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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Feb 17. 2019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서 #2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종종 그랬는데, 교복을 입었을 때는 문학 시간에 내준 숙제에 그것을 다 풀어냈다. 그래서 전과 모범 답안으로 에이포 반 정도 되는 너비를 가진 문단의 열 줄 내외로 적혀있는 것을 나는 에이포 두어 장에 풀어썼다. 거기다 내가 쓴 글을 읽히는 것도 좋아해서 은연중에 선생님이 내게 발표시키는 것을 기다리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고등학생 때까지 문학 선생님들은 숙제를 열심히 해오는 나를 좋아해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발표를 시켜주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글을 쓰고 싶을 때 이렇게 어떤 형태로든 마구 풀어낼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곳이 없다. 마땅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써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브런치에 새로운 매거진을 하나 발행했다. 이름은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글이 쓰고 싶을 때 아무 말이나 적어댄다.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표준어 국어대사전>라는 수필의 사전적 정의에 기대어. 나의 글에는 유머나 위트, 기지가 없고 그저 나의 쓰고 싶은 욕망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나의 개성과 인간성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수필이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순간 중에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포함되어 있다. 화보다는 짜증이 날 때, 이 짜증을 풀 수가 없는 때에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친구들에게 내 짜증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온전히 풀어지지 않는 짜증을 글에 풀어낼 때가 있다. 물론 그 글의 대부분은 내 아이폰 메모장에 자물쇠까지 걸고 숨겨져 있지만 간혹 이 글을 풀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인터넷에 잔뜩 풀어낸 짜증 담긴 글을 비공개로 걸어두기도 한다.

 그러다 '남에게 상처 주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라는 문구를 봤다. 나는 지금 분명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글을 쓰고 왔는데 어떤 이는 그런 글은 쓰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쓴 글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상처로 다가갈 수 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상처 줄 의도를 가지고 싶지는 않은 거다. 그런데 나는. 오로지 정말 순수하게 짜증을 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쓴 것일까. 아니면 나의 이 짜증을 너에게 알려 상처를 주려고 글을 쓴 것일까. 아니다. 그 글은 내가 썼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나는 메모장에 글을 쓰거나 비공개로 글을 올려두겠지만, 여전히 글에 짜증을 담아내겠지만 이 글은 온전히 나만의 글이어야 한다. (물론 내가 인터넷에 저장해둔 글을 공개로 업로드하고, 아이폰 메모장의 자물쇠를 푼다고 한들 네가 내 글을 읽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나는 쉽게 짜증이 나는 사람이므로 '너'는 수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미치도록 좋을 때 글이 쓰고 싶기도 하다. 어제 한 콘서트 무대 위 시우민이 너무 좋아서, 오늘 다녀온 여행지가 너무 좋아서, 지금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지만 정말로 써낸 글은 많지 않다. 미치도록 좋은 순간은 짧고 오로지 그 시간을 즐기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퇴근 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골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이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당장 아무 글이나 쓰고 싶은데 무엇에 대해 쓰고 싶은지 몰라 무작정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막상 한문단을 쓰고 나니 글을 쓰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이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나조차 무슨 글인지 모르겠지만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조금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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