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본일기

오키나와 산책

#오키나와일기 5. 빈티지 소품샵, 지사카스 じさかす

by 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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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근처에 온 김에, 어제는 시간이 늦어 둘러보지 못했으니 지금 구경하기로 했다. 오키나와의 시장은 오사카 난바에 있는 쿠로몬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념품이야 국제거리에 있는 것들과 똑같았고. 그래서 정말 말 그대로 가볍게 슥슥 둘러보기만 했다. 그러다 발견한 시장 옆 골목의 빈티지 소품샵 <지사카스 じさかす>. P가 지난 여행에서 갔다고 했었나 가려고 했는데 못 들어갔다고 했었나 아무튼 그랬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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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카스는 오래된 스티커와 장난감들로 가득했다. 오키나와에 미군들이 주둔해있었기에 스테이크로 유명하다더니 그 흔적이 이 빈티지 소품샵에도 남아있다. 미국의 혹은 유럽의 때 묻은 스티커들이 한가득이었다. 캐리어에 붙이려고 여러 장 골랐는데 한 장에 고작 50엔(한화 500원가량)! 스티커에서 그치지 않고 빈티지 봉투도 저렴해서 4세트, 오래된 마그넷, 오래된 병따개 등을 잔뜩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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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곳곳에 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띄었지만 이사를 한 우리 집의 내 방은 너무도 작아 눈물을 머금고 거의 대부분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사카스에서만 2,000엔을 넘게 썼다. 개당 비싸야 10엔, 비싸면 50엔짜리를 샀는데! 마지막 날 시간과 여건이 된다면 한 번 더 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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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 (돌아오는 길에도 이 골목 저 골목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짐을 풀어놓고 잠시 쉬며 주먹밥을 먹었다. 공원에서 먹을까 하다가 주먹밥을 먹다 보면 안에 들어있는 마요네즈 같은 것들이 흘러나올 것 같아 호텔에서 먹었는데 이는 잘한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주먹밥이 크고 들어 있는 게 많다 보니 줄줄 흘렀다. 주먹밥은 스팸과 계란이 들어간, 생각 그대로의 맛이다. 맛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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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속 숨은 공원 찾기


호텔 침대에 누워있다가 구글 지도를 켰다. 호텔을 기준으로 정문 방향으로는 미에바시역과 국제거리가 있는데, 그렇다면 후문 방향으로는? 지도를 살펴보니 크고 작은 공원들이 여럿 있었다. 이렇게 날이 좋을 때는 공원에 가만 앉아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먹밥을 소화시킬 겸 좋은 날씨를 즐길 겸 늘 걷던 방향과 정 반대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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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만큼 가로수가 예쁜 도로를 지나 도착한 공원의 모습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작은 언덕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이 휑해서 이 공원이 맞나 다시 지도를 봤다. 이 공원이 맞네. 공원이라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그냥 잔디 밭일뿐인데? 그래도 저 언덕 뒤 혹은 나무 뒤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 보자 해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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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무것도 없는 공원 옆 샛길을 지나자 제대로 된 공원이 나왔다. 물이 흐르는 아주 작은 강 혹은 도랑 위 다리를 지나니 공원에 가면 있을법한 솜사탕과 빙수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래, 이게 공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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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다운 공원에서는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이 재잘대며 놀고 있었다. 또 다른 쪽에선 초등학생 야구부가 야구를 하고 있었는데, 재잘대는 아이들보단 야구하는 쪽이 더 드라마틱해서 길을 따라 걸으며 계속 구경했다. 앞으로는 바다를 두고 뒤로는 푸른 하늘과 야자수 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야구장이라니!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보다는 「크게 휘두르며」 이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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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금방 끝이 났다. 지도에서 보았을 때도 별로 넓어 보이진 않았는데 직접 와서 걸으니 더 아담하다. 공원의 끝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모래사장 대신 조금 삭막한 바다였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이번엔 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예의 공원보다 더 작은 또 다른 공원이 나왔는데 이 공원은 토끼풀로 가득했다. 숨어있는 공원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이렇게 걷다 보면 또 다른 공원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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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마저 조용한 이 곳,
오키나와


그러나 더 이상의 공원은 없었다. 공원은 토끼풀 공원으로 끝이 났고 이어지는 곳은 고속도로였다. 고속도로는 어차피 내일 질리도록 탈거라서, 토끼풀 공원 옆에 있는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걷다가 분위기 좋은 골목이 나오면 또 몸을 틀고. 오키나와에서 몇 번이고 했던 말인데 이번 산책에서도 여러 번 "정말 조용하고 한가롭다"라고 말했다. 이 생각이 절로 떠오르고 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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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마저 '야옹' 소리 한번 안 내고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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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발을 놀리다 보니 중국식 정원이라는 <후쿠슈엔>이 나왔다. 딱히 들어가 볼 생각은 없어 후쿠슈엔은 스쳐 지나갔다. 목적지 없이 그냥 걷다가 예쁜 골목이 나오면 사진 찍고 또 걷고. 그러다 눈에 보이는 놀이터에 들어가 잠시 앉아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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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음에 우리가 국제거리 쪽으로 나왔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겐초마에 류보 백화점 근처였다. 이 부근에 다다르면 조용하던 게 거짓말처럼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이 시끄럽다는 것도 오사카나 도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워낙 조용한 골목을 누비다 나오니 소란스럽다고 느껴진다.


IMG_9496.jpg 내일 아침에 먹을 주먹밥도 미리 사두었다.


국제거리 곳곳에서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몇 개의 먹거리를 샀다. 한 사람당 35만 원만 환전해도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빈티지샵을 만나 돈을 쓰다 보니 남은 돈이 별로 없다. 이제 돈은 그만 쓰고 호텔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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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 짐을 놓고 잠시 몸을 뉘었다. 하루 종일 걷다 보니 둘 다 지쳐서 그대로 늘어져있다가 이대로 있으면 저녁도 못 먹고 잠들 것 같아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오늘 저녁은 첫날 저녁에 먹었던 <얏빠리 스테이크>! 오가는 길에 봐 두었던 다른 스테이크 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려 했는데 남은 돈을 헤아려보니, 새로운 곳에서 세금 등을 계산하며 먹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 가격을 제대로 아는 곳에서 먹는 게 마음 편해서 얏빠리 스테이크로 갔다.


그리고 스테이크 먹으러 가는 길에 만난 소나기! 소나기긴 소나기인데 그간 만난 소나기들과 다르게 세차게 내렸다. 처음엔 맞으면서 가도 되겠다 싶을 만큼 약하게 내리더니 어느 순간 후드득 쏟아졌다. 별 수 없이 눈앞에 보이는 처마 아래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그 처마에도 틈이 있었는지 비가 새길래 슬금슬금 옆 가게 처마 밑으로 피했다. 그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자니 우리가 안돼 보였는지 주인 할머니가 우산을 건네주며 쓰고 가란다. 거기다 되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 할머니의 우산을 받아 들고 다시 얏빠리 스테이크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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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는 오늘도 맛있었다. 이 가격에 이 정도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오늘은 첫날보다 더 많은 밥과 샐러드를 먹었다.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빼놓지 않고.


보통의 우리라면 저녁을 먹고 국제거리를 한 번 더 기웃거렸겠으나 오늘은 바로 호텔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밤의 오키나와는 낮보다 더 할 게 없고 조용한 데다 (물론 구경하자면 할 수 있지만) 우린 내일 자전거를 타고 저 위에 있는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야 하기에 오늘 최대한 푹 쉬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해.


2018년 3월 17일

캐논 EOS 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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