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맨날 거짓말해야 해?"
명절이든, 제삿날이든 친척집에 모이게 될 때면 엄마는 가기 전에 우리에게 항상 ‘이번에 가면 말하지 말아야 할 목록’들을 나열하곤 했다. 방학 때 뭐했냐고 물어보거든 집에 있었다고 해라, 모른다고 해라, 등등 수십 번의 당부와 주의를 받은 채 가야 했다. 어떠한 자랑도, 단순 사실의 나열도 ‘하지 말아야 할 금지사항’이 되었다. 다른 언니 오빠들도 다 해외여행 다녀온 거 말하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비행기 못 타본 척 맨날 거짓말을 해야 하냐며 불만도 많았다. 어린 아이라 쉽사리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엄마 눈치를 봐가면서 답해야만 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너희 집이 기둥 뽑히면 우린 주춧돌도 없었어”
“우리 엄마가 너희 집이 기둥 뽑히면 우리 집은 주춧돌도 없대” 초등학교 5학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 친구가 한 말이었다. 그건 '너희 집 잘 산대'와 같은 말이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아마 나는 "엄마가 며칠 전에 새 차를 사서 아빠가 우리 집 기둥 뽑혔대”라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는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이 친구의 집 보다 잘 산다고?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똑같은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항상 친구를 부러워하던 쪽은 나였다. 친구는 항상 당시 유행했던 브랜드(아디다스, 나이키, 리바이스 등) 옷을 입었다. 반면 옷에는 지출을 지극히 아꼈던 엄마를 둔 나는 매번 지하상가의 이름 모를 옷가게를 가곤 했다. 그때의 나는 친구가 말한 ‘부자’가 무엇인지 몰랐다. 직업의 차이가 돈의 차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이 따로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이런 차이들이 후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친구의 그 한 마디는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큰일 났다. 친구가 적으로 보인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나 또한 다른 알들을 떨어뜨리려는 뻐꾸기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 시작은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다른 아이와의 ‘비교’는 내가 모자란 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오직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에 의해 일렬로 줄 세워지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내가 괜찮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비했던 이 경쟁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학력이 높아질수록 배가 되었다. 고작 점수 1점, 등수 1등의 차이로 입시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그로 인해 내 인생의 희비가 엇갈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극심한 두려움을 야기했다. 이렇게 상대평가에 따른 등수의 차이는 선행학습의 열풍을 일으켰고, 우리들은 너도 나도 학원에 보내져서 학교 진도로는 따라잡지도 못할 과정을 배웠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친구들은 몇 학년 뒤의 과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지금 고등학생 당시 썼던 일기장을 펴 보면 큼지막하게 ‘공부와 성적이 친구를 순식간에 적으로 만들고 있다 –기말고사 기간-’라는 두려움 가득한 문장이 적혀있다. 선의의 경쟁이라 생각하며 서로의 성공을 바랐지만, 동시에 한 명이 성공하면 다른 한 명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자꾸만 친구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무관심한 척 친구에게 네가 다니는 학원은 어떤지, 어디가 괜찮은지 물었다. 궁금함을 가장한 취조 행위였다. 그러나 동시에 친구가 행여나 나에게 경각심이 들 것이 두려워 과외를 한다는 사실을 숨기게 되었다.
"엄마.. 나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큰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내게 공부는 나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갖춰진 것, 준비된 것’이었다. 학원, 과외는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며, 이 선택권은 당연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은 아빠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TV 속이 아닌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학교, 집, 학교, 집을 반복하는 고등학교의 반복된 생활에 익숙해진 2학년 무렵, 절친한 친구로부터 조용하지만 담담한 고백을 들었다. 한탄이라기보다는 그저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친구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듣게 된 나와 다른 가정환경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조용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부모님의 갈등 물론,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가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진로마저 고민 중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친구가 가진 소원은 나에겐 지극히 소박한 것이었다. 제발 고3 때라도 딱 한 번만 학원을 다녀보고 싶다는 것.
‘어?... 이게 아닌데. 무언가 잘못되었다.’
머리에서 띵 하고 경종이 울렸다. 학원을 다니기 싫은 나와, 학원을 다니고 싶은 친구. 시작부터 달랐던 우리 둘이 만약 그 출발선을 같이 했었다면, 지금 나와 그 친구는 과연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있었을까? 순간, 지금 나의 성적은 아주 약간의 나의 의지와 8할의 돈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덮쳐왔다. 갑자기 대상 모를 누군가에게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지금 반칙을 하고 있다는, 공정하지 못한 시합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