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Feb 02. 2019

9. 퇴사를 결심하고 中

이미 정해져 있는 진로, 그 길로 가겠습니다.

<퇴사를 결심하고 中>



1. 첫 한 달


회사를 다니면서 버릇처럼 하는 말, "그만둘 거야" 혹은 "이직할 거야"

나는 제일 바보 같은 퇴사를 했다. 이직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정하지 않은 충동적 퇴사-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1분, 3분, 5분 단위로 맞춰두었던 알람 14개를 모두 끄는 것이다.


'별다른 생각하지 말고 우선 한 숨 자자.'


다음날 일곱 시가 되자 눈이 떠졌다. 불안해서 깼다. 시끄럽게 꽥꽥 울어대는 알람이 어느 한순간 조용해지자 마냥 불안하다. 남들은 이 시간에 일어나서 씻고 부지런히 출근하고 있을 텐데... 따뜻한 체온이 묻어있는 이불로 몸을 감쌌다.

.

.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시계를 보니 11시 40분. 딱 배고플 때다. 천장을 열어보니 라면, 햇반, 생수병 두어 개가 전부다. 매일 밖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집에는 마땅히 먹을거리가 없었다. 라면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회사 홈페이지와 메일함에 접속해본다. 아직 계정이 살아있다. 내가 일 한 흔적들을 살펴본다. 그동안 주고받은 수천 개의 메일들, 상신하고 반려당하고 재 상신했던 수백 개의 문서들이 보인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허하지?


하루가 너무 느리게 흘러간다. 하루 종일 밀린 웹툰과 유튜브를 본다. OCN에서 영화도 두어 편 봤다. 이 많은걸 했는데도 시간은 오후 5시. 저녁 먹을 시간도 안됐다. 이직 준비나 해볼까 싶다. '공준모(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 접속하려고 하니 회원가입을 하란다. 생각해보니 입사하자마자, 취준 시 애용한 단톡 방과 카페를 모조리 탈퇴했던 것 같다. 부랴부랴 회원가입을 하니 이제 등업 신청을 하란다. 어휴-


 


2. 두 번째 달


2-1. 알바 서류면접 탈락

잠이 안 온다. 평균 수면시간 3시간.

이직을 하려고 보니 3년이라는 경력은 경력도 아니란다. 신입사원으로 지원하려고 보니 전공시험부터 NCS, 인적성검사, 3차 면접까지 돌겠다. 경력 3년, 즉 공부에 손 놓은 지 3년이라는 소리다. 3년 전만 해도 화려했던 자소설이 보고서가 되어있다. 뇌도 딱딱해지고 글도 딱딱해졌다. 심지어 하반기 공개채용도 거의 다 끝나서 지원할 수 있는 회사도 없다. 다음 공채가 있는 3월까지 놀고 있을 순 없다. 뭐라도 해야 했다.


'알바몬'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 가까운 지역에 일할 거리를 찾아봤다. 학원강사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아니 요새 문과생도 미적분과 확통(확률과 통계)을 배운단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공부나 할까 싶었는데, 같은 공고를 보고 있는 사람이 320명이란다. 남은 건 카페 종업원 자리라서 열심히 이력서를 썼다. 서류에서 탈락했다. 인건비가 올라서 바리스타 자격증 있는 사람만 채용한단다.


노트와 볼펜을 꺼냈다. 책상에는 까만 플러스펜이 굴러다닌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알록달록, 굵기도 가지각색인 펜들을 썼었는데 언제 이렇게 변한 걸까? 볼펜만 봐도 마음이 뒤숭숭하다.


우선 내가 잘하는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안 되겠다, 내가 가진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짜증 난다. 괜히 지금 상황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됐다. 그동안 뭐하고 산 걸까? 우리 엄마도 갖고 있는 바리스타 자격증, 난 그 자격증마저도 없다. 운동도 안 해서 살만 뒤룩뒤룩 찌고, 이 상황에서도 배가 고픈 내가 너무 밉다.



2-2. 이미 정해져 있는 진로, 그 길로 가겠습니다.

엄마는 요새 카페를 차린다고 난리다. 알고 보니 엄마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아줌마들도 다 같은 생각이다. 전통 찻집, 플라워 카페, 공방 카페 등 말만 조금씩 다를 뿐, 다들 카페를 한다고 난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종착지가 카페라면, 그 길로 가야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

.

한국 학생들의 진로는'치킨집'이라는 말이 있다. 요새는 '카페'가 '치킨집'보다 압도적으로 우세인 것 같다. 퇴직을 앞두고 계신 옆집 이모, 회사일에 지쳐있는 직장선배, 심지어 우리 부모님도 카페를 고민한다. 마지막 종착지가 정해져 있다면 먼저 가면 된다.


'가진돈 3천만원, 작은 카페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회사 다니며 매일 커피값만 2만 원 넘게 썼다. 카페를 차려서 직접 커피를 내려마시면 이 돈을 절약할 수 있겠지?'


그렇게 나는 카페를 차리기로 결정했다.







작가의 이전글 8. 퇴사를 결심하고 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