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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Feb 12. 2019

수영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서 #1


 나는 수영을 못한다. 수영뿐 아니라 할 수 있는 운동이 거의 없다. 달리기도 못하고, 철봉에 매달리기도 못한다. 그나마 잘하는 것이라곤 (이것도 운동으로 쳐준다면) 오래 걷기. 그리고 잘하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어느덧 2년 가까이 주 2회씩 꾸준히 하고 있는 발레. 아무튼 내가 잘하지 못하는 운동이 넘쳐나는데 그중 가장 하고 싶은 건 수영이다. 어디서 보았는데 이제 초등학교에서부터 생존수영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하고 싶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해야 할 운동 중 하나가 수영이 아닐까.

 

01.

 살면서 처음으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대략 이십여 년 전. 자동차 극장에서 「여고괴담 1」을 틀어주었으니 아마 그쯤 되었겠다. 당시 큰외삼촌이 부산에 살아서 둘째 외삼촌을 제외한 우리 가족, 이모네, 막내 외삼촌까지 모두 부산 해운대로 여름휴가를 갔다. 그때도 수영은 못했지만 지금처럼 겁이 많지는 않아서 튜브도 없이 바다에 들어가 놀곤 했다. 어른들과 동생들은 전부 지쳐 밖으로 나가고 나 홀로 놀고 있었는데 불현듯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패닉에 빠졌다. 살려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허우적대던 나는, 모르는 아저씨와 남자아이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웃지 말고 나를 구해줘.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며 계속 웃기만 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발견한 아빠가 들어와 뭍으로 데리고 나와주었다. 오래된 기억은 언제나 조작될 위험이 있고, 어쩌면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때의 공포가 아저씨와 남자아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내가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02.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라오스 방비엥 블루라군에 갔을 때 이야기다. 방비엥은 물에서 하는 액티비티의 천국으로 우리도 구명조끼를 입고 방비엥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액티비티에 참여했다. 그리고 방비엥 액티비티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블루라군에서 수영하며 자유시간 보내기였다. 구명조끼도 입었겠다, 튜브도 빌렸겠다, 바다처럼 파도가 치는 것도 아니겠다 여기에 나와 함께할 친구들도 있겠다 딱히 두려울 게 없었다. 그렇게 블루라군 한가운데 있는 그네 근처에 모여 열심히 놀던 중 친구들이 그네에서 벗어나 블루라군 사이드에 있는 안전 밧줄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따라 이동하려는데 나의 '안전'이던 튜브와 구명조끼로 몸의 움직임이 둔해져 이동이 영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으니 하루 종일 같이 투어를 돈 프랑스 남자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그가 이끌어주는 손을 잡고 친구들에게 이동했다. 튜브가 거추장스러워졌을 때, 왜 진작 수영을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그러다가 프랑스 남자가 손을 내밀었을 때, 수영을 배우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03.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수필집의 '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좋아하는 남자애'와 함께하고 싶어 수영장을 다녔다. 만일 나도 좋아하던 남자애가 같이 수영을 하자고 했다면 지금쯤 수영쯤은 거뜬하게 해내는 어른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내가 처음 좋아했던 사람인 해찬이를 만났을 때의 난 여섯 살이었고, 우리 동네에는 수영장이 없었으며 그때의 우린 수영보다도 해찬이네 집에서 해찬이 누나의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에 심취해있었다. 수필 속 나처럼 열 살에서 열한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전학을 갔고, 그때는 해찬이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집 근처에 수영장은 없었다.

 간혹 엄마에게 "왜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키지 않았어?" "왜 어릴 때부터 수영을 시키지 않았어?"라고 묻는다. 그럼 엄마는 "네가 한다고 안 했잖아."라고 대답한다. 어릴 때 다녔던 피아노 학원도, 어항 그리기만 하고 끝낸 미술 학원도, 내 인생 첫 학원인 유치원 내 속셈 학원도 전부 내가 다니고 싶어서 다닌 거였다. 그러니까 여섯 살의 나는 이십여 년 후 영어의 중요성을 몰랐고, 언젠가 수영을 하고 싶어 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항상 너무 바빴다. 집 앞 낮은 산에 올라 쓰러진 나무 위에 앉아있어야 했다. 해찬이와 해찬이네 집에도 가야 했고,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아이들과도 놀아야 했다. 우리 중 아무도 수영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작년까지 다니던 회사에 아주 작게 수영 붐이 일어났었다. 붐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고 마치 유행처럼 너도 나도 수영을 했더랬다. 아침 수영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퇴근 후 내가 발레를 갈 때 수영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여름이 지나자 서서히 수영장에서 멀어졌다. 한창 그들이 수영장을 다닐 때 나도 이번에야말로 수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는가? 아니오. 그러나 우리 집과 회사 사이에 구청이 하나 있었고 찾아보니 수영 강습을 했다. 그렇다면 다시,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는가? 세모. 강습용 수영복이 있는가? 아니오. 하지만 내 신용카드가 해결해줄 테다. 마지막, 수경이 있는가? 아니오. 나는 눈이 매우 나쁘기에 렌즈를 끼고 수경을 쓰거나 수경에 도수를 넣어야 하는데 전자는 눈에 좋지 않다. 후자는 비싸다. 고로 다시 원점이다.

 이직을 했고 겨울이 되었다. 다시 마지막 질문, 수경이 있는가? 아니오. 하지만 월급이 올랐으니 수경에 도수를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집과 거리가 있는 곳에서 수영을 하고 머리를 감고 대충 말리고 나오면 내 머리카락이 온통 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수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날이 풀리면 꼭 수영을 배우겠노라고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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