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의 첫인상_농부님과의 대화

by 양애진

삼시세끼 프로젝트를 마친 후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때였다. 미국에서 신나게 놀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나는 기숙사 방 안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곳의 잉여로운 생활 속에서 혼자 생각할 시간은 많았고 성찰의 시간도 많았다. 할 짓이 없어야 비로소 생각이란 걸 하나 싶을 정도로. 불안의 원인은 그거였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어느새 난 막 학기를 앞둔 늦깎이 교환학생이었다. 도대체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 각자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게 되었는지 대단해 보일 정도로 나는 답이 없었다. 이 분명한 형체 없는 고민과 정답 없는 걱정은 교환을 와서도 근 네 달 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11월 말 무렵 아침, 뜻밖에도 마음이 가는 길은 지난 삼시세끼에서 맺은 작은 인연 하나에서 나왔다. 경주의 농부님에게서 온 한 통의 문자.


애진아, 아이들이랑 인도에 가보지 않을래?


조언을 구하던 내게 돌아온 답변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갑자기 지구 반 바퀴를(그것도 한국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에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끌렸다. 미나리가 보내준 링크는 남인도에 위치한 '오로빌(Aurovile)에 관한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내 머릿속에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기만 했던 이런저런 생각 들이 정갈하게 글로 옮겨져 있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오로빌 공식 홈페이지


그래도 한 학기 휴학하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분명하게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었다. '자신의 무게중심을 확실히 땅에 붙이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회의 물결에 떠밀려 결국 지치게 된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제안이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지 않을까. 언젠간 다시 가겠다고 그렇게나 말했던 인도, 그리고 처음 알게 된 오로빌이라는 그곳.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를 만날 수도 있다. 어떻게 할까 인도라.. 조금씩 마음이 기울었다.


한 달을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지금 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공간은 이곳인 것 같았다. 우리가 바쁜 원인은 무엇인지.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게 된 건지. 다른 방면의 삶은 없는 건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앞으로도 이어가기 위해, 지금을 살아가는 양식으로 삼기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보고 듣고 싶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길가의 쓰레기 더미, 대상 없는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제각기의 방향을 가진 자동차, 아슬아슬한 간격만을 남기며 쌩 하고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 이리저리 널브러진 채 간신히 매달려 있는 빛바랜 원색의 간판들.. 지극히 인도스러운 길을 지나 좀 더 골목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다 보면 조금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녹색으로 우거진 숲과 그 밑에 뻗어있는 붉은 황토길, 그 길을 자전거를 타며 유유히 돌아다니는 서양인 할머니.. 오묘한 조합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곳. 오로빌에 들어선 것이다.


오로빌을 전형적인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국적과 종교, 이념을 초월하여 '전 인류의 평화와 조화(Human Unity)를 꿈꾼다'는 공동의 목표 하에 세워진 세계적인 마을(universal town)이다.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해 1968년 124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시작한 이곳은 이미 1966년 유네스코에서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아 지속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 보니 고작 인구가 3천 명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양 각색이다. 실험 공동체, 생태 공동체, 대안 공동체, 이상 사회, 반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 반문명주의 등등... 오로빌 앞에 달린 수식어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비난하기도 하고, 반하기도 한다.


세상에 어떻게 이 작은 마을 하나가 이토록 많은 스펙트럼으로 비춰질 수가 있는 걸까? 오로빌에 대한 평가는 그에 대해 감명받은, 혹은 불편했던 누군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이야기들을 보면 도대체가 나는 이곳을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사실 애초에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었을지도 모른다.


화폐 없는 경제, 자급자족을 이상향으로 삼고 있지만, 아무래도 열린 공동체다 보니 바깥의 자본주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거리는 매연을 뿜는 오토바이들로 북적이고, 그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나타나는 로컬 마을들 주변은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단순히 명상 센터, 힐링 공동체라는 말만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실망도 많이 하는 그런 곳이었다.


쨌든 오로빌의 첫인상은 뭐랄까 음.. 자연 속 실버타운 같은 느낌? 무국경 무종교라는 이상향처럼 인도인뿐만 아니라 서양인도 자주 보였지만 젊은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약 10년 전, 농부님이 이곳에 처음 왔을 당시에는 더 개방적이고 더 젊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왜 변한 것일까?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농부님과의 대화

오로빌 방문센터를 돌아본 후 나는 오로빌리언(오로빌 주민)으로 4년을 살았던 농부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물었다.

나: 외부와 단절되지 않으면 바깥에 넘치는 자본주의 물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런데도 계속 이 본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열린 커뮤니티를 지향한다면 사실 다른 공간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어디서나 사람 사는 게 다 같지 않을까요?

농: 그렇지. 오로빌을 위해 헌신적이지 않을 수 있지. 나도 오로빌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이곳에서 배운 가치들을 퍼트릴 수 있겠다 생각해서 돌아온 거야. 그렇다고 한국에 오로빌을 만들 수는 없어. 그러고 싶지도 않고. 다만 내가 사는 모습 자체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거지. 이런 식으로도 살아가는구나 하고."

나: 그런데 전 이런 삶을 살고 싶으면서도 모르겠어요. 자기모순에 빠져요. 내가 물질적인 것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농: 아니 왜 물질적인 것을 버려야 해? 그게 좋은데?


아니 왜 물질적인 것을 버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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