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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12. 2020

64. 나라는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때

<나라는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때>


코로나 19로 카페를 휴점 하고, 오픈하고, 다시 휴점 하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짧은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서 휴점 했고,

잠잠해지는가 싶어서 카페를 다시 열었지만,

우리 지역에 갑자기 확진자가 확 늘어나는 바람에 다시 휴점 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과일청, 시럽 같은 직접 만든 음료 재료들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최근 홈카페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다.

그런데 점점 카페는 택배를 보내기 위한 상자와 뽁뽁이, 테이프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창고로 변했다.

장사가 잘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물론 그렇지만, 손님들과 정을 나누었던 그 공간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나는 다시 카페 문을 열기로 결심했고, 몇몇 단골분들이 '이 시국에 꼭 문을 열어야겠냐?'는 염려 섞인, 그러나 내게는 듣기 싫은 잔소리 같은 말을 해주었지만 고집스럽게 문을 열었다.


막상 문을 여니 손님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직장인들이 드나드는 오피스 상권도 아니었고, 주변에 식당이 바글바글하는 식당 상권도 아니었다. '읍' 소재에 있는, 시골구석에 있는, 꼬불꼬불한 길을 찾아와야 발견할 수 있는 카페였다. 이 시간만 지나면 봄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다. 때마침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소상공인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저금리 대출제도였고, 또 다른 하나는 '긴급생활안정자금 지원'제도였다. 저금리에 대출해준다니 안 받으면 손해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1인 자영업자인 내게는 월급을 줄 종업원도, 내야 할 4대 보험비도 없었다. 나의 인건비는 값이 메겨지지 않는 노동력이었다. 대신 생활비는 필요했다. 일하던 놀던 먹고 사는 데는 꼭 돈이 들어갔다. 긴급생활안정자금 지원제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나도 해당이 되었다. 코로나가 발발한 2, 3월 매출이 작년 대비 70% 이상 감소했으면 100만 원, 무려 100만 원이나 지원해준단다. 휴점으로 매출이 바닥에서 꼬끄라져있던 내게는 한 줄기의 빛이었으며 동아줄이었다. 구원의 줄이었다.


신청서, 지원의 필요성, 매출자료 등등


순식간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갖췄다. 서류는 코로나 감염문제로 '온라인 접수'만 받는단다. 그것도 메일 접수가 아니라 '문서 24'라고 정부기관, 지자체 등에 민간업자가 전자공문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서만 접수가 가능했다. 조달업무며, 경영평가며 온갖 행정업무를 다해봤던 내게는 껌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문득 떠올랐다. 우리 카페 건너건너편에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아주머니. 나에게 끼니는 거르면 안 된다며 이것저것 반찬을 가져다주시던 아주머니. 가끔 '서마트폰 이거 우째하노?' 라고 휴대폰을 들이밀던 아주머니. 코로나 이후로는 텅 빈 가게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 아주머니. 다들 하는 말이 있다. '정부지원금은 아는 사람만 받아먹는 거'라고. '못 먹는 사람이 바보라고' 아무것도 모른 채 지금의 힘든 상황을 맨몸으로 부딪히고 있을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지원금이 떨어져서 다음 달에도 신청했을 때 예산이 없어서 못 받으면 어떻게 하지?'


살아간다는 게 참 무섭고 소름 끼친다. 나라는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진다. 나라는 인간의 본성이 이토록 이기적이다. 나는 안다. 결국은 이 이기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거라는 걸. 결국에는 그 아주머니께 가서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 결국에는 서류접수까지 도와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잠시, 찰나의 순간에 드러낸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속상하고 비참하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임대 카드가 줄줄이 붙어있는 그런 거리가 아니라, 카페로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이웃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일상, 출출할 때 아주머니가 만들어준 따끈한 시래깃국에 밥 말아먹던 그 일상이야 말로 내가 진정 원하고, 간절히 지키고 싶은 일상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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