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인도 바라나시에서의 만남 2부
아침이 되자 어제 부탁했던 NGO 단체장이 숙소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녀를 따라 골목골목 들어가며 도착한 곳은 두 개의 큰 자물쇠로 꽁꽁 잠겨있는 작은 창고. 이 허름한 건물의 이름은 <BRIGHT EDUCATIONAL WELFARE SOCIETY>.
오늘 나의 목적지이자 어쩌면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곳이었다. 아침에는 약 30명의 아이들, 저녁에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한 6-7명의 아이들이 2명의 선생님과 공부를 하는 작은 학교이자 NGO. 하필이면 선생님의 병가로 인해 학교는 휴일이었다. 대신 단체장의 초대로 짜이 한 잔을 하러 간 집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NGO 운영자이자 설립자인 그의 이름은 산 투데이, 줄여서 '산투'. 이 작은 NGO를 창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단체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강가 강에서 떠도는 한부모 아이들 혹은 고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데려와 교육시킨다고 했다. 나이가 든 아이들도 시도해 보았지만 이미 돈을 알아 버린 아이들은 교육을 거부한다고 한다.
나는 학교라기에 영어나 수학 같은 우리에게는 기본인 교육과정을 생각했다. 봉사를 위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내가 무슨 도움이나 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에 그저 같이 밥을 먹고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가져와서 자신의 학교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 준다. 그가 보여준 아이들의 1년 전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전에는 씻지도, 옷 입는 방법도 몰라 꾀죄죄했던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면서 스스로 씻는 법, 머리를 빗는 법, 단정해 보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필요했던 배움은 영어나 수학이 아니었다. 가장 기초적인 생활법 조차 배우지 못했던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교과 공부가 아니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배움을 갖춘 후에는 산투의 지원으로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고 한다. 어느덧 18명의 아이들이 NGO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5년 전 큰 NGO 교육 단체에서 매니저 역할을 했다던 그는 스스로 NGO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과, 약 1년 반 전부터 이 작은 학교를 시작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어머님의 이름으로 NGO를 설립한 연유가 뭘까 궁금히 뭘까. 이에 어머님 이름으로 이를 설립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고, 자신은 후에 더 큰 후원을 기반으로 더 나아가 인도의 엄마들을 위한 NGO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산투였다.
NGO단체라 하면 경제적으로 굉장히 부유하거나, 최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설립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 NGO장이라니.. 사실 중요한 것은 돈이 있고 없고 가 아니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구나.. 자신의 NGO를 위해잘 시간도 줄이면서 밤낮으로 일하는 그는 몇 달 전에는 과로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했다. 오늘은 학교가 휴일이니 내 시간이 된다면 학교 아이들의 집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를 따라 골목골목 깊이 찾아간 곳은 집이라고 말하기에 심한 무리가 있었다. 고물상도 아닌 쓰레기 소각장 같았다. 여러 상표의 천막과 검은 비닐로 마구마구 뒤덮인 그곳을 과연 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안에 아이와 엄마가 밥을 먹고, 빨래를 널고 있는 것을 보니 분명 집은 맞는 것 같았다. 심지어 위에 덮인 검은 비닐은 산토가 준 것이라고 했다. 그 비닐이 있기 전까진 햇빛, 빗물이 그대로 집안으로 쏟아져서 아이들이 쉽게 병에 걸렸었다고...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가난의 정도에도 수준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화장터에서 일하는 가족(burning family)들의 형편은 나은 편이라고 했다. 마침, 골목에 들어서자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마도 아빠가 만들어 주었을 셀로판지 선글라스와 악기를 세상 즐겁게 흔들어대는 중이었다. 날 보자 "I like photo"를 외치며 사진을 찍어달라며 졸랐다. 덩달아 영상까지 찍어주니 ABCD부터 one, two, three, four까지 아는 것들을 총동원해 노래를 불렀다. 그래,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 텐데..
그다음 방문한 곳은 릭샤꾼 가족의 집이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릭샤에 비해 자전거를 개조한 사이클 릭샤꾼들은 더 소외된 노동계층이었다. 여기부터가 산토가 데려오는 단계의 아이들이다. 칼리 사원의 그늘에서 점심시간 겸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할아버지 무리들이 보였다. 둘러앉은 가운데 큰 양동이에는 카레로 보이는 노란 죽이 놓여있었다. 더위를 피해 쉬고 있는 할아버지들은 모두 사이클 릭샤꾼들이었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collector, 즉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는 가정, 그리고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다. 그들은 페트병, 유리병 등 길가의 쓰레기들을 주워 팔면서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오는 길에 보았던 쓰레기가 가득했던 집들이 바로 그들의 집이었다.. 가난도 다 같은 가난이 아니었다.
매년 여덟 달을 돈을 벌어 네 달 동안 인도 이곳저곳 여행을 떠난다는 산투. 비록 올해는 NGO 활동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마음은 풍성하다고 했다. 이에 또 궁금함이 들었다. "산투. 누군가는 먼저 돈을 많이 벌어 나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냐고 해. 돈이 먼저일까, 도움이 먼저일까?" 이에 산투가 답했다. "물론 돈이 필요한 것은 맞아. 하지만 자기가 번 돈을 남을 위해 쓰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실행에 즉시 옮겨야 오래가지 않을까? 길을 가다 수많은 NGO 간판은 보았다. 산투는 살짝 분개하며 "저렇게 유명한 NGO 중에는 지원만 받고 일을 하지 않는 NGO들도 많아"라고 했다.
산투와의 산책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사이클 릭샤를 탔다. 두 명의 무게가 무거운 듯 힘겹게 페달을 돌리는 사이클 릭샤 할아버지. 괜히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나 미안해졌다. 짠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인도인에게 일은 평생에 일컬어 가장 중요한 삶의 일부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산투는 말했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라.. 25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말만 하는 그였다.
처음에는 언뜻 보면 양아치 같은 산투의 겉모습만 보고 불량하고 좋지 못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외모만 보고서 판단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산투의 예상외의 면모는 그의 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릴 적 큰 개에게 목을 물려 먹지를 못하는 강아지를 데려와 훤칠하게 키운 점, 부모를 잃은 아이를 입양해 '디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동생으로 삼은 점이 모두 그러했다. 힌두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의 여동생은 야간 학교의 선생님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산투 네로 향했다. 산투 엄마(단체장)와 아침 짜이를 마신 후에 NGO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는, 그런 일상적이고 평범한 보통의 나날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