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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우닝 May 27. 2024

맨땅에 헤딩하기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기까지

파견된 A캠퍼스에서 일을 하며 업무를 배우는  2주 동안의 근무시간은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요일은 토요일에 안 나오는 원장이 근무하는 덕분에 데스크는 휴무. 주중에 하루 쉬고 토요일은 시간표를 짜서  아침 10시부터 10시까지  교대하며  근무. 저녁 식사는  학원 안 공간에서 김밥 등으로 간단히 때우기. 그렇게 시작되었다.


학원의 시간표, 상담 매뉴얼, 학원 전산시스템 아카 , 복사기 사용법 등 익히기 , 레벨테스트 문제 편집하는 것 배우기 등 다양한 것들을 빠른 시간 내에 익혀야 했지만 무엇보다 학원으로 오는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는 것이 급선무였다.  학생 출결 확인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사항이므로. 급한 불들을 꺼가며 업무가 조금은 손에 익자 새로운 고충이 느껴졌다.  나의 어정쩡한 위치.


내가 일을 배우고 있는 곳은 여기 A 지점이었지만 내가 앞으로 일하게 될 곳은 B지점. 그 두 지점 간 원장끼리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내가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각 원장은 개인사업자가 아닌, 전체 학원법인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이었다. 이를테면 본사가 있는 지점의 월급사장.  그러므로 각자의 지점에서 더 많이 학생을 받고 더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A 지점의 원장은 회사에서 지시를 받고 B지점에 학원을 오픈하러 가는 동료(?)를  위해 직원을 트레이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쓸만한 직원으로 만들어보았자 그 직원은 다른 지점에 가게 될 터,  그 원장으로서는 그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하는 일이 아님을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B지점의  원장이 될 사람을  소개받은 후 그 원장이 시키는 일- A지점의 학부모 안내 문자양식을 보내달라는  -을 아무 생각 없이 했다.  같은 회사라면 문자 양식 정도는 공유해서 쓰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의심하지 않고. 그러나 그 후 문자양식을 B지점 원장에게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A원장은 나를 거의 업스파이(?) 취급을 했다.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높이며 질책했다. 자기가 애써 생각해서 작성한 문자인데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보내냐고.


맙소사... 애초에 그런 문자를  B원장이 A원장에게 직접 요청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긴 그래서 되었을 일 같으면 나에게 시키기도 않았겠지만.... 두 원장 사이에 끼어서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왜 이런 어정쩡한 포지션을 받아들였을까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경쟁자 둘 사이에 끼어서  계속 받을  스트레스가 두려워서 그만둘까도 싶었지만  소개해준 지인이 맘에 걸려 쉽사리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2주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B지점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이제는 상사가 한 명만 있게 되었으니  좀 괜찮을까 싶더니 어나더 레벨(?)의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막강산 같이 넓고 빈 학원에 남자 원장과 둘이 덩그러니 앉아서 오픈을 위해 시작부터 모든 일을 해야 했다. 강사를 구하고 시간표를 짜는 중차대한 일 등은 원장의 영역이지만 그 일의 보조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책상과 의자 등의 집기 들이기 닦기, 비품 구매, 학원이 들어서는 자리 주변의 중고등학교 조사하기, 학원생 모집을 위한 홍보활동, 학교 학부모들이 모이는 날짜 찾아서 전단지 돌리기 , 홍보 문자 보내기 등등을 해야 했다. A지점에서는 주말 하루 근무를 하더라도 주 5일 근무는 사수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학원 오픈이라는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주 6일근무를 해야 했다. 게다가 학원이 들어설 건물 위층에는 같은 회사의 다른 계열 -수학을 포함한 고등대상 종합단과반 -학원이 있어서 두 집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 지역에 먼저 자리를 잡은 선배(?) 학원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쪽 학부모 설명회일을 도와주면서 정보를 받기도 했는데 층층 시하 시집살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내 직속상관이 시키는 일 따로,  위층 학원일을 도와주며 눈치 보며 정보를 얻는 일 따로...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정말 뭐 밟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학원을 개원하고  수업이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위층의 학원에서도  수업형태가 다를 수학이라는 과목 그리고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집합이 있기에  암묵적인 경쟁, 보이지 않는  견제가 있었다.


학원이 문을 열고 나서도 주 6일 근무는 계속되었다. 주 6일 근무는 너무 힘들다고 몇 번을 사정해서야 원장은 시간제로 일하는  다른 직원을 뽑았고  주 5일( 주말 중 하루는 근무)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같이 일하게 된 직원분은 나보다 조금 나이가 있는 여자분이었는데 말도 잘 통하고 성실히 일해주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직원과 나를 대하는 원장의 태도에서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나는 학원개원을 같이 한 '창립멤버'이자 '개국공신'이고 더 오래 일하는 '풀타임' 직원이고 명색이 상담'실장'인데  여러 안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왠지 내 앞에서 시간제 직원인 그분을 두둔하는 뉘앙스가 자주 느껴졌다. 이건 뭘까.. 생각해 보니 아 그렇구나 나는 다른 원장이  꽂아놓은 사람, 그 직원은 자기가 뽑은 자기 사람. 더군다나 그 '다른 원장'과는 학원 오픈 준비를 하면서 문자 유출 등으로 껄끄럽게 된  사이.  


위층 학원 눈치까지 보며 사는 데다가 학원 본사 회의만 다녀오면 앓는 소리를 하는 원장을 보면서 안 그래도 학원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그만둬야겠다 속으로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만 죽어라 하고 시간제 직원에 밀리는 느낌까지 받는  실장이라니....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지?  언제까지 이렇게 핫바지 취급을 당하며 일을 해야 하나? 이제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곧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가 왔다.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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