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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Dec 01. 2018

퇴근 후 인천공항

#베트남일기 1. 하노이로 떠나는 날


왜 베트남이야?


이유가 있던가. 아마 예매할 당시 베트남 왕복 티켓이 비교적 저렴했을 테다. 이맘때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여행광이었다. 물론 지금도. 비교적 휴가가 자유로운 회사를 다니다 보니 두어 달에 한 번은 해외로 나갔는데, 심할 때는 1년에 8-9번을 나가기도 했다. "이왕 나가는 거 안 가본 나라를 가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으나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다) 나는 새로운 곳도 좋지만 갔던 곳을 또 가는 것 역시 좋아한다. 여행의 재탕도 좋아한다는 거다. 그래서 일단 떠나자고 마음을 먹으면, 왕복표가 저렴한 곳이 내 목적지가 된다. 단 추운 나라는 제외한다. 두텁게 옷을 입어야 하는 겨울은 온몸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싫어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여러 가지 이유로 여름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겨울이 오면 자주 동남아로 피신한다.

그래서 베트남이 아니었을까. 1월의 우리나라는 한겨울이지만 베트남은 동남아니까 한국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을 거다. 검색창에서도 [일교차가 크게 나지 않아 낮에도 선선하고 아침저녁으로도 많이 춥지 않아 여행하기에는 알맞겠습니다. 비의 양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봄가을철 옷가지를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라 말하는 걸 보면. 사실 이런 이유도 다 필요 없다. 여행에 무슨 이유가 필요해. 그냥 떠나고 싶었는데 여러 조건이 맞는 곳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하노이였다.





퇴근 후 인천공항


5시에 퇴근하고 홍대에서 서울역으로 넘어갔다. 원래라면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야 했으나 이번에는 서울역에서 출국 심사를 해보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출국 심사가 가능한 항공사가 정해져 있는데 운이 좋게 우리가 타는 제주항공도 이용 가능하단다. 요즘 뜨는 기사마다 인천공항에 사람이 엄청 붐빈다기에 사람에 치여 스트레스를 여행 시작부터 스트레스를 받느니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편하고 싶었다. 거기다 8,000원짜리 직통열차도 당일 출발하는 해당 항공사의 티켓만 있다면 6,900원으로 할인도 해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5시 28분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뛰듯이 한 층 위로 올라가 6시 20분 직통열차 티켓을 구매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창구에서 제주항공 티켓을 발권했다. 비상구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오늘은 무료로 힘들 것 같다고 하며 최대한 앞자리로 빼주었다. (제주항공은 출발 24시간 전에 모바일 탑승권으로 자리 설정이 가능하다. 다른 항공사들도 엇비슷한 서비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제주항공을 그토록 자주 이용했으면서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되었다.) 티켓 발권 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출국 심사장에서 대기 없이 출국 심사를 했다. 일련의 과정들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직통열차의 시간을 5시 45분으로 바꾸었다. 5분 만에 티켓 발권부터 출국 심사까지 다 끝나다니! 서울역 만세! 제주항공 만세!


겨울에 동남아를 갈 때면 공항에서부터 외투는 짐이 된다. 이 짐을 어떻게 처리할까 알아보다 알게 된 코트를 맡아주는 서비스 '미스터 코트룸'. 인천공항 KTX 탑승구 옆에 있다. 외투 한 벌을 총 7일 동안 맡겼는데 단 돈 10,500원! 심지어 소셜에서 본 가격보다 더 저렴했다. 외투 하나에 서비스로 가방이나 신발도 맡아주는데 나는 신발 대신 입고 있던 얇은 청바지를 맡겼다.



어플로 환전해두었던 돈을 찾아야 했지만 배고픈 게 먼저라 환전은 잠시 뒤로. 해외로 나가기 전후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방문하는 <비비고>를 찾았다. 메뉴는 언제나 차돌박이 된장찌개. 오늘도 역시 맛있다. 밥을 돌솥밥에 해주기 때문에 숭늉도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더 좋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돌솥밥은 사라지고 일반 공깃밥에 밥을 주기 시작했다. 비비고의 매력이 1 감소했다.)



밥을 먹고 환전까지 마쳤으니 비행기를 타야지. 서울역에서 미리 수속을 밟은 덕에 누구보다 빠르게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M이 언니의 부탁으로 면세점을 돌아다니는 동안 일기도 쓰고 사진도 찍었다. 이제는 익숙한 인천공항이지만 오랜만에 밤-새벽 비행을 해서 그런지 새롭다. 하루의 마무리를 공항에서 하다니. 바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일을 하고 온 거라 피곤하기도 하고, 얼른 하노이에 도착해서 놀고 싶기도 하고. 하노이에 비 소식이 있어 생각보다 따뜻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M과 나 둘 다 호된 감기에 걸려 며칠째 앓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침 비행일 때는 집에서부터 맨얼굴로 나오지만 오늘은 출근을 했었기에 미미하게나마 메이크업을 했다. 그래서 공항에서는 처음으로 메이크업을 지웠다. 탑승동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쌓아두고 (고작 배낭 하나가 전부인데 캐리어 없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다) 세수와 양치질을 했다. 밤 비행기라 그런지 씻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지런히 씻고 나와 로션을 바르고 드디어 비행기 탑승. 



비행기 이륙 직전, 이렇게 밖에서 인사를 해준다. 비행기로 수신호를 보내는 것이겠지만 나는 인사라고 생각한다. 아니 처음에는 수신호라 해도 끝에 가면 분명 인사가 된다니까? 이 이야기를 방콕일기에도 썼네. 그만큼 나는 비행기에서 보는 이 인사가 좋다.




약을 먹은 탓인지 이륙하자마자 잠들었다. 자다 깨니 어느 도시 위를 날고 있는 듯 땅에 불빛이 가득했다. 창가에 착 달라붙어 고개를 숙일 수 있는 만큼 숙여 위를 보니 땅 위의 불빛보다 더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어느덧 도시는 사라지고 온통 구름밭이 되었다. 어두운 밤인데도 두둥실 떠있는 구름이 보이다니. 비행하는 내내 창밖은 아름다웠다. 아이폰도 내 DSLR도 이 모습을 담아내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날 때의 그 하늘이 이 하늘일 것만 같았는데.


풍경과 반대로 몸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비행기 안이 너무나도 건조했다. 목감기에 걸린 터라 병원에서 절대 건조하게 있지 말라고 했는데 비행기 안은 건조 했고 나는 점점 더 아팠다. 이제는 목뿐 아니라 콧물도 심해졌다. 비행기를 타면 좌석이 아무리 좁다 해도 잘만 잤는데, 이번에는 좌석이 넓은 편이었음에도 아파서 그런지 불편해서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는 긴 비행시간이긴 했지만) 체감상 훨씬 훨씬 더 오래 비행기를 탄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시차가 적용되기 전인 새벽 2시 8분, 나는 다섯 시간째 하늘 위로 날고 있다.


2017년 1월 12일

캐논 EOS 550D




여행 중 책 읽기 #아무튼, 방콕 #김병운


그리하여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당연히 여름이다. 이쯤 되면 내가 정말 여름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겨울을 싫어해서 여름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그러니까 어떻게든 마음 붙여볼 계절을 찾다 보니 상대적으로 겨울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여름이 눈에 들어온 게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나에게 여름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임이 틀림없다. 해가 길어 하루가 충분한 것도 좋고, 옷이 가벼워 몸이 가뿐한 것도 좋고, 날이 좋아 의욕이 샘솟는 것도 좋으니까. 쨍한 햇볕과 짙은 녹음이 펼쳐지는 것도 좋고, 비릿한 흙냄새와 싱그러운 비 냄새가 뒤엉키는 것도 좋고, 청량한 밤공기와 요란한 매미 소리가 넘실대는 것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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