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돌연 휴학을 했다. 어느 순간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강박에 눌려있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졸업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아무런 줏대도 가지지 못한 채로 평생 타인의 시선에 휩쓸리며 살게 될 것 같았다. 목적도 모른 채 달리기보다는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멈춰보자. 일단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텅 빈 시간을 마주하면서 온종일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공백을 어떤 것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누군가 길을 잃었을 땐 잠시 머리를 멈추고 마음을 따르라 했었나. 그때 떠오른 것이 어릴 적 그렸던 ‘내가 살고 싶은 집’이었다. 그래, 내가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자연 속에서 느리게 사는 것'이었는데 눈앞의 바쁜 사회에 미쳐 잊고 있었다. 당시 시작했던 예능 <삼시세끼>는 그 마음에 더욱 불을 지폈다. 그렇게 '삼시세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실 삼시세끼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에는 복잡다단한 이유가 있었다. 왜 주변에서는 항상 서울로 올라가라고 했을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 끝은 무엇일까? 모든 불행의 원인은 돈일까? 그럼 돈이 많으면 행복한 걸까? 그렇다면 돈 없이는 살 수 없을까? 완전한 자급자족 생활이 가능한가? 시골에 살면 가능하지 않을까? 등등..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한 비약과 일반화로 이어지는) 온갖 질문들이 이유가 되었고, 결국은 나를 시골로 이끌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계획은 간단했다.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서 “와달라”라고 요청하면 그곳을 찾아가 일하는 방식! ‘한 달간의 농활 아닌 농활’이라고나 할까?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자와 현지인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해지는 일종의 공정여행을 하고 싶었다.
1) 우선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2) 나름대로 기획의도와 인물소개도 적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가와 게스트 모집 포스터를 올렸다. (모르면 용감하다)
그렇게 ‘농가 모집’ 공지를 보고 가장 먼저 연락을 준 경기도 가평의 한 토마토 농장을 시작으로 6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의 시골을 돌아다녔다. 수많은 농장을 다니며 양파 밭 잡초 제거부터 토양의 수분 유지와 온도 조절을 위해 덮어놓은 비닐 제거, 토마토 수확, 모내기, 벽화작업, 대추농장 가지치기, 감귤농장 타이백 치기까지 여러 작업을 하면서 여행을 했다. 연고 하나 없었던 낯선 땅을 익숙하게 만들고, 또 다른 정겨운 고향으로 여기게끔 만들어준 바탕에는 모두 그곳에서 만났던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값진 이야기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플로리스트 이모_최고가 아닌 최적인 사람
강진의 어느 카페를 운영하던 이모는 알고 보니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온 플로리스트였다.
"원래는 전라도 광주를 와서 ‘문화의 도시’라니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터닝 포인트’라는 것을 마주하면서 강진으로 옮겨오게 된 거야. 이곳에서 ‘스쿨’을 운영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겠다고 한 거지. 그러다 관광여행 종사자와 인연이 되어 그후 백화점 VVIP 들을 대상으로 한 파티를 진행해왔어. 그 덕분에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었지. 다른 사람들은 특정한 것은 잘해도 전체적인 공간 구성을 잘 못한단 말이야."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끝나고 입원할지언정 맡은 일은 마무리하는 프로 정신은 가져야 만이 자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어.”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응하는 능력도 똑같이 중요하다. 최고가 아니라고 해서 날 필요로 한 곳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곳에서, 내가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최적인 사람이 되자.
목공 작가 삼촌_뒤에까지 볼 줄 알아야 해
“(컵을 가리키며) 여기서 이 뒤에 까지 볼 수 있는 투시를 가져야 해. 기초가 그만큼 튼튼하면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다는 뜻이야.”
“선생을 무지하게 쫓아다녀야 한다는 거야. 나는 공모전을 계속하면서 그만큼 현장 교육을 받아왔어. 젊었을 때는 다른 이들 것들을 카피도 해보고 했는데 지금은 내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드러내느냐, 작업을 하느냐 하는 차례지. 무엇보다 어중간하게 할 정도로는 하지 마. 쉽게 말하자면 120%를 할 수 있어야 해. 기초가 그만큼 튼튼해야 한다는 소리야.”
“생각으로만 그치지 말고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중요해.”
구절초 이모_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음악과 예술이 함께하는 푸드아트빌리지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이모였다. 완도의 어느 섬에서 구절초 밭을 가꾸며 시를 쓰는 이모는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방송을 거절한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방송이라는 것은 굉장히 사람의 허영심을 부추기는 것이야. 처음 할 때는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지만 이게 방송을 위해 자신을 더 부풀리고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더라고. 방송에 70 퍼는 진실이지만 30 퍼는 방송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거짓이라고 보면 돼"
전복 삼촌_모든 사업은 마케팅이여
"인생은 고도리야. 결국은 끈이야. 평가하는 건 사람이고. 결론은 그래. 항상 조심하고 무서워해야 하고. 가끔은 진짜 또라이가 있어."
“모든 사업은 마케팅이여. 예술도 마케팅이여. 배병호, 유영호 작가님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그런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면 한 나라를 들썩이는 유명인들이야. 내수시장이 없다면 외국!”
"너희들이 농활 하면서 느낀 것을 앞으로 결코 잊지는 마라. 우리나라 농업이 이렇게 힘들다. 열심히 일한다. 여기도 있는 동안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을 더 느끼고 갔으면 한다."
양파와 할머니_풀만 뽑는다고 농사가 아니여
가평의 양파 밭에서의 일이었다. 비몽사몽 정신없지만 트럭을 타고 털털털털 실려온 곳은 땡볕 아래 양파 밭. 새 작물을 심기 위해선 지난해 했던 멀칭 작업의 결과물인 '검은 비닐'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그게 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멀칭이란, 잡초제거를 방지하고, 토양의 수분 유지 및 온도조절을 위해 땅을 검은 비닐로 덮는 것을 말한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다. 비닐 위로 풀들이 너무 많이 자라서 웬만해선 뽑히지 않는다. 오전부터 급속도로 지쳐버린 우리와 달리 이미 꼭두새벽부터 와 계신 할머님들은 소리 없이 능숙하시다. 할머님들은 개인 농사도 지으시면서 추가로 일을 오시는 거란다. (70세도 할 수 있는 알바라니 괜찮은데?) 그분들과 좋은 짝이 되어 열심히 비닐을 잡아 뜯는 중, 6.25 전쟁을 책 속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가지고 계신 할머님이 말하셨다.
"힘들지? 농사란 게 다 이런 거야. 예전엔 다 이랬어. 영화 <국제시장> 봤니? 그게 현실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시에는 할 수 있는 게 이 농사일뿐이라 한 평생을 이러고 살았지만 이젠 아니야. 농사도 배운 사람이 잘 지어. 못 배운 사람은 농사도 풀만 뽑지 잘 못 지어. 배운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개발을 해야 우리 농업이 발전하는 거야.."
홈스쿨링 아이들_전 일등하기 싫어요
부러 농촌에 들어와서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자연에 관심 많은 아이는 약초/독초를 구별할 줄 알고, 하얀 물이 나오는 식물(질경이, 쑥)과 노란 물이 나오는 식물(애기똥풀)을 술술 말할 줄 아는 그야말로 자연 박사다. 일도 놀이처럼 하자 싶어 "최강 양파 찾기 하자! 가장 큰 양파를 가장 빨리 찾는 사람이 1등이야!"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전 일등하기 싫어요. 막 사람들이 몰려다니면 귀찮은 것 같아요. 최대한 열심히 해서 빨리 지쳐버리고요. 그래도 체육은 잘하고 싶어요. 그건 힘이나 체력을 겨루는 거잖아요. 그럼 선입견에서라도 애들이 저를 쉽게 못대하죠."
10살이 하는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 탐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였다.
블루베리 청년 이장_중요한 것은 마음과 태도
농사를 짓는다면 그저 가업을 잇기 위함이려니 혹은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하고 섣불리 편견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그건 오만한 착각이었다.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출까지 감행하며 농대에 간 수근 삼촌은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없잖아" 라며 당신의 의지를 밝히신다. 젊으신 나이에도 '이장'이라는 직함을 가지며 젊은 농부 연합인 '4-H'의 충남 지부 회장까지 맡으셨던 것만 보아도 그렇다. (4-H란, 농업 구조와 농촌 생활 개선을 위해 젊은 농업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
이장 삼촌을 보면서 감히 확신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다.
대추 이모의 인생_이젠 조금 알 것 같아
원치 않게 들어오게 된 시골에서 무려 18여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대추 이모, 그 사이 퉁퉁 부어버린 손바닥에는 홀로 자식 셋을 키워온 위대한 여성의 힘이 느껴졌다. 충북대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고 있는 이모는 말했다.
"농부들이 농사만 지을 줄 알지 정작 농장 경영은 할 줄 몰랐던 거야.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생각해야 해."
이모는 나의 설명하기 어려운 이 여행을 이해해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했다.
"난 나실 제일 첨에 너네를 이해하지 못했어. 아들이 자기 친구들 데리러 올 때도 하루 일당 5만 원씩 주거든, 금요일에 와서 토요일 하루 내 일하고 일요일 올라가는 그런 식으로. 근데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이렇게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세상을 구경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보러 다니는 거.. 응 현명한 것 같아. 정말. 이모가 이렇게 주먹구구 이리저리 말했지만 잘 알아먹을 거야 똑똑하니까. 그치?"
대추나무 밭 풀을 메던중 갑자기 들려온 이모의 말에 순간 울컥하니 코 끝과 눈꼬리가 매워오기 시작했다. "아니 왜 울어?" 하는 이모의 서글서글한 목소리와 함께 왈칵 떨어져 버리는 눈물방울.. 호미를 들고 우악스레 잡초를 매던 손이 무색하게 그만 울어버린 나였다. 정말 어쩌면 나 보다도 나를 보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보다 더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를 충만하니 소중히 썼으면 좋겠다”는 대추 이모의 바람을 6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농가와 게스트를 모집하고 여행의 과정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던 SNS 페이지 덕분에 여러 매체에서 연락이 왔고, 여행을 마친 뒤 우리의 여정은 몇 개의 기사로 요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