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연말정리] 디자인과 미디어
5.1. 디자인: 부분이 아닌 전부를 보는 일
5.2. 미디어: 개인이 아닌 단체를 말하는 일
팜프라에 와서 내가 맡고자 했던 일은 ‘미디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미디어 ‘접점분야'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미디어의 본질이 '전달'에 있다고 하면, 농장 역시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특성상 한 사람이 여러 분야의 일을 걸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나는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디자인과 미디어를 동시에 맡게 되었다.(정작 나는 영문과다..) 그 안에는 브랜딩과 마케팅까지 혼재되어 있었다.
포지션의 불분명함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디자이너라고 하기에는 그 외의 일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렇다고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도 없었다. 주희는 내 억지 같은 요구에 따라 나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줄여서 ‘양 CD'라고 부르지만 그때마다 밀려오는 민망함은 피할 길이 없었다. 올해의 나는 에디터 혹은 크리에이터보다는 오히려 ‘디자이너’라는 직함이 나의 활동을 대변하는데 더 알맞았기 때문이다. 2018년은 '미디어'를 맡고 있다고 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던, 오히려 부끄러움이 많은 해였다.
스타트업에서는 디자이너의 역할 만으로도 할 일이 많았다. 사실상 디자인은 경계 없는 일이었다. 작은 조직일수록 일관성을 가지고 브랜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에, 작은 디자인일지라도 부분이 아닌 ‘전부'를 알아야만 했다.
: 가장 먼저 팜프라 로고를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CI, BI라는 용어를 처음 알았다. 핀터레스트와 구글을 뒤지면서 각종 로고 디자인 제작 과정 및 전략들을 참고했고 어설프게나마 익히기 시작했다. 1)팜프라가 가진 현재의 문제를 찾고, 2) 로고 디자인을 통한 목표를 설정했다. 3) 대표 색상을 정하고 4) 팜프라의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심벌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로고는 이러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고도 변화를 꾀했다. 굿즈의 활용성 면에서는 두 번째 로고가 더 유용했고, 점차 첫 번째 로고는 서류에서 조차 눈에 띠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명확한 논의 없이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초반에 제작했던 명함과 중후반에 제작했던 굿즈의 로고가 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다.
: 완성된 로고와 심벌을 바탕으로 명함을 제작했다. 독특한 배치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었지만 고민 끝에 가장 무난한 배치를 선택했다. 대신 한쪽 전면에는 팜프라 이미지 심벌을 넣어 시선을 사로잡도록 했다. (그래서 지황은 명함을 드릴 때 일부러 이쪽 면이 보이게 한다.)
: 코부기 워크숍을 비롯해 포럼, 팜프라부스 등 행사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포스터에는 일관성이 필요했다. 초반에는 종이질감을 통일성 있게 가져가고자 했지만, 시각적으로 확연한 효과는 부족했다. 때문에 질감보다는 색상을 대표 색상 세 가지로 제한하여 맥락을 부여했다.
: 프로필은 게시글을 올릴 때마다 접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팜프라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것으로 설정해야 했다. 아무리 기업의 형태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청년들이 모인 만큼 지나치게 딱딱한 느낌보다는 캐주얼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이에 캐릭터를 따로 구축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마땅히 대표성 있는 캐릭터를 찾지 못했다. 결국 대표 색상 세 가지로 칠한 사다리로 결정되었다. 이 사다리 역시 조금 더 캐주얼하고 둥근 느낌으로 바뀌었다.
스킨은 기본적으로 팜프라 대표 색상과 이미지 심벌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이후 팜프라촌이라는 마을 단위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코부기의 수를 늘리고, 로고 또한 변경했다. 또한 팜프라 팀원 네 명을 캐릭터 화한 이미지를 추가했다. 소규모의 스타트업에서는 대표성 있는 무성의 캐릭터보다 개개인의 아이덴티티가 뚜렷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나 팜프라는 애초부터 개인이 가진 서사가 끌어가는 힘이 강한 단체였다.
: 팜프라의 굿즈인 만큼 실제 농사나 건축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생각했다. 먼저 가장 진입장벽이 낮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내기 위해 장소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스티커를 제작했다. 다음으로 흔한 에코백을 하기보다는 자연 느낌과 어울리는 동시에 수확물을 담기도 편한 네트백을, 현장에서 일할 때 목이나 바지에 걸기 편한 스포츠 타월을 제작했다.
: 미술 전공자가 아닌 내게 그림을 그리는 순간순간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림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였다. 단순화하면서도 어떤 내용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당시 부스를 준비하면서 작업 시간과 예산 부족 문제로 팜플렛이 포스터를 겸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팜플렛에 주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팜프라와 팜프라촌이었다. 앞 면에는 팜프라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을 마인드맵 형식으로 펼쳐 놓아 전단지를 펼쳐도 보기 좋게 구성했다. 뒷 면에는 주요 목적이 팜프라촌 준비를 위한 인터뷰 및 데이터 수집이므로 팜프라촌 지도를 넣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빠뜨린 것이 있었다. 팜플렛에 페이스북, 인스타, 홈페이지를 명시하지 못했다.(...)
: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웹사이트에 비해 접근성은 훨씬 높았지만 아카이빙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팜프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웹사이트의 여부를 물어봤다. 이번에는 UI, UX라는 낯선 단어가 튀어나왔다. 모바일과 PC 각각에 알맞은 디자인이 필요했다. 마을지도 이미지, 마인드맵 형식 등 여러 방식을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에 팜프라를 시각화 하기에는 우리는 아무런 실체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지금 수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실제로 직접 진행한 프로젝트, 노출된 기사, 다큐 등을 계속 아카이브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미디어 ‘접점분야’라는 말이 또 어려웠던 이유는, 이 역시 모호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미디어이고 아닌지 분간되지 않았다.(미디어란 대체 무엇인가..) 역시나 이 또한 어설픈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들은 생략하고(영문과 생의 비애..) 딱 두 가지, ‘전달 도구’와 ‘콘텐츠’만 생각했다.
전달 도구는 쉽게 보면 글/사진/그림/영상 네 가지였다. 이 중 영상이 가장 강력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었다. 영상의 필요성은 알았지만 문제는 영상보다 글을 좋아했고, 영상 보다 글이 쉬웠다. 글의 짜임새는 상상 가능했지만 영상은 당최 짐작 조차 되지 않았다. 같은 전달 도구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플랫폼 성격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했다. 단순히 '인스타그램은 이미지, 페이스북은 글!’ 정도의 구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각각의 구독 대상부터 레이아웃까지 고려해야만 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보다 문제는 콘텐츠였다. ‘이야기의 목표’는 명확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과, 이를 넘어 단체와 기업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전혀 달랐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질 수 있어야 했다. 동시에 하나의 대표성에 개인들이 묻혀서도 안 되었다. 머리가 아팠다.
디자인, 미디어, 마케팅, 브랜딩.. 정확한 경계 없는 단어들을 끌어안았다. 색이 비슷한 슬라임 세 덩이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 덩이를 정확히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고, 색깔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았다.(사실 지금 이 순간도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모든 단어들이 접목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관된 디자인과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마케팅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서사'를 담은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 끝에 ‘팜프라’라는 브랜드가 있을 것이었다.
"많이 고민해봤는데 저는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가장 커요. 그게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콘텐츠가 될 수도 있고, 마을이 될 수도 있고,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나친 이상보다는 현실과 균형 잡힌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2018.08.10)
앞으로 내가 꾸준히 가져가야 할 전문성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