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연말정리] 관계, 환경, 공간 그리고 일과 삶
3.1. 우연 혹은 필연적 만남: 가치로 맺어진 관계
3.2. 일시적인 환경: 뿌리내리지 못한 생활
3.3. 공간의 특수성: 개인 공간의 부재
3.4. 일과 삶의 영역: 모호한 경계
우리는 개인 ‘있는' 우리를 지향한다.
하지만 지난 일 년 간의 팜프라는 개인 ‘없는’ 우리였다.
“도대체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 우리를 보면 항상 던지는 질문이지만 매번 매끄러운 설명이 어렵다. 납득하기에는 꽤나 갑작스럽고 우연하게 이루어진 관계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치관과 지향점이 비슷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속전속결로 맺어진 관계들이었다.
(1) 지황은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었다. 2015년, 침대에 누워서 세계여행을 상상하고 있던 때였다. 우연히 발견한 ‘비상식량 프로젝트(현재는 파밍보이즈)’ 페이지에는 내가 상상만 하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반년 뒤, 삼시세끼 프로젝트 시즌2로 상상을 실제로 옮기기 시작한 때, 농장 추천을 부탁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 반년 뒤, 코부기를 짓고 있다던 진주에 찾아가 인사를 했고, 또다시 반년 뒤, 농행원정대 프로그램 강사로 섭외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반년 뒤,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2년간 4번의 연락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2) 세모는 우연히 카페에서 만났다.(네이버 카페가 아니라 망원동 카페다) 일본 농촌 답사를 위해 자연농 감독님을 인터뷰하던 때였다. 팜프라에 대해 말하니 귀농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다며 뒷자리에 있던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갑작스러웠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느낌이 좋았다. 우리가 찾던 땅을 밟고 서 있는 사람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잔잔하지만 깊은 시간을 고민하고 바라 오고 찾아왔던 사람. 땅에 발을 딯고 흙을 만지며 생각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작 일주일 뒤, 세모는 진주에 내려왔다.
(3) 주희는 농업정책 관련 행사에서 알게 되었다. 팜프라가 막 공식적인 발돋움을 내딛던 때, 적극적으로 코부기에 찾아온 사람이었다. 자연 그대로에 맡기는 목장을 꿈꾼다며 직접 손으로 만든 ‘일곱 마리 목장’ 건넨 명함과 책 한 권은 독특하면서도 신선했다. 밤새도록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연과도 같은 서로의 교집합들을 발견했다. 몇 번의 방문 끝에, 주희는 진주에 내려왔다.
초기 단계인만큼 팜프라는 무엇보다 '실행력' 단호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모인 네 명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덕택인지 기나긴 시간이 걸렸을 법한 일들이 생각할 시간도 없이 훅훅 이루어져 버렸다. 일상의 친밀함이 쌓이면서 점차 돈독해지는 기존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성기지만 단단한 가치부터 논의가 되었기에 그 사이사이의 촘촘한 일상이 덧대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마치 10년의 인연 마냥 지내고 있다.
진주에 내려온 후로, 낯선 생활의 연속이었다. 자의로 내던지긴 했으나 의심과 경계와 고단함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정촌의 분위기가 낯설었던 것도 한몫했다. 길가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산업단지인 정촌은 몇 달이 지나도 정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했다. 하지만 낯선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에든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처음의 낯섦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며 일시적이다.
다만 문제는 생활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숲 속에 코부기를 새로 짓는 6개월 동안 임시 주거 생활은 계속되었다. 생활의 불완전성은 낯섦의 일시성을 한껏 지속시켜버렸다. 옷 몇 벌만 가져가 돌려 입고, 제대로 된 서랍장도 없다 보니 일상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매일이 여행 중인 듯한 기분. 불안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단단하고 안정된 사람과 공간에 대한 향수가 커져갔다.
임시 주거 생활 동안 6평의 코부기 1호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두 명이 세 명이 되고, 세 명이 네 명이 되면서, 각자의 공간은 2평에서 1.5평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게임 소리, 부스럭 거리는 소리 등으로 인해 생기는 사사로운 짜증들은 개인의 성격이나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공간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혼자만의 공간을 가질 수가 없어 이어폰을 꽂고 살았다. 후줄근한 옷차림, 푸석한 얼굴, 여과 없이 드러나는 합숙 생활을 하다 보니 도시의 익명성이 몹시 그리웠다.
환경과 공간의 특수성이 일과 삶의 영역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가피했다. 일과 삶, 그 사이의 경계를 찾기가 어려웠다. 주거 공간과 사무 공간의 명확한 분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코부기 1호가 사무실 겸 주거로 사용되었지만, 단체로 작업이 가능한 환경은 아니었다. 결국 카페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합숙 생활은 일상의 대화도 회의가 되어 버리게 만들었다. 때문에 아무리 업무시간이 끝났다고 한들 엄밀히 말하면 잠들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눈을 뜨면 출근이고, 눈을 감으면 퇴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