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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18. 2020

66. 내가 너의 절친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내가 너의 절친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그리고 그 이후로도 5년. 내 베스트 프렌드, '쪼양'과 함께한 시간들이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 같은 계열학과에, 같 동아리 활동까지.

우리의 우정은 탄탄하다 못해 정말 끈적끈적했다.


고등학교 때는 끊임없는 야자와 모의고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석봉토스트'로 달랬고,

대학생 때는 취준생이 겪는 무수한 서류 탈락과 '부모님께 가지는 죄스런 마음'도 함께 나눴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각자의 집에서 혼맥(혼자 집에서 맥주)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같이 보낸 시간이 길어서일까?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전남친, 전전남친부터 시작해서 가족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그뿐이랴?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적금은 얼마를 넣고,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내게 이유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내가 '쪼양'에게는 베스트 프렌드라는 의기양양함까지 주었다. 나를 다 내려놓고, 어떠한 가면도 쓰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편안했다.


오늘은 내 끈적한 친구, '쪼양'이 카페에 방문했다.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조양은 최근 코로나 19로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자 연차 소진 및 자택 근무의 이유로 휴가를 받아왔다. 달달한 음료를 좋아하는 조양에게 밀크티를 내왔다. "네가 만들어서 맛없을 줄 알았는데, 조오오올라 맛있네." 퍽 쪼양다운 말이다. 나는 가볍게 응수한다. "입 다물고 마셔라."


쪼양은 집안의 막둥이로 태어나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위로 있는 오빠 한 명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상전인지라, 쪼양은 중학생 때부터 설, 추석, 제삿날이 되면 전을 부쳤다. 학교에서 항상 해맑고,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쪼양은 설, 추석, 제삿날 다음날은 울면서 학교를 왔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단념해서 그런 걸까 이제 쪼양은 그런 이유로 울지 않는다. 화만 낼뿐.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취직한 쪼양은 일이 바빠 고향으로 잘 내려오지 못했는데, 번 돈으로 홍삼진액, 과일, 영양제 등등을 사서 집으로 부치곤 했다. 코로나 19로 오랜만에 집에 온 쪼양은 홍삼진액을 오빠가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폭발했다. 쪼양은 그 길로 남은 홍삼진액 스틱을 주머니고 가방에 쑤셔넣고선, 집을 뛰쳐나와 카페로 온 것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도 아직도 '남자'가 우선인 나이 든 부모님이 밉고, 산적이며, 동그랑땡이며 온갖 전을 부치느라 기름으로 얼룩진 세월이 한탄스럽고, 거기에 저항해보겠다고 오빠랑 우락부락 싸워온 지난날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난 곳 없이, 그 누구보다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 쪼양. 쾌활하고 자상한 성격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쪼양. 직장생활로도 바쁠 텐데 '본인'을 찾기 위해 기타며 복싱이며 등산이며 부단히 열심히 살고 있는 쪼양. 내가 쪼양의 친구인 게, 그것도 절친인 게 너무 자랑스러운 순간이 있다. 힘든 역경의 순간에도 침체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새삼 멋지다. 내 앞에서 홍삼진액 스틱을 쭉쭉 짜 먹는 그녀를 위해, 오늘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카페'를 운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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