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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우닝 May 20. 2024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열심히 해주셨는데  죄송하게 되었네요, 실장님"으로 시작된 원장님의 이야기. 학원상담직원이래 봤자 나 혼자이지만 원장님은 나를 실장님으로 불러주고 있었다. 


원장님의 이야기의 요지는,  원래는  수납이나 단순 안내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기도 하고 학원학생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학생 수를 늘려보려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상담하기 위해 상담실장을 구한 것이라고. 그런데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어 운영이 어려워서 일단 여기서의 학원을 정리하고 위치를 옮겨서 다른 곳에서 시작해보시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원장님이 나를 불렀을 때 혹시... 하고  예상은 해보았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렇게 된 것이 내 탓만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왠지 내 몫의 일을 다 못 해낸 것만 같아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이 학원에서 일하게 된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3개월 만의 해고라니.... 마음속은  착잡했지만 이렇게 돼서 저도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말하자, 원장님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오히려 그만두시게 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는데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전화를 , 학생을 기다리며 멀뚱멀뚱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사실 참  곤욕스러웠기 때문이다.


2주 정도 더 일을 하고 그만두게 되었고 몇 달 후 살던 집의 전세만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아이의 학교와 남편의 직장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살던 집을 내놓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 이사 가고, 새로 간 동네에 적응하며 여름은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이사를 마치고 새 보금자리와  환경에 적응하고 나자 마음 한구석에 빈자리가 느껴졌다. 대학생이 된 아이를 위해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대로 주저앉기 싫어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며 이력서를 보내보았지만 3개월의 경력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점은 그대로였다.  


그러던 중 온라인 학부모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을 만나러 가서 대화를 나누던 중 구직이 어렵다며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어디 일자리 없냐며 물어보려는 거라기보다는 누군가라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어서 간 거였는데 마침 자신이 아는 사람이 수학학원의 원장으로 있는데 그 학원에서 새 지점을 연다면 거기서  데스크직원으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새 지점의 위치가  이사 간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우선 자기에게 내 이력서를 보내주면 그 사람에게 보내줄 테니 연락을 받으면 면접을 봐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헤어졌지만 연락이 과연 올까 싶기도 하고 새로 여는 학원이라는 말에 걱정도 되었다. 학원이 자리 잡고 제대로 운영되게 하기까지 일이 많을 텐데 경력도 빈약한 내가 가능할까? 


며칠 후 전화가 와서 면접을 보러 갔다. 과거에 다니던 학원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큰, 지점이 여러 곳인 대형학원이었다. 우선 자기가 있는 여기 A 지점에서 2주 정도 일을 배우고 새로 오픈하는 B지점으로 가서  새로 임명되는 다른 원장 밑에서 일하라는 것이었다. 


업무를 가르쳐주는 사람과 실제로 상사가 되어 나에게 업무를  시킬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 그때는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다. 내가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싶기도 하고.  학원이 새로 문을 연다는 점이 가장 두려웠다. 많이 걱정되었지만 여기서 잘 해내면 나에게 큰 경력이 되겠지 싶었다. 까짓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벼보자 싶었다. 


출근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 맨땅에 헤딩하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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