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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9. 2020

60. 두 달간 카페 휴점, 무엇을 해볼까? 下

<두 달간 카페 휴점, 무엇을 해볼까?>


지금은 새벽 세시 반. 잠이 안 온다.

오늘은 시청에 가서, '통신판매업'을 등록하는 날이다.

처음 카페를 창업한다고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으러 시청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첫 시작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긴장감.

빠진 서류가 없는지 두어 번 더 확인하고 날이 밝자마자 집을 나섰다.


나는 고민 끝에 내가 직접 만들고 개발한 청, 시럽, 파우더를 온라인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카페라는 한정적 공간에서만 영업하기에는 '계절'도, '경기'도, 심지어 '미생물'조차도 나를 따라주지 않았다.

최근 소비자 트렌드도 매장에서 직접 방문해 음료를 마시기보다, 집에서 홈카페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청, 시럽, 파우더를 레시피와 함께 판매할 계획이다. 온라인으로도 판매하고, 택배 발송도 하면 '오프라인'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겠지. 직접 디자인한 스티커와 포장지로 돌돌 둘러싸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상품처럼 보인다. 게다가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다. 적절히 우유나 탄산수와 섞어먹으면 아주 꿀맛이다.


시청에서의 행정처리는 순식간에 끝났다. 통신판매업 허가를 받자마자 나는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다. "코로나 19로 발이 묶여있는 고객들을 위해 배달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또한 맛있는 음료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드실 수 있게 청, 시럽, 파우더를 레시피와 함께 판매합니다." 해시태그를 주렁주렁 달고나니 어느 정도 반응이 보인다. 단골손님들께는 소량씩 담아 맛보기용으로 전해드려 본다. '맛보기' 체험 이벤트를 열어 당첨자를 대거 뽑아 마구마구 제품을 뿌렸다. 첫 개시 기념, 첫 온라인 판매 기념 50%, 2+1 이벤트도 매일 열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유명한 지역블로거도 우연히 제품을 접하고, 정성스러운 후기를 적어주었다. 이 후기는 심지어 네이버 메인에까지 소개되었다.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휴점하고 한 달이 지났다.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것도,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창업을 하고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믿기지 않지만, '돈'을 벌었다. 월세와 관리비, 재료비, 카드값까지 내고도 '잔돈'이 남았다. 통장에 '돈'이 남아있다. 국민연금, 보험비를 내고도 '잔액'이 남아있다. 사실 카페를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나서 '수익'에 대해서 포기했었다. 그저 적자 없이, 월세를 빠듯 빠듯하게 내는 것에 감사했다. 간혹 월세도 못 버는 달은 '월세만큼만' 적자인 것에 감사했다. 그저 아등바등 이 공간을 유지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이제야, 코로나 19로 휴점을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돈'을 번 것이다. 돈이 남으니 처음으로 '저축'을 하고 싶어 졌다. 언제 또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르는 이 '돈'을, 이 '숫자'를 통장에서 계속해서 보고 싶어 졌다. 회사 다닐 때 모은 돈이랑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작은 돈이지만 더 커 보였다. 더 값지다. 더 소중하다. 이 소중하고, 작고, 귀여운 돈을 어떻게 쓴 단말인가.


휴점에 돌입한 지 두 달이 되었다. 배달 서비스는 주문이 훅 떨어졌다. 주변 카페들도 다들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다 보니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다만 직접 만든 홈카페 재료들을 판매하는 온라인숍은 꽤나 꾸준히 주문이 들어온다. 카페 한 켠에는 택배 상자들이 쌓여있다. 의자 위에는 칼, 가위와 테이프가 나뒹굴고 있다. 몇 없는 테이블 위에는 청과 시럽이 나란히 서있다. 뽁뽁이로 몸을 둘러싸인 청과 시럽은 내 손에 착착 박스 속으로 들어간다. 카페에는 척! 척! 테이프를 뜯는 소리, 뽁! 뽁! 포장하다가 내 힘에 터져버린 뽁뽁이 소리가 바쁘게 울린다.


그러다 문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였을까. 손님들의 도란도란 대화 소리, 카페를 잔잔하게 울렸던 음악소리, 원두가 갈리는 소리, 컵을 씻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이 많던 소리들은 다 어딜 갔을까. 그 소리들을 들어본지가 언제였을까.'


'띠링'


휴대폰을 열어보니 온라인 주문건 정산금 75,000원이 들어왔다. 이 정도면 음료를 15~20잔 정도 팔아야 나올 수 있는 돈이다. 나는 포장을 잠시 멈추고 카페를 둘러본다. 손님이 없으니 화장도 하지 않은 내 얼굴이 유리창에 비친다. 운동복에 슬리퍼. 오랜만에 카운터 겸 주방으로 들어가 본다. 앞에는 예쁜 유리잔과 그릇들이 보인다. 마지막에 저 식기들을 쓴 게 언제였더라. 돈을 벌어서 물론 기쁘다. 지금 이 같은 시기에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 자리에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게 언제였더라. 이 공간에서 사람들의 체온을 느꼈던 게 언제였더라.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손님과 나는 각자 자신이 가져온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내 머리위로는 햇빝이 따사하게 비춘다. 밖에는 고양이가 걸어다니고, 경비아저씨는 오늘도 고생이 많다며 손인사를 하고간다. '잘 지내셨어요?', '어서오세요! 지난번 시험치신다더니 어떻게 되셨어요?', '오늘의 신메뉴는 무엇인가요?', '단골손님한테 드리는 서비스예요!' '띠링'하고 날라오는 일방적인 주문 문자보다, 오고가는 저 수많은 대화들이 그립다. 지금 난 덩그러니 혼자다. 창고가 되어버린 이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다. 지난날의 평온함이 그립다. 사람들의 생기와 온도가 그립다. 지금의 이 코로나19만 종식되면 저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가 될까? 난 지금 '오프라인'이라는 공간의 한계는 벗어났지만, '오프라인'속에 갇혀버린건 아닐까? 난 이 카페를 그때 그 시절의 그 공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혼자 있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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