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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13. 2020

65. 아빠의 배가 떠내려갔다.

<아빠의 배가 떠내려갔다.>


"딸, 오늘 카페 문 열면 청소해주러 갈까?"


정말, 너무나도 반가운 아빠의 인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아빠는 36여 년의 월급쟁이를 끝내고, 귀어를 한다며 섬으로 들어갔다. 퇴사 후 카페를 창업했을 때 아빠도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귀어나 귀농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장사가 어마 무시하게 잘돼서, 아빠를 정식으로 고용하고 월급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대단한 착각을 했었다. 아빠는 한산한 카페의 청소를 도와주다가 결국 귀어를 선택했고, 계절에 맞게 쭈꾸미나 낙지 따위를 잡아서 보내주곤 했다. 아빠의 손피부는 생선의 비닐처럼 거친 물결이 생겼다. 누가 귀어한 거 아니랄까 봐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기미며 잡티며 점까지 수두룩해졌다. 까무잡잡한 아빠가 입고 있는 옷은 또 촌스러웠다.


"아빠, 한 발 늦었네. 오늘 청소 이미 끝났거든? 커피나 한 잔 할까?"


아빠는 지금이 쭈꾸미 철이라느니, 네가 좋아하는 바지락이며 가리비를 엄청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느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여놓는다. 나는 '생선은 고등어랑 갈치가 제일 맛있더라'라고 말하면, 아빠는 나를 째려본다. 아빠가 잡은 생선들도 맛있다고 해주라는 듯. 사실 나는 날생선을 못 먹는다. 미끄덩거리는 식감 때문일까, 익히지 않은 음식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초밥도 못 먹는다. 아빠는 이런 나를 두고 '너 내 딸맞냐?'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지만. 아빠는 그래서인지 쭈꾸미나 낙지를 주로 잡아왔다. 이상하게 오징어며 문어처럼 다리 많이 달린 것들은 맛있다.


"아빠, 힘든 일은 없어? 텃새라던가?"


평상시 아빠와의 통화에서 고단함이,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에서 삶의 쓴맛이 느껴진다. 그런데 아빠는 본인이 선택한 길이므로 후회가 없다는 듯, 모든 것에 만족한다는 듯,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듯 웃기만 할 뿐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아메리카노에 얼음이 다 녹아내려서 테이블이 흥건해졌다. 아빠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즐겁다. 이 순간이 행복하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아아아~~ 아 갈대의 순정 말없이 가신 여인이 눈물을 아랴


아빠의 전화다. 요란하다 요란해. 내가 눈치를 주자, 아빠는 자신의 취향을 들킨 것 같아 살짝 민망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기분 좋게 전화를 받던 아빠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목소리도 심각해진다.


"배.. 배가 떠내려갔다고요?"


내 두 눈이 동그래진다. 아빠는 지금 바로 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빠는 잠시 말을 잃다가 스스로 정리하려는 듯 전해준다.


"정박해둔 배가 떠내려가서, 배에 등록된 번호보고 연락을 주셨대. 다행히 큰 배를 가진 분이 아빠 배를 끌고 오고 있는 중 이래. 아빠 지금 바로 가봐야겠다."


아빠는 허둥지둥, 바지 뒷춤에서 차키를 꺼내고 일어선다. 이미 걱정이 한 아름인 아빠 앞에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말'은 통하질 않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과 빵 한 조각뿐이다.

음료를 건네주기 위해 닿은 아빠의 손은 차갑고도 낯설다. 제대로 몸을 녹일 새도 없이 떠나는 아빠의 손은 생채기가 가득이다. 항상 내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어만져주었던 아빠의 손은 이토록이나 모진 풍파를 맞았다. 차마 아빠의 손을 맞잡을 수 없다. 아빠의 손을 볼 용기가 없다.


저녁 늦게나 되어서 아빠한테 연락이 왔다. 다른 섬으로 떠내려간 배를 찾았단다. 섬으로 가는 건 가더라도, 올 때는 배를 타고 와야 하기 때문에 어찌어찌 대중교통편을 구하다 안돼서, 주변 지인에게 부탁해 트럭을 타고 갔단다. 지인은 트럭을 타고 되돌아왔고, 아빠는 다시 그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돌아왔단다. 배를 수리하고, 미끼를 사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가장 저렴한 앵커를 사다가 걸어놨는데 바닷물에 녹슬어 그만 끊어져버렸단다. 이참에 좋은 걸로 바꿨다고, 너도 놀랐겠다고, 이제 한숨 놓으라는 아빠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장 많이 걱정하고 놀랐을 건 본인이면서.


나는 계좌 잔고를 살펴본다. 농협통장에 7,890원, 국민은행에 93,404원. 뭐든 애매한 나라서, 가지고 있는 돈마저도 애매한가. 있는 돈 없는 돈 아끼지 않고 나에게 투자한 아빠한테 미안하다. 뭐든 잘 해낼 거라고 믿고 미술학원이며 과외며 이것저것 다 해준 아빠에게 미안하다. 어찌어찌 끌어모아 10만 원을 아빠에게 보냈다. 어떻게든 내가 보낸 돈은 받지 않으려는 아빠에게, 한사코 거절하는 아빠에게 이렇게 보내본다.


'쭈꾸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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