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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12. 2022

당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

당해보기 전까지는 몰라요. (진짜 꼭 한 번씩 필독 권유)

어제 아침 걸려온 보이스피싱으로 오전 내내 멘탈이 탈탈 털렸다. 원래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지만 하필이면 이날은 업무 관련해서 연락이 오기로 약속됐던 날이었다. 그렇게 받아버린 전화.. 요새 수법이 이렇게까지 교묘하고 치밀해졌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나는 화상통화까지 한 후에야 이게 보이스피싱임을 확신했지 그전까지는 꽤나 믿었었다. 실제로 지인이 대포통장 명의 도용된 사례도 있었고 예전에 형사 개인 번호로 연락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더 그랬다.

겁도 먹고 눈도 시큰해진 채로 손도 덜덜 떨렸지만, 시키는 대로 메모를 하고, 컴퓨터와 노트북도 껐었다. 폰 배터리가 5%가 되어가는 시점엔 “선생님 저 배터리가 꺼져가는데 잠시만요.” 이러면서 성실히 배터리 충전도 하면서 바닥에서 통화했다.

그리고 심지어 1500만원 카드론 신청까지도 했었다...!! 전화 끊자마자 바로 취소 요청을 하기는 했지만..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으나 사실상 소용 없는 일이었다. 일단 사이버수사대에 번호를 넘기기는 하겠지만 번호로 추적하기란 불가능하므로, 피해 본 것이 없다면 경찰서 와봤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 후 보이스피싱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수법과 레퍼토리는 몇 년 전과 동일했다. 그동안 내가 보이스피싱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것이다.

나만 이런 일을 당하는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 지인들도 당했다는 일화가 많이 들려왔다. 그중에는 심지어 실제로 (가짜) 검사를 미팅한 경우도, 직접 은행에 가서 돈도 인출한 경우도 있었다. 그 정도로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며, 반복된 레퍼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히는 수법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많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피해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이스피싱은 예방이 최선이다. 부디 나를 통한 주변 지인들의 2차 피해, 다른 이들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귀찮아도 딱 한 번만 꼭 읽어보기를..



내가 당했던 시나리오

1. 담장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내가 금융사기 피의자로 연루되어 고소가 들어왔다고 함.

2. 사건 내역, 사건번호를 알려줌. 이때 매우 중요한 내용이니 꼭 메모해두라고 당부까지 함.

3. 구속 조사와 약식 조사가 있는데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음. 구속 조사는 직접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아야 함. 다만 현재 피해자가 72명이나 되는 상황인 동시에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피의자 가능성이 가장 적은 사람들 대상으로 약식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함. (이 말까지 듣고 그냥 이런 일에 휘말린 것도 싫고, 얼른 끝내버리고 싶어서 알겠다고 약식 조사받겠다고 함)

4. 담당 검사 연결함. 혹시 몰라서 전화받으면서 검사 이름을 검색하니 실존 인물이었음.

5. 담당 검사는 약식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라면서 현재 전화는 녹취 중이며 2분 이상 자의로 끊어질 경우, 증거 인멸로 간주하고 긴급체포 들어간다고 미리 협박해둠. 그리고 IP 주소 수집을 해야하므로 수집에 방해되는 폰을 제외한 다른 전자기기의 전원은 모두 끄라고 시킴.

6. 매우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설명해줌.

    [실제  ] “OOO , 전라도 광주 OO라는 사람 아십니까? (당연히 알리가 없지만 광주라고 하니 내가 모르는 아는 사람인가 싶어 내심 놀람) 그럼 중고나라라는 사이트 아십니까? OO 일당이 고가의 물건을 싸게 내놓고 돈을 갈취하는 방식으로 사기를  거예요. 그로 인해 현재 확인 결과 72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요.  사람들은 OO 가해자인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대포통장 명인 OOO 씨를 고발한 상태예요. 그런데 OO 우리은행 지점장 근무자였어요. 관련자도 금융 대부업체 근무자, 여행사 직원, 통신사 직원이  엮어 있어요. 현재 OO  28명을 검거한 상태인데 압수 물품 중에 불법자금에 연루된 사람들이 나온 겁니다. 그중에 OOO님이 있던 거고요.”

7.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몇 번 어이 털린 웃음소리를 내니까 그때마다 “왜 웃으시는 거죠? 지금 이게 가벼운 사건으로 보이세요? OOO님은 아직 본인으로 인해 입은 피해가 얼마나 큰지, 이 사건이 어느 정도로 무거운지에 대한 감이 안 오세요?” 하면서 혼냄.

8. 현재 걸려온 번호를 저장해 카톡으로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내라고 함. (이때는 일단 상대방이 아닌 내가 번호를 저장하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쉽게 말을 따름) 카톡명은 ‘박OO’ 프로필은 서울 중앙지검 로고임.

9. 이게 조금 조악해서 의심이 커지던 찰나에 갑자기 고소장, 대포통장 입출금 내역, 조사명령서, 압수수색 구속영장 허가서 등 이름만으로 겁먹을 만한 서류들을 왕창 보냄. 문제는 이게 꽤나 그럴듯하다는 것임.

10. 맨 첫 장에 ‘특급 안건’ 단어 뜻을 설명하며 이는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사건으로 연예인, 정계 비리, 청와대 사건, 마약 등과 같은 중범죄 사안이라고 함. 이런 사건은 하나의 공공기관이 진행할 수 없으며, 투명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서울 중앙지검과 금융감독원이 협력해서 비공개 사건으로 수사 중임을 알려줌. (이때 금감원이 뭐하는 곳인지도 자세히 설명해줌)

11. 그리고 구속영장 허가서에 담당 검사 자기 이름을 보여주며 아직 직인을 찍지 않았지만 나와 통화 중 언제든지 내가 가해자라는 의심이 들면 바로 자신의 직인을 찍을테고, 그 즉시 구속 가능하다고 계속 협박함.

    [실제 한 말] “현재 제 직인이 찍혀있지 않죠? 아직까지는 OOO 씨가 피의자가 확실치 않으니 제가 보류해둔 거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라는 증거도 없어요. 그래서 지금 피해자 입증 약식 조사를 하는 거고요. 이거 직인 제가 찍으면 바로 구속영장 들어가는 거예요.”

12. 서류들을 한 장 한 장 읽게 하며 사건 번호 확인, 피의자 성함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게 함. 심지어 모르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줌. (아무리 그래도 보이스피싱이 이렇게나 철저하지는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휘말려 들게 되어 있음)

13. 점점 지쳐서 대답 성의 없이 하니까 갑자기 화냄.

    [실제 한 말] “저희는 지금 OOO 씨한테 수사 협조 요청드리는 겁니다. 약식 조사하게 되면 이따 저희가 지정한 은행에 직접 가서 예금 인출 하셔야 해요. 저희는 cctv로 보고 있다가 범인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OOO 씨 수사 중인 거 잘 들키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OOO 씨가 이런 식으로 하면 저희 수사에 피해줄 것 같으니 약식 조사 안 합니다.”  

14. 무시하는 말투에 순간 발끈해서 “아니 저도 오전부터 갑자기 이런 전화받고 당황스러워 죽겠는데 대뜸 그렇게 강압적으로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예요? 사람이 당황해서 그러는데 뭐하시는 거냐”라고 따지니까 자기는 OOO 씨 피해자 입증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거고, 이 조사는 1일 이내로 늦으면 내일 이내로 끝나게 해 드릴 테니까 잘 협조해달라고 말 바꿈.

15. 그 후 스스로 피해자 입증하는 방법을 알려줌. (이때 굳이 메모도 시킴)

    1) 검찰 소환해 48시간 구속 조사

    2) 남OO 일당 관련 모든 공판 참석

    3) 본인 포함 직계 가족 최소 3-6개월 금융 거래 정지 및 통장 압류

    4) 72명 피해자 직접 만나 합의 후 합의서 제출

    5) OOO님 대포통장으로 발생하는 추가 피해 전부 본인 부담

위의 5가지를 모두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함.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됨.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니 엄마 아빠까지 금융 거래 정지라고??? 나 주식이랑 코인 거래해야 하는 데..??!??!!') 그러면서 자기가 약식 조사로 OOO님 얼른 조사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함.

16. 내가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이따 화상통화로 OOO님도 저희를 확인하고, 저희도 OOO 님 본인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고 안심시켜줌.

17. 화상통화 연결이 옴. 먼저 바로 검사 책장을 보여줌. 자기 얼굴은 안 보여줌. 아까 사진으로 보낸 서류들을 보여주며 확인시키고 도장 찍는 모습을 보여줌. 그리고 나에게 주민번호 뒷자리를 가린 신분증과 얼굴을 보여달라고 함. (뒷자리를 가리라고 하니까 더 설득력 있음..) 그 후 자기 검사증과 민증을 보여줌. 결정적으로 자신의 민증은 뒷자리를 보여주는 것임. 여기에서 보이스피싱이라는 의구심이 확신이 됨.

18. 화상통화 종료 후, 이번에는 카톡으로 보이스톡이 옴.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그런데 저 못 믿겠는데요. 제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요.”라고 말함. 상대방이 뭐라뭐라 하는데, 이제는 그냥 다 지쳐서 “아니.. 이거 보이스피싱 같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쪽에서 오히려 씅내면서 “이러면 저희 OOO 씨 약식 조사 못합니다. 저한테 신뢰 없는 사람 피해자 입증해줄 이유 없고 검찰 출두하셔서 스스로 피해자 입증하세요.” 이럼. 알겠다고 네네 하니까 소환 날짜까지 2월 1일, 3월 00일, 5월 00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전화 끊음.


… 그렇게 2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보이스피싱 이후..  

정말이지 평소에도 의심 많은 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할 줄은 몰랐는데 막상 당해보니 속수무책이었다. 내 개인정보가 털렸다는 것은, 내 지인까지 2차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곧장 이 사실을 가족과 지인에게 알리고, 15년간 사용해온 전화번호도 바꿔버렸다. 그래도 솟구치는 분노와 두려움, 수치스러움이 가시질 않아 보이스피싱 관련 영상과 글을 죄다 찾아보았다. 지인들이 추천해준 영화 <보이스>부터 PD수첩, 기사들까지 전부 다.


+ 당할뻔했지만 멕인것 같기도 한 웃픈 사실    

1) 나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식으로 넣는 편이다.

하필 때마침 내 생활 계좌 잔고는 3천 원이었다.

그들은 '3천만 원' 맞냐고 물었다..

나는 “아뇨 3천 원인데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냐고 되려 썽을 냈다..

2) 나는 집에서 주로 일하는 프리랜서다.

내 계좌 잔고를 들은 뒤 화가 났는지 갑자기 나한테 왜 집에 있냐고 일 안 하냐고 다그쳤다.

아니 제 부모님이 신줄..

3) 나는 대출을 받아본 적이 없다.

카드론 신청하라는데 대출이 처음이었던 나는 하나하나 과정 샷을 찍어 친절히 보내드렸다.

그쪽에서 되려 귀찮아하며 다 신청하시고 마지막 확인증만 보여달라며 썽을 냈다..



<보이스피싱 진화한 점>   

1) 역할 배분이 확실하다.

나는 2인 1조(수사관, 검사) 경우였는데, 은행원, 금감원까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 이제 발음이 절대 어눌하지 않다. 

실제 근무자 말투로 착각할 정도의 자연스러운 억양과 어투. 참고로 작년에 구속된 김영미 팀장은 실제로 전직 경찰로 보이스피싱 전담반 소속이었다.

3) 상대방의 심리를 교묘하게 활용한다.

먼저, 처음 전화하는 여자 수사관은 친절한 말투로 상황 설명을 한 다. 이에 조금 안심하게 된다. 하지만, 다음 전화 연결된 남자 검사는 갑자기 고압적인 말투로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며 협박과 취조 사이를 오가는 압박을 가한다. 여기서 한 번 멘탈이 털리면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간다.

4)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법률 용어를 사용한다.

당연히 피해자 대부분은 실제로 검찰 취조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 절차도 법률도 알 수 없다. 심지어 법조인도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례가 있다.

5) 그리고, 상대방은 정말로 내 개인정보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보이스피싱 무서운 점>    

1) 보이스피싱의 가장 무서운 점은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도, 경찰서에 전화하면서도, 금감원에 전화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메시지와 번호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세상이 불신지옥 마냥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이제는 공공기관 번호도 못 믿겠다.

2) 집에서 마저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생긴다.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공간에서 피싱을 당한 직후, 집 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충격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3)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든다.

매일 제2의 손처럼 들고 다니던 폰도 집어던져버리고 싶고, 진짜 속아 넘어갈뻔한 본인부터 무척 한심해진다. 온라인 상에서 실명을 사용하는 것도 두려워진다. 이처럼 금전적인 피해도 피해지만 정신적인 피해가 가장 심각한 범죄가 보이스피싱이다. 찾아보니 피해자 상당수가 자책감과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명심할 점>   

- 보이스피싱 관련 영화나 글을 한 번씩은 꼭 읽어볼 것.

- 특히 검사는 010 같은 개인 번호로 연락하지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

-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는 링크는 절대 누르지 말 것. 누르는 즉시 악성 앱 설치 가능

- 가로채기 앱을 설치당할 경우 어떤 공공기관에 전화해도 보이스피싱 쪽으로 연결된다.

- 은행, 캐피털, 금융감독원, 경찰, 검찰도 절대로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 구속 협박을 할 경우, 차라리 영장 갖고 와서 구속해가라고 하자.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덧,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희화화도 하나의 방법이다. 보이스피싱으로 털린 멘탈을 조금이나마 추스르기  위해 유튜브에서 관련된 웃긴 영상(하지만 당해본 사람은 결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들을 몇 개 본 후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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