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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05. 2024

지속가능성과 커뮤니티

커뮤니티 자본과 로컬의 미래

유달리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웹3 뿐만 아니라 창업, 로컬 생태계 할 것 없이 결국 커뮤니티로 귀결한다. 대체 커뮤니티란 대체 무엇일까? 커뮤니티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1. 커뮤니티 자본: 우먼스베이스캠프

올해 중 가장 '즐거웠던 일'을 묻는다면 나는 지난 8월 우먼스베이스캠프 리트릿캠프에 다녀온 것이라고 답한다. 사실 나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보니 여자만 있는 공간 자체가 생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주는 느낌은 특별했다. 무엇이 그토록 특별했을까 하면, 나는 그곳이 굉장히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꼈다. 오롯이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일까. 그 자체로 안전감, 안정감이 솟아났다.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지해 주는 기분이었다. 동그랗게 서로를 보며 모여 앉은 100명의 여성 중 그 누구를 마주해도 거슬림이 없고 애쓸 필요 없었다. 나도 모르게 모르는 얼굴들에도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남들이 무어라 하든 원하는 비키니를 입고, 하고 싶은 움직임을 하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순간만큼은 나이, 분야, 위계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들이었다. 마침표처럼 동그란 공간이 주는 아늑함 덕도 컸다.  


“Follow your Fear 두려움을 마주하라"는 슬로건에 알맞게 몸의 움직임에 관한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길이 없는 야산을 헤쳐 다니거나, 벽을 오르고, 다이빙을 하다 보면 작은 생채기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성인 ‘여성’의 상처가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매일 상처를 달고 다녔지 않나..? 에 생각이 미치자 낯선 감정 자체가 낯설어졌다.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꿈같았던 여름날 밤에 한 명 한 명 다시 만나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말도 안 되게 지금껏 지나온 길 위의 인연들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났다. 팜프라에 놀러 왔던 지리산 친구와 괜찮아마을 주민 친구, 괜찮아마을에서 만났던 친구, 알고 보니 뉴욕 스토니브룩에서 같이 교환학생이었던 친구 등등 어쩌면 우리들의 접점은 고작 인더스트리 혹은 관심사로는 구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쏭미 말마따나 “다양성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라는 수식어가 우리에겐 제격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쌓아온 시간과 추억을 선물 받은듯했다. 우리는 어쩌면 '함께하는 시간'을 산 것이 아닐까. 현생에 치일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비현실적인 경험을 한껏 안고 돌아가, 일상의 고단함을 마주하고 버텨내고 극복할 힘을 낸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잘 가요" 대신 "또 만나요"로 인사를 대신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공통의 추억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를.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모험'이라는 키워드로 모여 '연대'했던 날. 


덧) 2022 리트릿캠프 포스터 디자인

하고 싶은 일에는 계산 없이 시간과 마음을 쏟게 된다. 3개월 전 3명이서 100명의 캠프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말도 안 되는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랐다. 포스터에는 정적이지만 동적이고, 강하지만 부드러운, 자연 속에서 숨겨진 야성을 깨우는 여성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한편 무겁고 진지하기보다는 누구나 가볍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직관적으로 표범이 떠올랐는데, 신기하게도 암컷 표범이 모든 동물 중에 수컷보다 더 용감한 종이라는 사실을 지영이 발견했다. 힘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점에서 WBC 상징으로 제격이었다. 포스터 공개 포스팅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생각이 들어맞은 듯해 어찌나 뿌듯하던지. 캠프에 온 수많은 사람들로부터도 어화둥둥 칭찬을 많이 받아 고래처럼 춤출뻔했다.  “디자인만 보고 온 사람들도 있어요!” “디자인 누가했냐고 다들 물어요” “어떻게 저런 그림을 상상했어요?” “저 진짜 영감 많이 받았어요!” 등 나중에 자존감 떨어지거나 지칠 때 꺼내보고 싶은 문장들을 많이 수집했다. 거대한 포스터 앞에서 당당한 포즈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볼 때면 뭉클하고 조금 낯부끄럽기도 하고 내적 기쁨에 어쩔 줄 몰라했다. 



2. 로컬과 커뮤니티: 시골언니 프로젝트 

코로나 이후,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다. 반면 세상의 흐름은 반대로 흘러갔다. 시골살이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났다. 마침 잠시 재직 중이었던 광고대행사에서 '시골언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중 나는 시골언니학교와 인터뷰를 일부 맡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시골 언니'라는 단어에 애정이 있다. 지역에서는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은 얼마나 큰지 잘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두모마을에 사무장님이 안 계셨다면 나는 2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찾아오는 성비는 여성이 월등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된 인력은 남성이 대부분인 시골이다. 특히 여성에게 시골에서의 일과 삶의 모색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더더욱 '언니'의 존재가 고프다.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든든한 언니의 존재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 많은 시골언니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성공의 공식도 정답도 흐려지는 시대다. 세상의 물살에 휩쓸리기 쉬운 지금, 나답게 살기 위해 시골을 선택한 언니, 시골에서 나다운 일을 만들어가는 언니,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일궈나가는 여성들의 단단한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양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아가 막연한 꿈에 한 발짝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참고) 시골언니 프로젝트 

 


3. 로컬의 미래, 로컬이 미래: 청년마을

업무 차, 공주에서 열린 2022 청년마을 성과공유회에 다녀오게 됐다. 행안부에서 주최하는 청년마을 지원사업 당사자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다. 해당 사항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시조새 괜찮아마을의 일원으로 가게 되었다. (매번 명찰의 소속이 바뀌는 프리워커..) 컨퍼런스 중 인상 깊었던 크립톤 전정환님의 발표를 통해 '커뮤니티 자본'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할 수 있었다. 


그 말에 따르면, 한국은 압축 성장을 하다 보니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세대가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 사회 변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개인이 모두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특정 커뮤니티에 종속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 더군다나 평균수명은 계속해서 증가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평생에 걸쳐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할 수밖에 없다. 나의 삶의 의미의 지속가능성은 커뮤니티의 자유를 획득함으로써 해결된다. 이를 통해 사회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결국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커뮤니티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조성자가 있느냐다. 


그 외 등장한 질문과 이야기들   

    청년마을은 커뮤니티인가 비즈니스인가?  

      청년마을이라는 단어가 족쇄로 느껴진다. 비즈니스로 성장하는 곳을 오히려 막아버리지 않는가. 타깃을 바꾸고 서로 주체적으로 뭉치고 협업하는 것.    

    커뮤니티와 비즈니스는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  

      청년마을은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지 이 자체로 비즈니스가 되기는 쉽지 않겠다. 사실 청년마을 없어도 잘 살고 있었다.    

    청년마을이란 무엇인가? (청년마을보다는 실험마을 혹은 팝업마을이 알맞지 않나)  



대한민국은 종단 중심의 수도권 공화국이다. 청년마을이라는 작은 점들이 생김으로써,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다수의 작은 길들이 생기고 있다. 나아가 작은 점들은 서로 간에 연결지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작은 변화들이 우리가 지형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고관을 변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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