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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01. 2019

8. 퇴사를 결심하고 上

(feat. 이제 뭐 해 먹고살지?)

<퇴사를 결심하고 上>



1. 입사 4년 차의 결심


몇 번의 낙방 끝에 회사에 입사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공기업에, 그것도 정규직으로!

엄마는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밥을 사고 다녔다. 아빠는 사무실에 은근슬쩍 딸 자랑을 흘렸다. 고생한 시간이 있었지만 다 보잘것없게 느껴질 만큼 행복했다. 입사하고 나서 첫 3개월은 힘들었던 것 같다. 분위기에 적응하고, 업무를 익히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썼다. 집-회사만 반복했고, 집에서는 실신했다. 무념무상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입사 1년 차가 되자 하나의 프로젝트를 스스로 담당하게 됐다. 처음 해보는 업무인 데다가 책임감에 버거웠다. 그렇지만 내 손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한다니 신기했다. 나 자신이 참 대견했다. 교수, 변호사들이 한가득 있는 회의에 참석해서 내 이름 석자가 박힌 명함을 돌릴 때는 희열이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후배와 인턴들이 들어왔다. 따끔하게 잔소리도 하고, 가끔 맛있는 음식도 사주며 선배로서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조직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입사 3년 차가 되자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을 때는 '네네' 했었을 것들이, 이제는 불합리하고 부당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맡은 업무도 더 중요해지고, 많아지자 팀장님과 자주 부딪혔다. 조직에 애사심을 갖고 열심히 일 한만큼 열심히 부딪쳤다. 모난 돌이 둥근돌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 과정은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온몸을 조각칼로 깎아대는데 어떻게 안 아플 수가 있을까?  나는 아픔에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후배와 인턴들에게 거리를 뒀다. 팀장님, 과장님과도 공과 사의 관계를 구분하기로 결심했다.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 받지 말자고 결심했다.




2.  인턴의 블로그


새로 온 인턴은 눈에 차지 않았다. 업무를 지시하면 표정으로 말한다.


'이딴 잡무 나한테 시키지 좀 마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난 그렇게 느꼈다. 나 또한 팀장님이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하지 않아도, 나를 싫어한다고 강력하게 느꼈으니까- 나도 지지않고 똑같이 표정으로 대꾸했다.


'잡무는 누구든 해야 하는 거고, 넌 인턴이니까 그냥 해라 좀!'


인턴으로 왔는데 일을 시키는 저 년이 나쁜 년이고, 심지어 잡무를 준다니 확실히 나쁜 년일 테다. 나 또한 인턴일 때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해한다. 후에 그 인턴에 내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팀장님 욕하는데 쟤도 할 수 있지' 하고 넘어갔다. 인턴은 곧 나갈 사람이고, 그녀가 날 미워한다고 해서 내 회사생활에 영향력 있지도 않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 그녀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다. 아니, 휴대번호만 있으면 왜 그 사람의 블로그며 페이스북이며 자동으로 알게 되는 걸까? 여하튼 우연히 인턴의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한 가지 글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를 미워하는 거지?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도대체 뭘 알까?'


이 글에 큰 상처를 받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인턴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다. 나는 꼰대 짓을 안 하는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회사에 다니며 어디 새 '갑질'에 익숙해져 있는 나 자신이 무섭다. 인턴들이 '을'의 입장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팀장님 앞에서 '을'이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갑'의 위치를 과시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경력을 쌓아온 게 아니라, 불필요한 나쁜 마음가짐을 축적해오고 있었다.




3. 사직서


더 이상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싫다.

모난 돌을 둥근돌로 바꾸고 싶지도 않다.

난 다음날 사직서를 냈다.

(feat. 이제 뭐 해 먹고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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