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Feb 06. 2019

10. 퇴사를 결심하고 下

이제 회사 안 다니는 백수인데, 이 목돈을 꼭 쓰셔야겠어요?

<퇴사를 결심하고 下>


1. 퇴직금 주세요.

카페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다녔다. 아침, 낮, 저녁마다 돌아다니며 시간에 따른 유동인구를 살펴봤다. 마음에 드는 곳은 월세가 비쌌고, 마음에 안 드는 곳도 월세가 비쌌다. 나는 곧바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월세는 그나마 저렴하지만 외진 곳에 갈 것인가, 월세가 비싸더라도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가로 갈 것인가. 나는 전자를 택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인건비도 걱정되고 무엇보다도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기왕 퇴사한 김에 삶의 여유 정도는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만기일이 한참 남은 적금을 깼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돈을 한데 모았다. 주머니도 탈탈 털었다. 언젠가 커피 사 먹는 대신 저축할 거라고 만든 저금통에 들어있는 14만 2천9백 원도 꺼냈다. 마지막은 퇴직금이었다. 왜일까 퇴직금은 선뜻 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정들었던 회사에서 준 마지막 월급 같은 느낌이랄까? 새 출발을 위해서는 투자가 불가피했으므로 은행으로 향했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니 곧 내 차례가 됐다. 퇴직금 통장을 쓱 내밀자, 은행원이 “해지하시겠어요?” 라며 묻는다. 이상하게 대답이 안 나왔다. 내 안의 내가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제 회사 안 다니는 백수인데 이 목돈을 꼭 쓰셔야겠어요?’


떨리는 손으로 은행원이 내어준 종이에 ‘해지’라고 쓰고 800만 원을 받아왔다.




2. 나의 안식처

예적금, 퇴직금 등등 탈탈 모은 돈은 3천만 원. 3천만 원을 들고 부동산에 찾아갔다. 월세, 관리비 등 여러 조건을 듣고 계약서에 사인하려는데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계약서에 사인한 순간 되돌릴 수 없다. 내가 결정한 길이니 내가 책임지고 나아가야 했다. 머리는 알고 있는데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내 등을 떠밀어주길 바랬다. 나중에 잘못돼도 그 사람 탓을 할 수 있는 보증 같은 게 필요했다. 난 바로 엄마, 아빠를 호출했다.


난 나쁜 딸인 게 분명하다. 항상 사고를 몰고 다니는 딸, 매일 부모님께 새로운 문젯거리를 던져주는 사고뭉치 딸. 이번에는 핵폭탄급 사고를 물어왔다. 집 주변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부모님을 불렀다. 심각한 목소리에 걱정된 부모님은 부랴부랴 뛰어왔다. 괜히 미안하게-  막상 엄마, 아빠 얼굴을 보니 말이 안 나온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엄마가 먼저 묻는다.


"설마 퇴사했니?"


정말 깜짝 놀랐다. 엄마는 내 표정을 보곤 본인이 더 놀랐다. 입사하고부터 힘들다고 징징거리다가, 3년쯤 지나서 잠잠하더니만 뭔가 느낌이 왔다고 한다. 엄마의 감은 정말이지 너무 무섭다. 아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듯 되물었다. "또 말버릇처럼 하는 말이지?” 나는 자발적 퇴사자였고, 아빠는 정년이 돼서 나가는 비자발적 퇴사자였다. 아빠는 스스로 뛰쳐나왔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아빠가 먼저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할 건지에 대해서. 나는 준비해 놓은 7장짜리 사업계획서를 보여드렸다. 그냥 생각을 정리하고자 만든 계획서인데, 이때를 위한 거였나 보다. 부모님은 착잡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리고는 한숨과 함께 “우리가 도와줄 건 없니?”라고 한 마디를 건넸다.


이 한마디에 난 녹는 듯했다. 안도감, 큰 안도감이 나를 온전히 안아주었다. 그래 나는 이 한마디가 필요했다.

비록 마지못한 인정이지만, 딸이 가고자 하는 길을 믿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걱정이지만-

내가 저지른 일이니 잘못돼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만 잘못되었을 때 나를 위로해줄 부모님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난 용기 내서 나아갈 수 있다.




3. 행복해 죽겠습니다.

부모님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자, 나는 겁이 없었다. 바로 부동산 계약을 체결했다. 입주일을 정하고 인테리어 업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정보통’, ‘카페 사장들의 모임’, ‘아프니까 사장’ 등 온갖 카페를 가입해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가진 돈이 많지 않았으므로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기로 한다. 바닥재, 벽과 천장, 조명, 가구, 식기, 식재료 등등 신경 써야 할게 너무 많았다. 너무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잠을 자도 2~3시간이 다였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밤새 야근하며 만든 보고서들이 다음날 한 번의 보고를 위해서만 쓰일 때는 마음이 쓰렸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뛰어다닌 출장길, 역 한편에 쭈그려 앉아 삼각김밥을 먹을 때는 마음이 배고팠다.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마다 느낀 죄책감, 우울함, 그 속의 모순들을 깨달을 때는 마음이 죽어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 어쩌면 그렇게 행복한지,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다.




4. 전문가

어느 정도 인테리어에 대한 큰 틀이 결정되자 통장에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비어 가는 통장이 걱정됐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대포도 생겼다. 오늘은 조명을 달고, 카페 카운터를 제작하는 날이다. 전기 배선 작업 후 조명을 달아줄 전문가 두 분, 카운터를 제작해줄 목수 두 분을 불렀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여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그분들에게서 느껴지는 전문가의 포스, 자부심, 열정이 새삼 부럽다. 작업이 끝나고 '멋지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봉투를 건넸다. 네 분의 반나절 인건비만 120만 원이었다. 뭔가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하루에 얼마를 벌었을까? 얼마만큼 생산성 있는 일을 했을까? 얼마나 유의미한 일을 했을까? 3년이라는 시간이 전문가가 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어느 정도 길은 정할 줄 알았는데...


일을 그만두고 나오니 나의 전문분야가 특별히 없다는 사실에 허탈하다. 원두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갖고 볶아주시는 로스터, 능숙하게 벽에 구멍을 뚫으며 냉난방기를 설치하시는 기사님, 그 모든 전문가들이 부럽다.


이제 나도 카페 오픈을 앞두고 있다. 나도 무언가에 있어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나를 봤을 때 '저 사람은 전문가다'라고 할만한 사람이 되어있을까? 문득 먼 미래의 내가 궁금해진다. 미래의 나를 기대할 수 있는 희망, 좋은 출발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9. 퇴사를 결심하고 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