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진화, 조직의 진화, 일의 미래
일상을 지키기 어려운 이 일의 형태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일의 방식을 고민했다. 재택근무를 넘어 원격근무로 향하는 발판인 워케이션에 특히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지자체, 기업, 창업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로만 만난 이들이 30명은 되는 것 같다. 그중 특히 바다공룡 보연님과 인터뷰는 지금 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구나라는 확신을 주었던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출간에 이르지 못했던 <갑자기 워케이션>의 프롤로그다.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나답게 일하는 사람들
2020년,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원격근무 등 낯설던 단어가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다시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습니다. ’과연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유연하게 일할 수는 없을까?’
워크와 베케이션의 결합, 혼종의 단어 ‘워케이션’
작년부터 워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종종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일도, 완전한 휴식도 아닌 이토록 낯선 일의 형태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은 워케이션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워케이션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일의 미래일까요? 아니면 잠시 반짝하고 사라질 한철 유행일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지난여름부터 가을까지 여러 주체들을 찾아갔습니다. 워케이션을 도입한 기업, 워케이션을 만드는 창업가, 워케이션을 유치한 지자체, 워케이션에 다녀온 직장인을 만나 이야기를 청했습니다.
워케이션은 누군가에게는 직원들의 복지이며,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였고, 누군가에게는 지역 활성화의 수단이고, 누군가에게는 나다워질 수 일의 방식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워케이션은 단순히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환점에 놓인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워케이션은 여전히 태동기에 있습니다. 이제 막 피어나 혼란스럽기도 한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시기입니다. 완벽한 정답 같은 미래를 제시하기보다는 현재 시도되고 있는 여러 실험들과 워케이션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을 담아 건넵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어떤 변화를 살펴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에게 하나의 참조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갑자기 브런치
하반기에는 다오를 빌딩하고자 하는 팀에서 3개월 정도 브랜딩 업무를 도왔다. 그 과정에서 문득 팜프라의 조직 구조가 웹3 시대에서 말하는 미래 일의 조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팜프라는 끊임없이 팔로워가 참여자가 되고, 참여자가 운영자가 되는 구조였다. 팜프라는 핵심 멤버들의 철학과 욕망을 바탕으로 시작했다. 이후에도 매 시기의 구성원의 욕구에 따라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험해 왔다. 이러한 구조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빈 곳’ 즉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참여자가 스스로 팜프라에 와서 자신의 역량을 가지고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짜이고, 일방적으로 공지하는 방식으로는 쉽지 않다. 제아무리 완벽한 기술과 규율을 갖춰놓고 “여기 오세요” 해봤자 구성원의 의지와 애정이 없으면 무용하다. 결국 핵심은 Human OS 다.
| 다오와 오리엔티어링이 닮은 점 세 가지
다오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은 길을 만들어가는 오리엔티어링과도 닮았다. 첫째, 목적지와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포인트들은 정해져 있지만 그곳에 가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누군가는 가파른 벼랑을 오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직선으로 달릴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최대한 안전한 길을 모색하며 지그재그로 갈 수도 있다. 둘째, 빨리 간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더 많은 포인트를 잘 거치면서 왔느냐에 따라 순위는 달라질 수 있다. 셋째, 순위를 위한 게임이 아니다.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도 내비게이션을 켜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나침판과 지도만을 가지고 길을 개척해 가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일 지언정 나의 즐거움과 열정을 바탕으로 나아가는 개척심과 꾸준함. 불확실함이 만연해지는 앞으로는 더더욱 필요해질 테다.
지역살이 - 워케이션 - 탈중앙화조직(DAO)의 상관관계. 표면적으로는 이질적인 이 세 단어들은 ‘일’이라는 한 단어로 꿰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일의 미래는 이런 모습이다.
2-3개 다오에 동시에 들어가 기여를 하면서 프로토콜에 따라 리워드를 받고 생계를 영위한다.
다른 다오로 넘어가는 것도 자유로워지면서 회사, 소속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진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방식과 유사할 것 같다.
관계가 형성된 몇몇 커뮤니티를 통해 일이 들어온다.
관계가 있으나 소속되어 있지는 않다.
1년의 실험 결과, 돈은 내게 일정 정도 이상의 동력을 주지는 못했다. 해당 조직과 커뮤니티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비전에 더 매료되어 함께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생계와 가치 사이의 줄을 잘 탔어야 했다. 즉, 돈이 되지만 크게 끌리지는 않는 일과, 돈이 안 되지만 크게 끌리는 일의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