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연말정리] 관계에 따른 호칭, 규칙, 조직
4.1. 호칭: 업무를 위한 동등한 관계 설정
4.2. 규칙: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규칙 설정
4.3. 조직: 업이 되기 위한 관계의 조직화
지난 2월, 낯선 첫 만남에서 조차 함께 고개를 끄덕였던 문장이 있었다.
“행여 이 관계가 깨질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지금 하는 모든 일을 그만 둘 거다”
관계는 우리의 만남에 있어 가장 주요한 단어이자 지켜내야만 하는 핵심 가치였다.
관계를 섬세하게 맺는 일도 중요했지만, 관계를 알맞게 발전시키는 것 역시 중요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오랠수록 관계에 관해 고민하게 되는 주제들도 점차 변해왔다.
5월의 봄날에는 (1) ‘동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호칭’을 고민했고,
8월의 여름에는 (2)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규칙’을 고민했으며,
10월 가을에는 (3) 스타트’ 업'이 되기 위해 ‘조직’을 고민했다.
"앞으로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 마.”
5월 어느 날 밤, 문득 재희 언니가 말했다.
조금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니 덧붙인다.
“우리는 언니 동생의 관계가 아니잖아.”
맞다. 우리 관계의 시작은 조금 달랐다.
우리는 일상 속 친밀함이 아닌 동의된 가치로 시작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었고, 그렇기에 동등했다.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언니 동생, 혹은 친구보다는 '동료’가 맞았다.
그러나, 기존의 나이에 따른 관계 설정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로서는 스스로 '언니'라는 표현을 놓지 못했다. ‘언니’라고 부르는 순간 동등하다고 여기는 관계의 저울은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언어는, 호칭은 사고와 관계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쳤다.
지황은 나에게는 반말을 사용하고, 재희에게는 반존대를 사용한다.
재희는 지황에게도 반존대를 사용하고, 나에게도 반존대를 사용한다.
나는 지황에게도 반존대를 사용하고, 재희에게도 반존대를 사용한다.
지황은 재희를 (재희 씨, 세모)라고 부르고, 나를 (애진, 꼬산)이라고 부른다.
재희는 지황을 (지황쓰, 지황)이라고 부르고, 나를 (애진쓰, 애진)이라고 부른다.
나는 지황을 (유사장, 지황쓰)라고 부르고, 재희를 (언니)라고 부른다.
그렇다. 호칭에 있어서 피라미드의 가장 하부에 있는 사람이 나였다.
아무리 호칭이 수평적 구조를 완전히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적어도 수평적 구조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것은 맞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여러 가지였다.
1) 호칭을 부르고 존댓말도 쓰거나
2) 호칭을 부르고 반말을 쓰거나
3) 호칭은 안 부르고 존댓말을 쓰거나
4) 호칭은 안 부르고 반말을 쓰거나
5) 별칭을 부르고 존댓말을 쓰거나
6) 별칭을 부르고 반말을 쓰거나
그 결과 우리는
일상에서는 각자가 편할 대로 사용하되 최소한
업무 중에는 서로의 이름과 존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
.
그날부터 나는 재희 언니를 ‘세모'라고 부른다.
관계가 일상에 그치면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단 동등한 관계로는 충분치 않았다. 관계를 지키면서 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했다. 이러한 논의들을 할 때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되,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최대한 이성적이 되어야 했다. 앞선 고민이 업무를 위한 '관계의 동등성'을 말했다면, 이번에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을 말할 차례였다.
인원이 많지 않으니 커뮤니케이션은 잘 될 거라 믿음은 착각이었다. 서로 너무 잘 알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있겠지’ 지레짐작하던 부분이 많이 생겨버렸다. 표정만으로도 눈치채버리는, 혹은 눈치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신뢰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섣불리 묻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이 왔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기준이 없는 것은 단지 일정을 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미세하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결국 관계에 영향을 주는 문제였다. 삶과 일의 경계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공식적인 업무 및 회의 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
규칙의 필요성은 깨달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처한 상황에 알맞은 방법은 찾지 못했다. 업무시간과 회의 시간을 정해도 보았지만 곧이어 모두가 아닌 개인의 약속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누구의 약속도 되지 못하기도 했다. 급변하는 상황들 속에서 규칙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업이 되기 위한 '관계의 조직화'를 말할 차례였다. 전통적인 회사라면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어 자리를 잡아온 조직 체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체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규모가 섣불리 커져서도 안 된다. 조직이 작을수록 사람을 들이는 일은 더더욱 조심스러워야 했다. 작은 규모일수록 사람 한 명을 들이는 일은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이었다. 3인 체제에서 4인 체제가 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조정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이 생겼는데, 몰아치는 일들이 너무 많아 차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상황에 따른 조급함으로 인해 이 과정이 급하게 진행될 경우, 관계의 균형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관계와 내부에서 우리가 설정한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새로운 멤버가 들어옴으로써 창립 멤버라는 구분이 흐려지고, 대표 - 직원의 프레임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렸다. 나는 ‘좋아서' 일을 하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 직원으로서 대표에게 ‘보여주기 식’ 일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역할에 대한 확신이 잘 잡혀있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다.(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관계가 대표와 직원인지, 공동 대표인지, 창립 멤버인지 등의 구분을 하고, 이에 따라 책임은 어떻게 분담해야 하는지, 결정권은 어디까지 있는지 등등의 결정이 필요해질 때였다.
.
.
일들이 부진해지고 무너지고 하는 과정 속에서 이 관계가 어느 정도로까지 유지될까 하는 불안감도 스멀스멀 생겨났다. 특히나 우리는 동의된 가치로 모였기 때문에 한 번 끊어지면 결코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가치를 ‘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누구 하나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의 이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