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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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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May 21. 2019

대만의 작은 야시장

#대만일기 1. 가오슝에서 컨딩까지, 쉽지 않은 길



엑소가 초대한 여행


점심 비행기는 참 애매하다. 점심에 출발하면 어지간한 동남아는, 시차를 적용한다 해도 무언가를 하기엔 애매한 시간인 네다섯 시에 도착하거든. 가오슝은 타이베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그런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시간뿐만 아니라 요일까지도. 그러나 내가 다녀온 게 불과 일주일 전인데 바로 얼마 전에 모든 요일을 다 운행하는 항공편이 생겼다. 이럴 수가.

"대만을 좋아해"라고 말할 때 내가 말하는 대만은 타이베이다. 그렇다면 몇 번이고 갔던 좋아하는 타이베이를 뒤로하고, 얼마 없는 항공편을 고르고 골라 가오슝에 간 이유는. 이게 다 엑소의 사다리 타고 세계여행 2 - 가오슝&컨딩 편 (이하 엑사세)때문이다. 이왕 대만을 갈 거라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엑소가 갔던 곳을 따라 가보자. 그래서 가오슝이었다. 엑소가 나를 가오슝으로 초대했다. 그래서 나는 가오슝으로 향했다. 애매한 점심 출발 비행기를 타고.



언제나 그렇듯 제주항공은 연착을 했다. 20번 넘게 제주항공을 탔기 때문에 이제 이 정도의 연착은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아. 비행기를 타자마자 핸드폰에 다운 받아온  엑사세를 틀었다. 우습게도 나도 채 다 보지 않은 이 영상들을 같이 간 다른 가수의 팬 P는 다 보았다. 알짜배기만 봐야지 싶어 새벽에 일어나 몇 편을 골라 다운로드하여 왔다. 좋아 이제 정말 제대로 엑소 따라 여행 한 번 해보자!





가자
머나먼 컨딩으로


엑소를 따라가려다 보니 타이베이때처럼 한 도시에 머무르는 게 아닌 가오슝과 컨딩 두 도시를 가게 되었다. 컨딩에서 1박, 가오슝에서 3박 총 4박 5일. 사실 여행 전에  엑사세를 다 보고 제대로 여행 준비를 했더라면 컨딩 2박, 가오슝 2박으로 적절하게 나눴을 텐데 대만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뭐 하나 제대로 알아본 게 없던 터라 컨딩 1박이 아주 나이스한 선택인 줄 알았지 뭐야.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가오슝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오슝 시내가 아닌 컨딩으로 향했다. 우리의 예상대로라면 오후 네다섯 시에 대만에 도착할 텐데 어차피 버린 하루이니 그냥 이동으로 모든 시간을 써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비행기는 한국 시간 다섯 시, 현지 시간 네시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짐을 찾고 유심을 바꾸고 나니 네시가 조금 넘은 시간. 유심 파는 곳 바로 옆에서 가오슝에서 컨딩으로 넘어가는 버스 왕복 티켓을 구매했다. 컨딩으로 가는 버스는 대략 한 시간에 한 대씩 있었고 우리는 다섯 시 십분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무리 이동하는데 시간을 다 쓰기로 했다지만 시간을 너무 허공에 뿌리는 기분이네.


버스 2층 맨 앞자리에서.


다섯 시쯤 티켓을 구매했던 창구로 다시 돌아가면 직원이 사람들을 이끌고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준다. 공항도 엄청 작고 버스도 단 한대만 서있어서 헷갈릴 염려가 없는데 친절도 해라. 버스 기사님께 우리의 목적지가 적힌 티켓을 한번 보여주고 탔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찾아두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잖아.



그리고 드디어 출발! 세 시간 정도를 달리면 컨딩에 도착한다. 대만 남부에 위치한 컨딩은 북부에 위치한 타이베이와 끝과 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끝과 끝을 가보다니. 일부러 버스 2층의 맨 앞자리에 앉아 바깥을 구경하며 갔다. 곧 해가 지고 어두워지겠지만 그전까지만이라도 구경하고 싶어.



가오슝도 컨딩도 아닌 곳. 그러나 컨딩에 더 가까웠던 곳.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부채꼴로 퍼지는 LED 간판이 신기해서 한참 사진을 찍었다. 저 LED 간판 때문인가 오키나와의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는 길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이제 A에서 B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C에서 D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지난 여행들이 떠올라서 되려 재밌어진다. 지금 하는 여행과 지난 여행의 추억이 교묘하게 겹치기도 하고. 이래서 여행은 즐거워.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거의 암전 상태에 이르렀다. 마치 우리의 제주도처럼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한 도로를 달렸다. 얼마 전에 제주도를 다녀와서 그런지, 아니면 컨딩이 바다랑 딱 붙어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서 그런지 막연히 '아, 내 옆에 바다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 번 이런 어둠을 경험해서 그런가 나는 그다지 무섭지 않았는데 P는 이 어둠이 무섭다고 했다. 정말 칠흑 같은 어둠이긴 했지.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우후죽순 간판들이 나타났다. 여기가 컨딩 시내인가 봐. 사실 인터넷에서 우리가 내릴 정류장 이름을 알아가고, 중간에 한 학생에게 여기가 어디쯤인지 묻기도 했지만 다 필요 없다. 그냥 왼쪽으로 맥도날드 간판이 보일 때 내리면 된다. 컨딩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맥도날드의 그 거꾸로 된 W 로고만이 커다랗게 보인다. 까만 하늘로 동동 떠있는 샛노란 간판.


거진 하루를 전부 써서 무사히 목적지인 컨딩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호텔까지 그리 멀지 않은 데다 가는 길에 야시장이 있어 정말 기분 좋게 걸었다. 비록 오기 쉽진 않았어도 야시장이 우릴 반겨주잖아. 둘 다 버스에서 늘어져있다가 '도착하면 야시장이 있대'란 소리에 다시 기운을 차렸는데 정말 야시장이 서있었다. 야시장을 보니 피로가 날아가고 기분이 들떴다. 분위기도 좋고 먹을 것도 많아 보여. 거기다 도착한 호텔도 좋았다. 비록 엑소가 묵었던 그 풀빌라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쾌적하고 좋았다. 체크인을 도와주는 직원도 친절하고. 벌써부터 컨딩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컨딩은 마음에 들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구경에 앞서 밥부터 먹기로 했다. 컨딩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P가 찾아둔 철판구이집인 <大埔鐵板燒>에 갔다. 우리가 내렸던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곳으로 널찍했다. 배가 고파 이것저것 고르는 게 귀찮아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 맥주 두 캔을 가져왔다. 


빈자리에 양배추만 들어오면 세팅 끝!


구글 후기에서는 화려하게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늦은 시간에 가서 인지 철판의 일부만 써서 요리를 했다. 그마저도 우리를 등진 곳이었기에 우린 완성된 음식밖에 볼 수 없었네. 우리가 주문한 세트는 소고기와 버섯, 연어로 구성되어있고 숙주와 양배추를 기본으로 주는 듯했다. 음식은 모두 맥주와 잘 어울렸다. 짜단 얘기다. 음식이 전부 다 짰다. 음식의 간을 강하게 해서 먹는 내게 딱 맞거나 조금 짜거나 했으니 P에겐 꽤 짰을 듯. 그래도 밥을 같이 줘서 짠맛을 적당히 버무리며 먹기 좋다.



대만의 작은 야시장


배가 부르니 기분 좋게 야시장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버스에서부터 우리가 그토록 기대한 야시장 아니야. 컨딩의 야시장은 여느 동남아 야시장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같은 대만의 야시장인 <스린 야시장>과도 꽤 달랐다. 그들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어 깔끔한데 또 그 안에 적당한 부산스러움도 있고. 내가 갔던 야시장들이 거진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곳 같았다면 이 곳은 현지인들을 위한 곳 같았다. 뭐 현지인이라고 해봤자 대만의 다른 지역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니 결국 여행자겠지만 그래도. 그간 내가 갔던 야시장들 중 가장 좋았다. 아무래도 쾌적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음식들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내 또래가 많았는데 여러모로 색다른 곳이었다. 컨딩이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 컨딩 야시장에선 서양인 여행자들을 많이 봤다. 그들이 어딜 가든 많지만 특히 이곳에서 본 여행자들을 라오스에서 본 여행자들과 그 결이 비슷했다. 정말 프리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계단에 앉아 자연스레 웃고 떠드는. 그 옆에 맥주도 두어 병 놓여있고. 타이베이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의 여행자들이었다. 볼수록 매력적인 곳이라 컨딩에 이틀 묵을걸 하고 계속해서 후회했다. 왜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왔을까 우리는. 특히 나는.




야시장의 묘미는 군것질이지. 철판구이집에서 먹은 것이 아직도 배에 가득 차 있었지만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로띠를 샀다. 라오스에서 처음 맛보고 방콕에서 맛있게 먹었던 그 로띠를 대만 야시장에서도 보다니!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듯 어설픈 손놀림으로 어설프게 만들어내었지만 뭐 맛만 있으면 되는 거지. 그러나 맛이 없었다. 만드는 건 어설퍼도 괜찮아. 그런데 맛없는 건 안돼. 그래서 여긴 안돼.


오늘은 엑소 따라 한 게 가오슝과 컨딩에 온 것뿐이지만 내일부터는 제대로 한 번 따라가 보련다.


2019년 5월 10일

캐논 EOS 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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