를 타며 본 하늘 중 가장 아름다웠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말도 부족하다 (이 표현 또한 진부하지만). 야경을 볼 수 있는 밤 비행기보다 구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아침과 낮 비행기를 더 좋아하기 시작한 게 아마 이때부터가 아닐까. 이 이후로 해가 뜨기 시작하는 때나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는 때의 비행기 티켓을 잡게 되면 반사적으로 이때의 하늘을 떠올린다.



한국보다 라오스에 더 가까워지자 기내식을 나눠줬다. 내 인생 첫 기내식. 찾아보니 다들 진에어의 기내식을 욕하는 데다 (어차피 저가 항공사의 기내식은 거진 다 욕을 먹는다) 받아보니 비주얼 또한 형편없어서 실망을 했다. 그러나 나의 입맛도 딱 그 정도인 건가, 나는 죽어라 욕할 정도로 맛없지 않았다. '우와!' 할 정도로 맛있지도 않았지만 그냥 먹을만했다. 심지어 가운데 껴있는 햄은 맛있다고까지 적어뒀네.



몇 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라오스 왓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가 어마어마하게 느렸다.



짐을 찾고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발견한 내 이름. 한국에서 '트래블라오 패키지 3인용'을 미리 구매했었다. 첫날 비엔티엔 수파폰 게스트하우스 숙박 1일, 공항에서 게스트하우스까지 픽업, 다음날 비엔티엔에서 방비엥까지 여행자 버스로 픽업 및 이동 그리고 유심칩까지 다 들어있는 패키지였다.


그러나 여행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모든 것을 라오스에 도착해서 찾아볼 생각으로 숙소 및 이동 수단 외에는 아무것도 검색해오지 않는 우리에게 "유심칩을 가져오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가이드. 이것은 엄연한 실수였다. 급하게 트래블라오 현지 회사의 한국어가 되는 여직원과 통화를 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되려 우리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할 말만 했다. 라오스에 지인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내일 유심칩을 가져다준단 말만 하고 뚜-뚜-뚜. 우리는 가이드에게 유심칩이 지금 당장, 오늘 꼭 필요하다고 어필했으나 그 역시도 우리를 게스트하우스까지 데려다 주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겨우 와이파이를 잡아 (그나마도 로비에서만 빵빵 터지고 방에서는 안 터졌다) 트래블라오 사이트에 접속했다. 한국인 스태프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봤던 기억이 있어 아이디를 찾아 카톡을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공항에서 우리와 통화했던 직원과 연락을 했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내일 오전 9시 전까지 꼭 유심칩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유심칩 가격을 환불해줬다. 전화받은 직원의 대응은 정말 별로였으나 그 후 대처가 괜찮아서 짜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의 첫 라오스, 나의 첫 비어라오



픽업 온 기사분의 차를 타고 비엔티엔 시내에 있는 수파폰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 이때까진 내가 있는 이곳이 라오스라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우리보다 먼저 내린 한 팀의 게스트 하우스. 이때부터 이국적인 풍경에 정말 내가 라오스구나, 했다.



<수파폰 게스트하우스>의 계단과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 골목. 왜인지 절대 잊지 못할 모습.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때의 냄새와 바람 그리고 기분이 생생하다. 이전까지도 꽤 여행을 다녔지만 이토록 이국적인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이 골목에 선 순간, 나는 동남아에 빠졌다.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환전. 특히 동남아의 경우는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현지 환전을 많이 한다. 라오스도 현지 환전을 하는 곳 중 한 곳이라 우리도 라오스에 도착해서 환전을 하기로 했다. 첫날은 밤늦은 시간에 도착 한터라 환전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비엔티엔은 라오스의 수도이고 관광지이니 달러를 받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달러만 들고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추천받은 바 중 하나인 <the drop zone>으로 갔다. 수중에 503달러를 들고 '달러를 받을 거야!'라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비어라오 한 병에 7,000낍. 대충 8,000낍이 1달러였으니 503달러 중 3달러로 충분하겠구나 생각했다. 큰돈을 벌써부터 깨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이라 하며. 그런데 달러가 받기 싫었는지 아니면 관광객이니 바가지를 씌우고 싶었는지 바의 주인은 3달러로는 부족하다고 우리의 100달러를 자신이 환전해주겠다고 했다. 급하게 인터넷을 찾아보니 8,000낍이면 무난했기에 100달러를 800,000낍으로 환전했다. (다음날 은행에서는 100달러를 8,100낍으로 환전해주었으나 사설에서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은가?)


환전을 끝내고 비어라오를 계산하려 하니 갑자기 병당 8,000낍을 달라한다. 환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7,000낍이었는데! 따지기엔 언어도 안되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샀다. 무엇보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간절했다.



처음 만나는 라오스는 별로였다. 처음 대화다운 대화를 했던 트래블라오의 현지 직원과의 통화가 그랬고, 바가지를 씌운 바의 주인이 그랬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비어라오는 완벽했다. 적당한 더위와 적당을 조금 넘어서는 짜증을 훅하고 날려버리기 딱 좋게 시원하고 맛있었다. 셋 다 안주 하나 없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목을 축이고 기분이 풀리고 나니 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지인 몇이 포켓볼을 했고, 외국인 한 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게임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현지인들이 함께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아직 낯을 가리는 데다 피곤했다. 깔끔하게 맥주 한 병씩을 비우고 일어났다.



이제 우리에겐 라오스 돈이 있으니 무엇이든 살 수 있다! 편의점에 들러 각자 먹고 싶은 컵라면을 골랐다. 내가 고른 건 파란색 뚜껑. 무난한 맛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입구 벽에 붙어있던 도마뱀. 라오스에서 도마뱀은 작고 귀여운 우리의 친구. M과 J는 질색했다.


다시 돌아온 숙소. 싱글 침대 2개와 추가한 간이침대 1개. 누가 추가된 침대에서 자나 했는데 가위바위보를 제안한 M이 자게 되었다. 가위바위보는 꼭 하자고 하는 사람이 지더라.


2015년 11월 26일 - 27일

캐논 파워샷 g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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