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818 처음 마주한 아직은 낯선 그 모습
흔히 '미국'하면 세계 최강대국, 세계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 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내게 미국은 매우 막연한 존재다. 그 흔한 미드를 즐겨보지도 않았고 그다지 환상도 기대도 없어서인지 더더욱 추상적인 곳이다. 그저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이민자들의 나라. 그뿐.
어쨌든 난 지금 그 중심 중의 중심이라는 뉴욕에 홀로 뚝 떨어져있다. 대체 어쩌다 이곳이 세계를 움직이게 된 건지. 여긴 대체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문화도 가치관도 다를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사람들이 어떻게 한 국가의 이름 아래 살아갈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 그리고 오늘 그 일면을 아주 찔끔 들여다 보았다.
#자유의여신상(미국)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서 보려면 페리를 타고 여신상이 있는 섬에 가야한다. 하지만 사우스페리역에서 Manhattan과 Staten Island을 오가는 대중 교통 수단 페리를 타면 멀리서나마 이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사실! 배 타러 가기도 귀찮고 배삯도 아까워 여객선 터미널의 무료 와이파이나 쓸 심산으로 왔다가 심봤다. 예이~ 역시 아는게 힘이다.
하지만 정작 페리에 올라 눈에 꽂힌 건 저 멀리의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바다 위의 맨하튼. 근래 완공된 국제 무역 센터와 더불어 뾰족뾰족한 고층 건물들로 빽빽하게 차 있는 섬 맨하튼의 모습이 마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빌딩숲을 보는듯하다. SF영화 속 수상도시를 보는 기분이랄까. 뭔가.. 자연의 위대함과는 반대로 아무것도 없던 척박한 땅에 굴하지 않고 높이 더 높이 쌓아오고 지금도 쌓아가고 있는 인간의 생명력과 그 집념에 새삼 놀라게 된다.
#벤또스시(일본?인도?)
얼떨결에 배까지 타고오니 배가 고파져서 들어온 벤또스시. 미국의 유명 일식 체인점이라더니 이리저리 많이 보이긴 하다. 스시가 담긴 일회용 벤또를 골라 카운터에 가져가서 계산을 하는 방식이다. 문득 저 한번 쓰고 버려질 일회용 용기들이 굉장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음? 가게 점원이 중동계 외국인이다. 분명 여기는 일본 스시집인데... 게다가 가게 안을 가득 채우며 딩기당가 딩기당가 울려퍼지는 이 멜로디는..? 촌스럽고도 흥겹고 왠지 모르게 마음의 고향같은 익숙함을 선사하는 것이 어허허헣헣 인도 음악이다. 여기가 일본인지 인도인지.. 역시 다문화 국가 미국 스고이.
#차이나타운(중국)
맨하튼이 삐까번쩍 시끌벅쩍이라면 이곳 차이나타운은 말그대로 와글와글 자글자글. 이곳 저곳에 화려한 'Welcome to China Town' 네온사인과 중국 특유의 붉은 글씨 간판이 가득하다. 빵빵 경적소리와 함께 한층 더 후리해진 눈앞의 풍경에 이상하게 왜 기분이 좋아지지? 이상하게도 후리한 것에 묘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게다가 차이나타운은 물가도 굉장히 싸다. 길거리 가판의 과일들을 보니 숙소 앞 슈퍼마켓보다 50%는 싼 것 같다.
급 발걸음이 가벼워져 이리저리 걷다가 만난 어느 공원. 벤치에 연세 지긋한 분들이 중국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춰 버스킹을 하고 계신다. 뉴욕 한복판에서 퍼지는 이 동양적 선율이란. 중국 특유의 잉잉 엥엥 소리로 채워진 노래가 싫지 않다. 노련하진 않으셔서 중간중간 가사도 틀리고 음이탈도 있는데 그저 당신들은 하하호호 웃음이 넘치신다. 참 어딜가나 시끄럽고 흥 많은 민족. 괜스레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져 그 앞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들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유난한 단결력과 집속력이 어디에서나 그들만의 타운 형성을 활성화 시키는 것 같다.(맨하튼의 32st과 퀸즈의 플러싱 지역에는 한인타운이 있다니 언젠간 가봐야겠다)
#리틀이탈리(이탈리아)
차이나타운 바로 옆에는 'Little Italy'라 쓰여진 하얀 네온사인이 걸린 골목이 자리한다. 이렇게 동양과 서양이 딱 달라붙어있는데 그다지 위화감은 없다.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서면 테라스 딸린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가득히 등장한다. 허..예전에 로마에 갔을 때 보던 풍경과 거의 흡사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기분..
#브룩클린브릿지 #맨하튼브릿지
그렇게 차이나타운과 리틀이탈리 근처를 거닐다 이스트 강변으로 걸어나오자 눈 앞에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 브룩클린과 맨하튼을 잇는 두 다리인 '브룩클린 브릿지'와 '맨하튼 브릿지'가 한 눈에 보인다. 바다에 닿을 듯한 고도에서 한치의 틈도 허락하지 못한다는듯 빽빽하게 빌딩들이 들어찬 두 섬과 그 둘을 잇고있는 거대한 두 철교란.
아....가히 장관이다. 눈 앞에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달까. 물안개 때문인지 조금 흐릿해진 선들이 파스텔 파스텔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오히려 더 그림같이 보인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 당장에라도 사진을 몇 십장은 찍고 싶어 죽겠지만 하필이면 배터리가 다 나간 상태. 으아아아아 누군가에게 찍어달라 할 수도 없고 내 눈에라도 열심히 박아두려 마냥 바라만 보다가 문득 가방안의 수첩과 펜이 생각났다. 내가 보는 지금 이 순간을 나만 보고 있을 순 없어서.
참 구역 구역마다 개성이 뚜렷한 맨하튼. 서로 다른 성격과 문화를 가진 민족이 이 하나의 섬에 모여 있지만, 서로간에 간섭하지 않고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그렇게 섞인듯 섞이지 않은 '샐러드' 같은 뉴욕.
#그리고어쩌면 #인간의생존능력은 #바퀴벌레보다독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