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연말정리] 프로젝트의 장기화
2.1. 현장이 가진 변수: 산, 날씨, 그리고 물
2.2. 방향 재설정: 프로젝트의 장기화
10개월 전, 메모장에는 ‘2018 팜프라 프로젝트’라고 적혀 있’었'다.
3개월의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내게 팜프라는 업이 아닌 '프로젝트'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삼시세끼 프로젝트 시즌3'이었다. 시즌1_국내여행과 시즌2_세계여행을 통해 방방곡곡의 농촌을 많이 경험했으나 그 단발성에 대한 회의와 자기모순이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한 곳에 정착해 농작물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 봐야지.'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고단함은 프로젝트가 장기화되고, 결국은 ‘업’이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상상만 하던 것을 현실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팜프라를 하겠다고 한 것은 기획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기획과 현장 사이의 괴리는 애초의 계획을 온통 뒤 흔들어 버렸다.
: “코부기 4호를 짓기로 했어.” 그 순간 흘렀던 5초간의 침묵이 생생하다. 산길이 너무 비좁고 가파르기 때문에 크레인이 들어올 수가 없단다. 코부기 1호와 3호를 숲으로 옮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어떤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 얼른 수긍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었다. 결국 차안은 숲에 직접 새로운 코부기를 짓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집 짓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갑자기 집을 짓게 되면서 애초에 6개월에서 1년을 생각했던 내 계획은 온통 뒤바뀌어 버렸다.
: 숲에 목조주택을 짓는 일은 곧 매일 기상예보를 살피는 일이었다. 방수작업이 안 된 상태에서는 약간의 소나기만 맞아도 합판이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4월에 시작했던 집 짓기는 어느새 6월로 이어졌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이제 날씨에 슬슬 쫄린다. 계속 이런 날이 지속되면 정말 집에 가고 싶어 질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숲에서 살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그래도 무언가 되리라는 확신 밑에서 회의하고 회의했다. 그럼에도 버티는 게 곧 이기는 길이라며 다시 다독이고 다독였다.
: 정확히 말하면 ‘농촌’ 현장도 아니었다. 농촌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의 문제였다. 갑작스레 지하수가 부족해진 탓이었다. 물이 없이는 숲에 들어간다고 한들 살 수가 없었다. 저수지, 논에 물대기, 숲의 지하수.. 그동안 너무 당연했기에 오히려 나와는 무관 하다고 여겼던 자원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었다. '촌에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일 년이었다.
계획이 여러 변수들의 등장으로 인해 자꾸만 미뤄지면서 애초에 계획했던 시기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는 아직 확신이 없었다. 매일 밤 셋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혼자 침잠해버리는 이유였다. 최소 4년을 잡고 정책화하겠다던 지황, 무조건 버티겠다는 일념으로 온 세모. 이 둘의 이야기 사이에서 나는 아직 시기를 놓치지는 않았다는 '미련', 언제든 남들과 같은 취준 전선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다는 '안일함', 행여나 또 단발성 경험으로 끝나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스스로 확신이 부족하다 보니 사소한 반론에도 무지막지하게 흔들리곤 했다.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때마다 강력한 지지대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은 최대의 행운이었다.
3월, 불안을 말했다가 오히려 동생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내가 보기엔, 애자도 오래 봐야 할 것 같은데. 멀리 봐야 하는 거 아니야?”
10월, 막막함을 차마 토로하지는 못하던 때에 아빠가 말했다.
“세상살이 만만하지 않아. 절대 한눈에 결과가 보이진 않을 거야. 열심히. ‘잘'하고."
12월, 2018년의 마지막 날에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우리 장한 딸, 내년에도 씩씩하게 잘 살아보자!"
10개월 후, 메모장에는 이제 ‘2018 팜프라 FARMFRA’라고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