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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Dec 06. 2018

베트남은 처음이라

#베트남일기 2. 오토바이의 나라


이토록 정신이 혼미한 시작은 처음이야


하노이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얇은 옷만 챙겨 왔는데 감기가 더 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입국 심사는 간단하게 도장 두 개만 꽝꽝 찍고 끝났다. 우리의 예상대로라면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환전소와 유심을 팔아야 했지만 전부 문닫힌 가게만 있어 잠시 정신이 나갈뻔했다. 다행히 우리가 나온 게이트가 사이드에 있는 거라 문을 일찍 닫은 거고, 메인 게이트-A2- 쪽으로 가니 사진에서 보던 환전소와 유심 가게의 문이 열려 있어 무사히 볼 일을 보았다. 라오스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큰 화폐단위에 벌써 머리가 아파왔다.



새벽 한 시 십오 분에 공항에서 우버택시를 탔다. 이 우버택시를 타기까지도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다. 우버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도착지를 설정한 후 기사님과 연락이 닿았는데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전화가 끊겼다. 그래도 우리 위치와 목적지를 아니 금방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한참이 지나도 오질 않아 점점 정신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비는 내려서 몸은 으스스하지 감기약 때문에 머리는 아프지 말은 안 통하지. 같이 멍해있던 M이 그래도 우버택시를 이용해본 적 있다며 먼저 정신을 차렸다. 지난 경험을 살려 주변에 있던 현지인과 기사님 간 통화 연결을 해주어 다시 한번 우리의 위치를 설명, 무사히 택시에 탈 수 있었다.

30여분을 달려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미터기에 찍혀있는 250,000동이 아닌 265,000동을 요구했다. 실랑이할 힘도 없고 잔돈도 없어 그냥 270,000동을 주고 내려 생각해보니 톨게이트비가 붙은 것 같았다. 베트남 여행 전 읽어본 글에서 톨게이트비 이야기를 본 듯도 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빨리 들어가서 자고 싶어.

택시가 떠나고 호텔에 들어가려는 순간, 굳게 내려와 있는 호텔 셔터.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비가 내리는데 젖은 땅에서 자야 하나.' '지금 문 연 다른 호텔이 있을까.' '분명 늦은 새벽에도 체크인 가능하다 했고 메일로 미리 보내 두었었는데…' 등 몇 개의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변 호텔도 다 문을 닫은듯했고 그렇다고 이대로 밖에서 잘 수는 없어 셔터를 마구 흔들었다. 사실 흔들면서도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로비에 앉아있던 직원이 셔터를 올리고 체크인을 해주었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호텔은 가격에 비해 깨끗하고 좋았다. 조금 춥긴 했으나 이건 우리 둘 다 독감에 걸렸으니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고. 라오스에 비하면 고급 호텔로 보일 정도에 수건도 훌륭했다. 다만 일부러 돈을 더 주고 시티뷰로 고른 건데 뷰라고 부를 게 없었다. 생각해보면 골목과 골목 사이에 있는 호텔이니 창밖으로 맞은편 건물이 보이는 게 맞긴 하다. 다만 호텔이 생각한 시티와 내가 생각한 시티가 달랐을 뿐.


일기를 쓰고 짐 정리도 하다 보니 어느덧 세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한국 시간으로 따지면 다섯 시고, 나는 어제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움직였으니 거의 하루를 깨 있는 거네. 일단 자자.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하노이에 오기 하루 전날 병원에 다녀와서 약을 먹은 후 겨우 나아지는가 싶던 감기가 더 심해졌다. 추워서 따뜻한 나라로 도망 온 건데 내 몸이 내 계획을 따라오질 못했다. 선잠을 자다 아홉 시쯤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후드를 주워 입고 모자만 쓴 채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우리가 일찍 나온 편인지 식당은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조식 메뉴도 비어있었다. 먹을만한 것들을 겨우 추려 한 접시를 채우고, 쌀국수를 받고, 파인애플 주스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지금은 맛을 보려고 먹는 게 아니라 약을 먹기 위해 먹는 거였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김치처럼 먹는다는 쏨땀도 맛있어서 계속 가져다 먹었다.



가벼운 하노이 산책


조식을 먹고 쪼리만 신고 돌아다녀도 괜찮을 날씨인가를 알아볼 겸 산책 겸 호텔 밖으로 나와 조금 걸었다. 걱정했던 것만큼 춥지는 않았지만, 반팔 반바지만 입고 다닐 날씨도 아니었다. 보통 여행을 떠나기 전 해당 지역을 인스타그램에서 검색 후 옷차림을 알아보는데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게 다 우리의 감기 때문인 건가. (이번 여행은 감기로 시작해 감기로 끝났다. 사실 그래서 만족스럽지 못한 여행이 되었다.)


우리 호텔이 있는 골목.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인 모자 '농라 Nón Lá'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베트남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여행 전 분명히 저 모자를 사서 쓰고 돌아다니자고 했건만 우리에겐 햇빛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질 수 있다면 얼굴이 타는 것쯤은 괜찮았다.



우리 호텔이 있는 골목의 끝에서는 늘 작은 시장이 열렸다. 이 골목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골목의 끝에서는 시장이 열렸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장은 사진처럼 쭈그려 앉아 물건을 사고팔았다. 음식을 파는 곳도 예외는 아니라 다들 일명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아 국수 등을 먹었다.



잠깐만 돌아본 건데도 수많은 오토바이를 보고 쉼 없는 클락션 소리를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다더니 정말 오토바이가 더 많았다. 언젠가 방송에서 한 개그맨이 했던 말처럼, 길을 건널 때도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오토바이를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길을 건너면 오토바이가 알아서 내 앞으로 뒤로 피한다. 어설프게 피하 다간 되려 큰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M과 함께 여기서 어떻게 버티냐는 우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이국적이라 참 좋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나와 호안끼엠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물가라 그런지 바람이 불 때면 으슬으슬 추웠다.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행자들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젊은이들은 다 골목으로 들어가고 비교적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호안끼엠 근처를 도는가 보다. 그만큼 호안끼엠 호수는 한적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역시 많은 오토바이. 큰길, 작은 길 할 것 없이 오토바이가 많다. 심지어 아주 좁은 시장 골목으로도 예고 없이 오토바이가 들어온다.



거북이와 관련한 전설이 내려오는 호안끼엠 호수와 역시 그와 관련된 작은 섬 <응옥손>. 호수 위에 떠있는 작은 섬으로 가기 위해선 붉은 다리를 건너야 하고, 다리를 건너면 섬 위에 있는 사당에 들어갈 수 있다. 사당 안에 거북이가 있다는데 입장료를 내야 해서 이런 것에 크게 관심 없는 우리는 바라보기만 했다.



점점 추워져서 호텔로 돌아와 옷을 더 껴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백종원이 추천한 하노이 반미 맛집


이때만 해도 백종원이 지금처럼 외식업계의 대부처럼 여겨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창 마리텔에 나와 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나. 아무튼 그래도 백종원이 추천한 맛집이라면 한번 가볼만한 때가 아니었나 싶다. M이 하노이에 가면 백종원이 추천한 반미 맛집이 있다 하기에 그래 한번 가보자 하고 길을 나섰다. 하노이는 자잘한 골목이 많기 때문에 주소를 찍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미리 가고자 하는 곳의 간판 등을 익혀두고 가는 것도. 자잘하게 뭔가가 많으므로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주소 : 17-19 Ly Quoc Su Street, Hoàn Kiếm, Hanoi



사진에서 보던 노란 현수막을 보고 멈춰 섰다. 사람이 많아 기웃거리다 들어갔더니 직원이 2층으로 안내를 해준다. 네이버 사전을 뒤져가며 파테 반미와 햄 파테 반미, 콜라 두 캔을 시켰다. 파테 pate는 고기를 갈아 만든 프랑스식 무언가라고 하는데 마치 순대 속 같았다. 먹으라고 주면 먹긴 하겠지만 통으로 하나를 다 먹으라면 힘들다. 나는 이때부터 백종원의 입맛이 나와는 다를 거라 강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13일

캐논 EOS 5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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