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목숨을 건 클라이밍? 비아 페라타

by 에스카

목숨을 건 클라이밍? 비아 페라타 (Via Ferrata)

스위스에서 실내 클라이밍도 재밌었지만, 산과 호수에 갔던 기억들도 좋았다. 스위스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이곳엔 자연과 관련된 아웃도어 액티비티가 매우 대중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도시처럼 번화가가 있는 곳도 있었으나, 주말이 되면 자연으로 향하는 많은 인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말 아침 프리부르역에 가보면, 가족단위, 친구들, 혹은 개인 등 근교의 산이나 호수, 강으로 휴식이나 트랙킹, 하이킹을 하기 위해 선로에 서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전문가용 등상장비, 스포츠 웨어를 입은 사람들, 편한 바람막이, 운동복, 일반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도 많았다. 배낭하나 들쳐 매고, 한 손에는 빵과 과일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로 어떤 스포츠 웨어를 입는지, 어떤 유행이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어느 날은 혼자 다른 지역으로 훌쩍 떠나 걷기도 하고, 이름 모를 칸톤의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이고 멍하니 누워 있던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와는 참 다른 삶이었다.

그러 던 어느 날, 우리 연구실에 들어온 스위스 석사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 흥미로운 산악 활동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실내 클라이밍을 즐긴다고 하니, 한번 프리부르 주에 있는 산들로 하이킹을 가보라고 한 친구가 말했다. 하네스와 헬멧이 없더라도, 그곳에 가면 몇 프랑이면 빌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명산 융프라우, 피르스트, 마터호른이 아니더라도 이곳 스위스에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많다는 것이다. 유명하지 않은 만큼, 가격도 싸다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이 친구의 말을 듣고 찾아보니, 프리부르 주에 치즈로 유명한 그뤼예르(Gruyères) 지역에 몰레송(Le Moléson)이라는 산이 있었다. 이는 한라산만큼 높았다. (한라산 해발 약 1947 m, 몰레송 Le Moléson 2002 m). 그리고 이곳에 비아 페라타(Via Ferrata)라는 이름과 함께 헬멧과 선글라스, 하네스를 착용하고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비아 페라타(Via Ferrata)는 이탈리아어로 ‘철로 된 길’’을 뜻하며, 절벽에 설치된 철 케이블, 계단, 사다리, 고정 볼트를 따라 오르는 산악 활동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알프스 산악 지대에서 군인들의 이동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안전 장비(헬멧, 하네스, 카라비너와 전용 랜야드 세트)를 갖추고, 고정 케이블에 연결한 채 절벽이나 산악 루트를 비교적 안전하게 즐기는 레저·스포츠 활동으로 발전했다.

헬멧과 하네스, 전용 랜야드(카라비너와 쇼크 흡수 장치)를 착용한 채, 몸을 철 케이블에 항상 연결해 이동한다. 하이킹과 클라이밍의 중간쯤 되는 이 액티비티는 절벽 위를 비교적 안전하게 걷고 오를 수 있게 해 주며, 걷는 내내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짜릿한 긴장감과 함께 다가온다 (사진 출처: Fribourg.ch).


아무리 안전하다고는 하나, 혼자 이곳에 갈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주말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 몰레송으로 떠났다. 아쉽게도 이 날은 하늘이 흐렸으나, 오히려 이런 날 햇빛에 그을리지 않고 시원하게 산을 탈 수 있다는, 한 친구의 말을 듣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꿈에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산 중턱 비아페라타를 시작하는 지점까지는 케이블 카를 탔다. 비록 몇백 미터 높이였지만, 올라가는 동안 안개들이 조금씩 많아졌고고, 공기가 차가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작 지점에 도착하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정말 이 정도는 스위스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없나 보다. 하네스와 헬멧을 빌려 착용하니,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이제 철로 된 사다리에 카라비너를 걸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클라이밍처럼 홀드 모양이 조그맣다거나 모양이 험악(?) 하지 않아, 의외로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주변의 나무와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아 조금 쉬기도 하며 여유롭게 오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인공암벽장에서 리드클라이밍을 하는 그 맛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절벽에 사선으로 된 철로 된 루트를 타다 보니, 매우 고요해졌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고, 종종 새소리가 들렸다. 타다 보니 재밌고 상쾌해지기는 하는데, 점점 군복무 중 행군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어느 정도 올라가 보다니 안개로 인해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되었다. 시야가 좁아지니 (약 1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철근으로 된 사다리와 카라비너로 이어진 생명줄만 보였다. 분명 해발 천몇 백 미터일 텐데, 뒤를 돌아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냉장고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왼쪽) 절벽을 오르는 나의 모습. 아찔하지만 재밌다. (가운데) 절벽을 사선으로 올라가는 동료들. 안개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오른쪽) 안갯속 비아페라타 중. 마치 냉장고 안에 있는 듯하다.


앞에서 먼저 가던 스위스 인이 안갯속에서 말하는 게 들렸다. “이 정도면 괜찮은 날씨야. Welcome to Switzerland!” 그 소리에 피식 웃었지만, 슬슬 다리가 후들거리고 춥기 시작했다. 안갯속 비아 페라타를 한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안개는 차츰 사라졌다. 안개가 형성됐던 고도보다 높이 올라왔단 뜻이겠지? 마침내 뒤를 돌아본 순간 발아래로 편 쳐진 풍경은 경이로움과 아찔함 그 자체였다. 구름으로 반쯤 덮인 산들은 웅장함과 묘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융프라우나 마터호른처럼 해발 몇천 미터 높이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 나를 하늘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작게 보일까? 와..’

우리는 휴식 시간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져온 스위스 치즈를 빵에 올려 한입 베어 물었다. 스위스 친구가 “Santé (상떼, 건강을 위하여)” 를 외치며 에비앙 물병으로 건배를 취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웃으며 건배를 했지만, 내 팔은 떨리고 있었다. 피곤함 속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우리는 등반과 하산을 총 약 6시간 동안 했다. 내려오는 중간 다리에 힘이 풀려 몇 번 미끄러졌지만, 이 또한 재밌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정말 산을 잘 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스위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산이 있는 곳에선 쉽게 비아 페라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 사람들은 친구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끼리도 종종 즐기는 산악 활동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던 것이다.

(왼쪽) 동료가 찍어준 나의 모습. 안개로 뒤덮인 절벽 뒤를 돌아보면 간담이 서늘하다. 아찔하다! (오른쪽)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모습. 구름으로 반쯤 덮인 산은 웅장함과 오묘함을 내뿜고 있었다.


비아 페라타를 끝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두려움을 이겨낸 나 자신이 참 기특했다. (솔직히 말해, 발이 미끄러질 때면, 가슴이 철렁했다. 그것도 여러 번!) 동시에 스위스의 로컬들만 즐기는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확실히 비아 페라타는 복잡한 장비나 리드 클라이밍 교육이 없어도, 비교적 안전하게 산을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이렇게 나는 스위스에서의 인상적인 클라이밍 경험을 마음속에 새겨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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