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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나를 지지해준 것은 바로 일기

내가 10년간 일기를 써올 수 있었던 방법

by 양애진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언제나 내가 동경하는 행위이자 다짐하는 목표였다. 관심사가 많고 몽상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성향 때문인지 항시 끝맺음을 맺어야 한다는 강박이 뒤따라온다. 올해의 다짐 중 하나도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내기'였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일기 쓰기'다.




| 기록 시작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간 스무 살 때부터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니 더 이상 내 일상에 대한 간섭이 사라졌다. 누구도 나를 하나하나 봐주거나 시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라고 깨우는 이도, 숙제해오라고 다그치는 이도 없었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야 했다.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 일기를 쓰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기록했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나와 내 상황을 대상화 함으로써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왼쪽부터) 2012-2013년에는 다이어리에 쓰고, 2014년부터는 메모 어플에 쓰기 시작했다.



| 기록 도구 (솜노트>애플메모>에버노트)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쓰는 것


일기만큼은 아날로그와 거리가 멀다. 손때와 시간의 흔적도 중요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내 기록의 도구는 반드시 '모바일' 호환이 가능해야 한다. 물론 첫 2년 동안 쓴 다이어리에는 그때만의 감성이 뭍어나 애틋함이 있다. 하지만 보다 텍스트 집중적인 방식은 메모 어플이 아닐까 싶다. 5년 동안 솜노트를 쓰다가 애플메모노션을 거쳐 현재는 에버노트에 정착하여 3년째 애용 중이다. 주 일기장이 에버노트 일뿐 사실 일상을 기록하는 데에는 애플메모, 노션, 브런치, 인스타그램, 구글캘린더 등을 모두 사용한다. (사실 모두 노션으로 통합하고 싶었으나 블록 단위의 노션은 텍스트 작업에 적합하지 않았다)


1) 어플 별 용도

왼쪽부터) 에버노트, 애플메모, 노션, 인스타그램, 브런치

에버노트: 주 일기장으로 사용하며 '일자별'로 기록한다.

애플메모: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주제나 불시에 생각나는 간단한 메모를 하며 '주제별'로 기록한다.

노션: 일별, 주별, 프로젝트별 스케줄 관리를 목적으로 사용한다.

인스타그램: 주로 일상에서 짧은 생각과 리뷰들을 적는다.

브런치: 특정 주제로 짜인 긴 글을 쓴다.


2) 에버노트 장점

빠른 검색: 가장 많이 쓰는 기능으로 분기별, 연도별 정리를 하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작성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홈파밍'을 검색하면 이에 관한 내용이 담긴 모든 기록이 나올 뿐만 아니라, 사진 내의 단어까지 인식해서 나온다.

계층 UI: 솜노트나 노션의 경우 페이지 하나하나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반면 에버노트는 계층 보기가 가능해서 글을 쓰면서도 다른 기록들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업로드: 일기와 함께 매일 그날을 대표하는 사진을 함께 업로드해둔다. 후에 목록의 사진들을 간단히 스킴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상기할 수 있어 좋다.

에버노트의 많은 기능들 중에 사용하는 것은 몇 없다. 사실 일기장에는 간단하고 가벼운 게 최고다.



| 기록 방법

모든 기록은 의미가 있다.


일기에 대한 내 지침은 이렇다. "모든 기록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쓴다. 지난 10년을 매일 기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1) 쓰는 시간 - 하루 내내

대개 일기는 하루를 정리하는 의미로 잠들기 전 밤에 쓰곤 한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퇴색되고 미화되기 마련이라 생각보다 하루를 모두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에버노트를 열고 날짜를 적는다. 그 후 매시간 기록해두고 싶은 생각이 날 때마다 바로바로 어플을 열고 쓴다. (메모 어플의 최대 강점이 드러나는 부분) 그래서 내 일기를 보면 대부분이 과거 시제가 아닌 현재시제로 쓰여 있다. 이렇게 기록하면 하루 내에서도 변화하는 내 기분과 생각의 흐름이 그대로 보인다.


2) 쓰는 내용 - 생각나는 모든 것

하루 내 있었던 일이나 사건을 그대로 적어 옮길 때도 있고, 소비한 콘텐츠, 떠오른 기억과 파생되는 기억들을 생각나는 대로 여과 없이 적어 둔다.

현상보다는 감상 위주로 쓴다. 일기란 결국 한 발짝 멀어져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도구다. 나 자신 안에만 갇혀 얽혀있는 생각을 글로서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보는 게 목적이다.

최소한 한 줄, 아니 한 단어, 한 장의 사진이라도 기록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글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생각을 떠올리게 할 트리거가 되는 무엇인가'다.

최대한 솔직하게 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안 좋은 기억과 생각은 필터링을 거쳐 온화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순간의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를 놓칠 수 있다.



| 기록 확장 (연말정리/브런치북)

한 해가 끝나는 자락에는 지난 일기를 훑어보며 연말 정리를 한다. 사실 하루하루의 나는 불안하고 자주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나 따위가 뭐라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흐름 위에서 종종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러나 1년의 시간으로 보면 꽤 많은 것을 이룬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일기들을 다시 엮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1) 연말 정리

1년 동안 여러 날에 걸쳐 흩어져있는 파편들을 다시 보며 그 안에서 흐름과 패턴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해석함으로써 유의미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한 해를 돌아본 후에 다음 연도의 방향을 정한다. 내가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자신감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원동력을 얻는 시간이라 12월 말이 되면 빠짐없이 하는 일이다.


2) 브런치북

몇 개의 연말 정리가 모이면 브런치북으로 엮어낸다. 개인적으로 브런치의 매거진 포맷으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적인 기록을 공적인 기록으로 옮겨내는 작업이기도 해서 조금 더 완성도에 신경을 쓴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부분들에는 구체적인 첨언이나 자료를 더하는 방식이다.

왼쪽부터) 2015-2016년, 2018-2020년, 2021년 연말 정리를 브런치북으로 묶은 것이다.




돌이켜보니 지난 10년간 나를 가장 지지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일기'였다. 확신이 없어도 계속해서 실해하고 이를 기록해 나간다면 그 자체로 점점 이야기가 되어간다는 것을 알려줬다. 1년이 3년이 되면서 눈에 보이는 스스로의 성장을 발견했고, 3년이 6년이 되면서 스스로의 행동과 선택에 있어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기 쓰기'가 가진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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