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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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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Sep 29. 2018

모두가 취하는 밤

#라오스일기 4. 들어는 봤니, 라오스의 프렌즈펍


여기가 방비엥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방비엥 도착. 나는 방비엥이 아닌 두 번째 휴게소에 도착한 줄 알았다.


산등성이를 넘고 또 넘어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왔기에 방비엥이 조금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구나 했지, 보통 생각하는 버스 터미널도 없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라오스의 유명 여행 지니까 조금 더 터미널다운 버스터미널에 내려주리라 생각했다. 버스 여러 대가 줄지어서있고 사람들로 조금은 북적이는 그런 터미널. 그러나 한참을 달려 버스가 정차한 곳은 (아마도 방비엥 초입에 자리 잡은 듯 한) 어느 호텔의 넓은 주차장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타고 온 버스뿐 아니라 두어 대의 버스도 정차해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공식적인 버스터미널이 맞기는 맞는 듯했다.


앞선 여행일기에도 적었듯 우리는 숙소와 도시 간 이동 방법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그나마 알아본 것도 방비엥에 가면 뭘 해야 한대, 루앙프라방에 가면 뭘 봐야 한대 정도였지. 방비엥의 숙소 가는 법도 예외는 아니라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찾으려 했다. 보통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는 중심부로 들어가는 여러 교통수단이 있는 법이고, 구글 지도에 주소를 찍어 구글이 추천해주는 교통수단을 타면 금방 호텔에 도착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터미널의 모습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터라 당황스러웠다. 다른 교통수단 (대게는 버스) 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호텔 주차장이라니.


호텔 주차장 바로 옆에 있던 수영장. 정신은 없었지만 수영장에 내리쬐는 빛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당황도 잠시, 호텔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등의 교통수단이 있을 리 만무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도 주차장 한쪽에 툭툭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흥정을 했으나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대체 중심부까지 얼마나 멀길래 이렇게 부른 거야라고 생각하며 구글 지도로 길을 찾아보니 걸어갈만한 거리라 걷기로 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얼른 출발하세요!



호텔 주차장에서 나와 5분도 채 걷지 않아 나타난 방비엥의 메인 로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방비엥에서의 모든 길은 이 길로 통한다. 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길을 걷다 발견한 유명한 샌드위치! 꽃보다 청춘의 그들도 먹었고 방비엥에 다녀온 모든 블로거들이 먹었던 그 샌드위치. 혼자 먹기엔 컸지만 첫날이니까 모두 하나씩 들고 먹었다. 그리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샌드위치였다. 엄청나게 맛있지도 않았고 하나를 다 먹기엔 느끼했다. 샌드위치에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조금은 실망했다.


덧붙임 1. 딱히 유명한 샌드위치 맛집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방비엥의 길거리 샌드위치 자체가 유명하다. 길을 걷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다.

덧붙임 2. 라오스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으려면 위생 상태는 정말 딱 눈 감고 무시해야 한다. 걸레에 -이건 수건이 아니다 정말 걸레다- 손을 닦고 그 손으로 빵과 재료를 꺼내고 자른다. 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쯤은 먹어보라!




안녕 여긴 방비엥이야



한참을 자기들끼리 신나서 놀던 아이들이 바라본 곳에는



자전거를 끌고 가던 아이도 바라본 곳에는



샌드위치를 기다리다 이들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열기구가 떠있었다. 그 순간 '정말로 비현실적이다'라고 생각했다. 해는 지고 있는데 열기구는 뜨고 있었다. 이쪽 하늘에도 그리고 저쪽 하늘에도 무지개색 열기구에 둥실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샌드위치가 맛없는 곳. 그러나 이내 맛없어도 괜찮아지는 곳. 안녕, 여긴 방비엥이야.



라오스에서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방비엥 안쪽 골목 한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마운틴뷰 리버사이드 부티크 호텔>. 처음 구글 지도에 검색했을 때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 입구로 나오길래 그곳으로 갔는데 그곳은 호텔이 아닌 ‘미운틴 뷰 리버사이드 부티크 리조트’였다. 이름이 똑같아서 착각했네. 어쩐지 우리가 결제한 금액보다 훨씬 더 고급 져 보이더라니. 거기서 더 걷고 걸어 나온 우리 호텔은 뷰가 참 좋았다. 테라스로 나오면 이런 푸름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프런트 직원도 좋았는데 그는 우리가 루앙프라방으로 떠나는 그 순간까지 참 친절했다. 다만 이 호텔에서 아쉬웠던 건 화장실. 화장실 문이 잘 잠기지 않았고 지저분했다. 그래도 따뜻한 물은 콸콸콸 잘 나왔다.



테라스로 나와 아래를 내려다보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외국인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자전거를 탈 줄 몰랐는데 지금처럼 쌩쌩 잘 탈 줄 알았다면 저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방비엥 골목을 누볐을 거다.)



또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까지 하늘을 나는 열기구를 볼 수 있었다. 화장실 정도야 조금 지저분해도 이해될 만큼의 뷰. 이곳에서 열기구를 타고, 패러글라이딩을 타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군가 그랬다. 라오스에서는 만수르처럼 살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린 한국을 떠나기 바로 전까지 만수르는 아니더라도 삼성 회장 이건희처럼은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린 라오스에서도 가난한 여행자였다. 못해도 이건희처럼 지내려면 생각보다 환전을 조금 더 해야 한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금액보다 더! 에라, 술이나 마시러 가자.




들어는 봤니
라오스의 프렌즈펍 friends pub


라오스 방비엥 여행을 찾다 보면 '프렌즈 펍'이란 단어가 따라온다. 처음에는 정말 단순하게 술을 마시며 친구를 사귀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러다 먼저 라오스에 다녀온 회사 동료가 프렌즈 펍은 미드 프렌즈 friends를 틀어주는 펍들을 일컬어 말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며 친구를 사귀는 곳도 아니고, 펍의 이름이 프렌즈 펍인 것도 아니고 길 한쪽에 쭉 늘어서있는 모든 펍들이 다 프렌즈 펍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 모든 펍들이 다 그 제니퍼 애니스턴이 나오는 그 프렌즈를 틀어놓고 있었다.



왜 하필 프렌즈인지 모르겠다. 섹스 앤 더 시티도 있는데. (나는 프렌즈를 보지 않았고 미드는 화이트칼라섹스 앤 더 시티를 가장 좋아한다.) 검색해보면 그 이유가 나올지도 모르겠으나 모르는 채로 두련다. 그래도 내 나름의 추측은 해보았는데, 서양인들은 우리와 달리 한두 달씩 길게 여행 와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니 그들의 향수병을 달래려 틀어준 게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게 어지간한 서양인들은 전부 프렌즈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아니면 말고.


맥주보다 먼저 우리 테이블을 찾아온 도마뱀. J와 M은 기겁했고 나는 귀엽다며 사진을찍었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데 뭘.


어쨌든 우리도 그 유명 하디 유명한 프렌즈 펍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는 보지 않을 거지만 분위기는 느끼고 싶으니까. 맥주와 쌀국수, 팟타이, 계란 볶음밥을 시켰는데 맛에 대한 평가는 '팟타이가 아주 맛있다'고만 적어둔 걸 보니 다른 건 그냥저냥 먹을만한 정도였나 보다. 아, 사진을 보니 떠오르는 작은 에피소드 하나. 우리의 맥주가 (여기서 맥주는 역시 비어라오) 시원하지 않아 얼음을 부탁했더니 쿨하게 얼음 통을 하나 턱 주고 갔다. 얼음을 뜰 수 있는 숟가락도 함께. 이게 뭐라고 얼음통을 보며 킬킬 웃어댔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인은 나빠요



호텔로 돌아와 조금 쉬다가 다음날을 위해 카약킹+블루라군 패키지를 예약하려고 다시 나왔다. 여기저기 여행사를 기웃거리다 먹은 팬케이크. J와 M, 특히 M이 참 좋아했으나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셋 중 내가 제일 단것을 좋아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단 맛이 아니었다.


패키지를 찾다가 조금 웃긴 일이 있었다. 튜빙도, 짚라인도 필요 없고 오로지 카약킹과 버기카를 타고 가는 블루라군만 원했던 우리에게 좀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패키지는 없었다. 대부분은 튜빙과 짚라인까지 함께 묶어 원데이 패키지를 팔았기 때문에, 카약킹과 버기카를 따로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겨우 한 곳을 찾아 예약을 해놓고 돌아다니다 보니 다른 곳에 비해 너무 비싸서 돈을 내기 전에 취소했다. 당일이 아닌 익일 예약인 데다 "예약할게요"라고 말한 뒤 얼마 안 지나서 바로 취소한 건데, 직원이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인은 나쁘다고 했다. 예약금을 낸 뒤에 그걸 돌려달라 한 것도 아니고 예약하고 십 분 이십 분이 지난 것도 아니고 정말 오분도 안되어서 바로 취소한 건데 왜? 다른 곳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판매하는 자신들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문제란 말인가? 마치 우리가 온 우주 최고의 진상 손님이 된 듯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와선 이 곳 방비엥에 있는 모든 투어사들이 다 자신의 회사라서 어딜 가든 가격이 다 똑같다고 했다. 그 여자의 말을 받고, 그럼 그 거리에 있는 모든 투어사가 자신들의 회사이니 우리가 지금 취소를 하고 다른 여행사에 가서 구매를 해도 결국 이익 아닌가?


기분만 상한채 뒤돌아 나와 다른 투어사로 갔다. 생각보다 방비엥에서 버기카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버기카를 포기한 상태였기에 처음보다 여행사 찾기가 수월해졌다. (비싸긴 해도 이때 아니면 언제 버기카를 타보겠어하며 찾아다녔는데 마땅치 않아 결국 포기.) 대신 카약킹을 추가해서 카약킹와 블루라군만 원한다고 했더니 기존의 패키지를 조금 수정해서 추천해줬다. 카약킹 6km - 동굴 튜빙 - 점심 - 카약킹 4km 그리고 블루라군까지 원데이와 반나절 사이의 패키지. 할인도 해줬다. 다음날 보니 이 쪽에서 꽤 큰 곳 같았다. 가이드들도 친절하고 재밌고 좋았던 원터풀 투어!



패키지를 예약하고 나니 온 몸의 힘이 빠졌다. 마침 J와 M이 마사지를 받고 싶다 해서 원더풀 투어 바로 맞은편에 있는 마사지샵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당 60,000낍씩 주고 한 시간 조금 안되게 전신 마사지를 받았는데 그것이 참 애매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것 같았고 우리는 아이들이 마사지를 해줬는데 그냥 살짝 주무르는 정도였다.




모두가 취하는 밤



M이 가고 싶어 했던 <사쿠라바>와 그 맞은편 가게. 사쿠라바는 아마도 방비엥을 검색하면 프렌즈펍과 같이 꽤 보일 이름이다. 말 그대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바 bar인데 소문에는 대마초까지 피운다고 한다. 뭐 나도 대마초 하는 모습을 본 게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러나 실제로 가본 사쿠라바를 떠올리면 그게 꼭 거짓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쿠라바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문란해 보였고, 안까지 들어가긴 했으나 도무지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나왔다. 모두가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진은 왜 이렇게 건전해 보이지?



방비엥 거리는 술로 넘실대는데 우리만 이대로 자기가 아쉬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또 다른 바를 찾기 시작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았으나 결국 간 곳은 숙소 근처에 있는 <제이디바 JD bar>. 여기도 여행자들로 북적대기는 했으나 여느 바처럼 문란한 분위기는 아니라서 좋았다. 시끄럽게 게임을 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도 곧 조용해졌고. 우리도 방비엥의 술병을 든 여행자가 되었다.


2015년 11월 27일

캐논 파워샷 g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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