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인도 바라나시에서의 만남 1부
'교육이란 무엇일까?'
'교육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가?'
'우리는 살아감에 있어 왜 교육을 필요로 하는가?'
나는 교육을 단순히 특정 교과목을 배우는 것에 한정 지어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결핍이 결핍된 자의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인도 바라나시에서의 만남은 그 부끄러운 사실을 깨닫게 했다.
바라나시에 오기 전 화장터의 시체를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에 시체를 두고서도 여전히 죽음은 나와 먼 이야기였고 어떠한 깨달음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충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1.
갠지스강 자락의 작은 화장터를 멍하니 바라보던 중, 다섯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힌디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난감한 표정만 짓고 있다가 물었다. "얍까남까해?(이름이 뭐야?)" 돌아오는 대답은 "수란", "아줄라". 그에 나도 "메라 남 애진해(나는 애진이야)." 그 이후로 아이들은 계속 나를 따라왔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으니 괜히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보여주었다. 사진 속 자신을 보고 순수하게 신기해하는 모습에 기분 좋아진다. 그런데, 둘째 여자아이가 반복적으로 침 뱉는 행위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씹는담배를 자주 피는 릭샤꾼들의 침 뱉는 행위와 겹쳐 보여 괜스레 불안해졌다. 불안함은 적중했다. 갑자기 뭔가를 발견한 듯 누군가에게 달려가려는 둘째. 그를 저지하는 내 옆의 첫째 여자아이. "무슨 일이야" 하고 물어보자 돌아오는 답은 "시가렛". 답도 답이었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한 아이의 표정은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 아이가 달려가려던 곳에서는 성인 여자 두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작 대 여섯 살의 아이가 담배만 보고도 쫓아갈 정도로 중독된 것이었다. 막연히 가능성을 예상하던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상상 이상의 충격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대체 어쩌다 저렇게 된 걸까. 도대체 무엇이 아이를 저렇게 만든 걸까..
2.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꽃바구니를 든 다른 두 아이가 나타났다. 좀 전의 아이들과는 달리 영어를 잘했다. 꾀죄죄함도 덜했다. Shiva를 시바라 한 내게 시바가 아닌 시화라며 발음도 고쳐준다. 궁금함에 "너희 영어 어디서 배웠니"하고 물으니 학교에서 배웠단다. '그럼 아까의 다섯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건가. 의무 교육이 아닌 건가. 그냥 가지 않는 건가.'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두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저 멀리 쓰레기들을 끌고 가는 다섯 아이들이 보였다. 조금 씁쓸해진 마음에 나도 이제 발길을 돌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그런 나를 붙잡는 두 아이. 그러더니 꽃초가 든 바구니를 내미는 것이었다. 아, 나에게 팔려고? 하지만 "난 필요 없어". 그러자 여자 아이가 넌 내 첫 비즈니스 고객이니 행운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좋은 가격에 주겠단다. 요것 봐라. 벌써부터 장사를 할 줄 안다. 똑 부러지게 말하는 모습이 또 왠지 모르게 안타깝다. 그에 얹혀가는 남자아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어쩔 줄 모르겠어서 그냥 두 개를 샀다.
3.
뜻하지 않게 꽃차를 두 개나 간신히 들고 가는데 또 다른 꽃초 파는 아이가 다가온다. 더 이상 못 사겠다고 하니 내 꽃초가 못생겨 시화가 화낼 거라며 10루피만 주면 자기의 예쁜 꽃초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이 아이도 벌써부터 영업 능력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산 거라 안된다고 하니 "your father and mother will be dead" 라며 저주를 퍼붓는 아이. 순간 "야 임뫄!!!" 하고 소리쳤으나 쿨하게 뒤돌아 가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여덟 명의 아이들과의 만남 이후로 심란함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무엇이 혼란스럽고, 무엇이 궁금한 거지? 채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질문들만 퐁퐁 솟아났다. 마침 숙소에서 알게 된 인도인 교수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Q. 왜 어떤 아이는 학교에 가고 어떤 아이는 못 가는 거죠?
A. 그 아이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낼 돈조차 없기 때문이지.
Q. 그럼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왜 꽃초를 파는 거죠?
A. 알바 같은 거지. 낮엔 학교에 가고 저녁엔 돈을 벌어 부모님을 돕는 거야.
Q. 왜 유독 바라나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을까요?
A. 바라나시는 성지이자 유명한 관광 지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고 기부도 많이 하게 되지. 그래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바라나시로 몰려들어.
Q. 바라나시에 정전이 잦은 이유는 뭐예요?
A.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는데 그에 비해 전기는 지나치게 적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정전이 발생하곤 해.
바라나시는 왠지 슬프다. 신들의 도시라고? 아니, 가난한 자들의 도시다. 옥상에 가만히 누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데 조금 눈이 울컥해졌다. 때마침 옥상에 NGO 관련 인도인 청년이 있었다. "내일 나도 그 NGO에 가볼 수 있을까?" 그에게 물었다. "그래 데려다줄게"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내일 그곳에 가면 조금 더 깊은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덧, 지금 3학년이라는 내게 “그럼 졸업하려면 1년 남았겠구나!” 말씀하시는 교수님께 잘 모르지만 휴학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 대학생들은 휴학이 매우 일반화되어있는데 인도는 휴학하게 되면 그들은 사회에서 실패하게 돼. 매우 극심한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절대 휴학은 생각도 할 수 없어."라고 답하시는 교수님. 갑자기 영화 <세 얼간이>에서 대학 총장이 뻐꾸기를 비유해 경쟁사회를 설명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영화에서 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레이스(race)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힐 거다.
너희들은 뻐꾸기다. 경쟁하거나, 죽거나.
숨 막히는 경쟁사회. ‘우리는 결코 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무엇이 옳은 걸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