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투의 거짓

부제: 인도 바라나시에서의 만남 3부(마침)

by 양애진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쌓여간다는 것은 곧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생겨나는 일이다.



젬베 티쳐로부터 산투에 대한 진실인지 험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들었다. 젬베를 배우고 싶다던 내게 '무려' 산투가 소개해준 선생님이었다. 사실 처음 산투와 선생님을 찾았을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다. 본능적으로 선생님이 산투를 탐탁지 않아함을 느꼈달까. 그래서 산투와 함께 온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에게 먼저 거리감을 두는 듯한 선생님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산투에 대한 신뢰가 생겼던 참이라 당시의 나는 오히려 젬베 티쳐를 경계했었다. 그 후, 수업 이틀째, 삼일째 젬베를 열심히 배우려는 내가 그래도 조금은 마음에 들기 시작했는지, 선생님의 벽이 점점 허물어지고 친근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드디어 본심을 말하는 선생님이었다.


바라나시에는 약 20여 개의 NGO가 있는데 그중 2-3개만 괜찮은 기관이며 나머지는 거의 비즈니스 업체라고 했다. 산투의 NGO는 그 '나머지'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NGO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술을 마시고 약을 한다는 것, 날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것은 약물로 인해 노랗게 변한 눈을 가리기 위함이라는 것. 처음에 나를 젬베 티쳐에게 데려왔을 때도 소개해줬으니 커미션을 요구했었다는 것, 친한 친구라고 했던 사진 속 일본 여자는 실은 산투의 아이를 임신한 채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 듣고 있는 모든 말이 차마 믿기 어려워 그만 말문을 잃고 말았다.


물론 언제나 경계심을 놓진 않았었지만 점점 그 벽이 무너지려던 참이었는데 상상 밖의 이야기를 들으니 쉽사리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눈이 시큰시큰 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배신당한 기분을 처음 느낀 탓이었다. '나는 세상을 너무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했던 것일까. 전형적인 낙관주의로만 세계를 보고 싶었을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없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름다운 것만 보려 했던 걸까..' 자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내가 산투의 가족과 친하다는 것을, 그의 과거를 들었다는 것을 그를 믿을만한 증거로 여겼던 것이었다.


매일 아침 산투 집에서 짜이를 마시던 일, 산투는 착한 마음(good heart)을 가져서 슬픈 일이 많았다는 그의 엄마의 말. 자신 때문에 힘들었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산투의 말.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올 땐 더 커진 NGO를 보여줄 테니 바라나시에 또 오라는 산투 엄마의 다짐. 사리를 입어 보며 사진을 찍고 즐거웠던 시간들.. 나의 바라나시를 가득 채웠던 그곳에서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바라나시는 이대로 무너지는 걸까..'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멍하니 넋을 잃은 내게 젬베 티쳐가 다시금 말을 꺼냈다.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선 착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선 좋지 않은 면을 보일 수도 있어. 네가 사람을 대할 때 객관적으로 그 사람이 선하거나 악하다로 판단하기보다는 너에게 어떤 종류의 사람이 가장 잘 맞을지를 생각해. 난 산투가 너의 물건을 훔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다만 조심하길 바란다는 것이지. 상대가 어떻든 실제로 그 사람의 좋지 않은 면을 직접적으로 보기 전에도 미리부터 인연을 끊어 버리는 것은 옳지 않아."

맞다. 완전한 절대선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누구든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 지는 당사자의 말만 듣고는 판단하기 어렵다. 스스로의 입을 통해 듣는 자신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이게 된다. 산투의 입장에서는 그의 전 스페인 부인은 사기꾼이 될 수 있었고 자신의 행동은 옳은 것이 될 수 있었다. 불현듯 산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은 일(good thing)을 위해선 조금의 나쁜 일(bad thing)도 필요할 때가 있어. 부자(rich people)들은 항상 악해" 그의 말에는 이름 모를 대상에 대한 원망과 악이 서려 있었다.


여전히 멍한 채로 젬베를 좀 더 두드리다가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산투 집을 찾았다. 그의 엄마로부터 사리 입는 법을 배우는 순간에도 여전히 젬베 티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지갑 속 사라진 돈의 액수가 자꾸만 의심으로 변해가는 것 역시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실수로 질질 흘리고 다녔을지도 모르는데 한 번 시작된 의심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의심을 하는 스스로가 싫어질 지경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산투 엄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새도록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타인의 말만 듣고 섣부르게 관계를 끊는 것은 좋지 않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는 해야 한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비록 산투와 그 가족의 정확한 본심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호의와 그로 인해 즐거웠던 바라나시에서의 기억을 한 순간에 물리칠 순 없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그들은 어떠하였는가. 일단 나는 그들을 믿었고, 그저 인간 대 인간이로 진심으로 좋았기에 마지막에 남의 이야기만 듣고 마음의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작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 스스로 먼저 문을 닫아 버리는 후회할 행동은 하지 말자. 상대가 나에게 선하든지 악하든지 '내가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면(give a respect) 그도 나를 존중하게 된다(give a respect)'는 산투 본인의 말처럼 끝까지 잘 마무리 짓자. 다만 그들이 나에게 줬던 마음만은 진심이기를..



기차역에 가기 전 급히 산투 집에 들렀다.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들어간 집에는 여동생 마슈미와 산투 엄마가 있었다. 지금 떠나야 한다고 정말로 보고 싶을 거라고 만나서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산투 엄마와 동생이 나를 배신했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나중에 오면 인도의 전통 춤인 카탁을 알려 달라는 내 말에 흔쾌히 수락하는 마슈미였다. 나 역시 마지막 인사로 우리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산투는 어땠을지 몰라도 최소한 마슈미와 산투 엄마만큼은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었으리라. 아쉽게도 산투는 집에 없었다.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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