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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05. 2024

첫 번째 책을 출간하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라이프> 출간 기념 북토크

2022년 12월, 공식적인 자리에서 붙일 수 있는 ‘저자’라는 직함이 생겼다.  팜프라의 시작부터 3년을 다룬 이야기가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되었다.  2021년 1월 1일 다시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니 책이 나오기까지 2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이전에 어떤 일을 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곤 했다. 이제는 두서없는 긴 말 대신 이 책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1. 첫 번째 출간: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원고는 몇 번이나 수정했지만 제목만큼은 처음부터 ‘이거다!’ 싶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이상했다. ‘대체 애들은 뭐 하는 애들이지’ 싶은 눈길이 익숙할 정도로 무모했고 혈기만 왕성했다. 덕분에 지나 보니 아름다웠다. 첫 삽을 뜨던 때 슬로건을 “판타지 촌 라이프”라고 정했다. (사실 당시에는 임시로 이렇게 해두고 조금만 더 생각해 보기로 했지만..) 정작 5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판타지로 시작해 촌에 들어갔다가 결국은 라이프가 되었다'는 점에서 꼭 알맞았다. 


| 어쩌면 실패한 실험기

성공담이(면 좋겠지만) 아니다. 현실적인 장벽과 갈등에 대한 내용들도 가감 없이 담았다. 후반부터 급격히 우울해진다며 괜찮냐는 피드백을 받을 정도였다. 앞으로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는 구체적인 사례와 고민을, 이미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과도기에 놓인 분들께는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가볍지만 마냥 가볍지 않은 지역살이 입문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출판사: 남해의봄날 (@namhaebomnal)

첫 책을 가장 애정하는 출판사에서 낼 수 있어 기쁘다. 매번 쉽게 지나칠뻔한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고 새로운 대안을 책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2015년에 당시 남해의봄날에서 출간되었던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를  읽으며 촌에서의 대안을 꿈꾸기 시작했다. (운명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후 같은 출판사에서 제 이름이 적힌 책이 나오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우리의 이야기가 다시 누군가에게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참 기쁠 것 같다.


| 세 명의 저자

함께 책을 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들 생업에 치이느라 책을 쓰는 일은 자꾸만 뒷전이 되었다.(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버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편집자님이 안 계셨더라면 영영 나오지 못했을 책이었다. (실제로 우리 셋은 지분의 일부는 소희님께 드려야 하는 것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연락도 잘 안 되던 우리의 멱살 잡고 여기까지 끌고 와 주신 소희님, 책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주신 혜란님, 귤케터님 모두 감사합니다. 


| 우리 모두의 이야기

책은 지황, 린지, 나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썼지만 여기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팜프라와 팜프라촌을 만들어온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도움을 주신 분들, 울고 웃고 때론 치열하게 싸우며 지난한 과정을 쌓아왔던 멤버들과 촌민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시절의 일부를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촌을 재해석하고 도시와 연결하고자 했던 우리의 여러 시도들과 불완전한 경험은 하나의 서사가 되어 전국 서점의 책장에 꽂히게 됐다. 드디어 끝맺음을 한 기분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웠던 여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이지 지난 10년에 걸친 큰 챕터가 드디어 갈무리된 기분이다. 시원하다. 


참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2. 인정과 인증: 출간기념 북토크 

왼) 남해 @팜프라촌  / 오) 서울 @보틀라운지

사실 출간 전까지만 해도, 가장 두려운 것은 독자의 반응이었다. 내 블로그의 글은 발행한 후에도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 원한다면 언제든 삭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되돌릴 수 없다. 언젠가 삭제하고 싶어 진다고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책을 출간하는 일은 이야기를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하지만 정작 책이 나온 이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독자의 반응을 접할 기회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책은 유튜브처럼 실시간 댓글이 달리는 것도 아니고, 모든 독자들이 후기를 보내오는 것도 아니다. 북토크를 하지 않는 이상 일상 속에서 독자를 직접적으로 마주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책 속의 이야기가 남해에서 시작되는 만큼 북토크 역시 남해에서 첫 스타트를 끊기로 해다. 


| 출간기념 북토크 @남해

첫 북토크는 2023년 1월 12일, 날도 흐리고 애매한 목요일 오후 7시에 새로운 팜프라촌에서 진행됐다. 우려와는 달리 약 4-50분이 오셔서 팜프라촌 공간을 가득가득 채워주셨다. 남해뿐만 아니라 통영, 창원, 곡성, 그리고 무려 서울에서도 와주셨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속 이야기도 어느덧 2~4년 전의 일인 만큼 그때 가졌던 문제의식이 지금과 같지는 않다. 그 후 우리는 저마다의 선택을 내렸고 생각도 변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다음 스텝을 고민하거나,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거나, 떠나려고 했으나 다시 남기로 결정하거나, 다시 서울로 올라갈 고민을 하거나 등 새로운 단계에 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변화들이 반가웠다. 역시 우리는 끊임없이 연결되고 섞여야 한다.


| 출간기념 북토크 @서울

서울 북토크는 2023년 2월 10일, 연희동 보틀라운지에서 진행됐다. 역시나 즐거운 수다 잔치를 마친 후,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편집자이신 소희님도 책을 낸 소감을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이상한 궤적을 ‘공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인정이 아닌 ‘인증’을 받은 기분"이라고 답했다. 인정은 필요 없었지만 인증은 몹시 필요했다. 복잡다단했던 여정만큼, 우리의 책은 편집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도망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개성 넘치는 수십 명의 이야기를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정말 진심으로 알리고 싶었다”는 소희님의 말이 진하게 와닿은 이유였다. 소희님과 남해의봄날 덕분에 나는 그동안 설명(혹은 해명 또는 변명) 하기 위해 그토록 애써야 했던 지난날을 ‘한 권의 책’으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듯한 단어와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했던 이력은 ‘출간 작가’라는 단 네 글자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고마움’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고마웠던 날.  



3. 생각과 행동: 다시 생각할 차례

2017년 팜프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 앞날에 대한 기대감보다 행여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다. 그때마다 지나온 대화 속 문장들을 떠올렸다. “그건 너가 가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밖에서만 소비해서야.” , “올바른 삶에는 적절한 지식과, 적중하는 지혜와, 발을 앞으로 떼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게 전부야.”, "지식(知識)은 식이야. 지식을 지혜(智慧)로 바꾸는 능력이 필요하지. 그건 너가 일상 속에서 기르는 거야. 지식과 지혜는 다른 거란다."


행동 없는 언행은 힘이 없고, 실천 없는 문장은 공허하다. 도를 닦아도 삼시세끼 밥은 먹어야 하며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돈벌이를 해야 한다. 그래서 관념을 삶으로 살아내는 이들을 존경했고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공허한 관념에만 머물지 않고, 지식을 지혜로 바꾸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지속하는 끈기를 갖고 싶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탁상공론, 행동 없는 지식, 일상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상이었다. 제 아무리 머리로는 알더라도 실제 나의 일상에 스며들지 않으면 진정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구체적인 내러티브와 행동을 통한 직접 경험이 필요했다. 그 실천으로서 팜프라촌을 선택했었다.  (이제와 보니 2018년, 비겁 운이 최고조였던 무토일간 무관사주생 팔자..)


그 후 3년 동안 분명 관찰자로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현장에서 당사자로서 체화할 수 있는 경험은 달랐다. 관념은 실재를 만나는 데에 도움은 주었지만, 때때로 일상의 현실에서는 적용되기 어렵거나 충돌되는 부분도 있었다. 덕분에 맥락과 상대에 따라 변할 줄 아는 유연함과 속된 일상어로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다만 맹목적으로 실천에만 몰두했던 탓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생각이 흐려졌다. 그러자 실천의 이유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하고 있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지..?’ 막연하게 서로를 위하는 길(거기에 자기 자신은 없어졌음을 몰랐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3년째 되던 해 돌아보니 그 누구도 원한 길이 아니었다. 실천 자체도 중요하지만 실천의 목적을 세우기 위해서는 목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신념과 사상이 더욱 단단해야 함을 알았다. 


나뭇가지가 아닌 뿌리를 보자. 뿌리를 길러내는 토양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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