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Apr 23. 2020

68. 사연 있는 손님이 많은 카페

<사연 있는 손님이 많은 카페>


전쟁 같은 취업전선,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라는 상품을 판매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나. 하는 것마다 다 애매하게만 해서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던 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전공에 대해서 아는 것도, 전문가가 되기에는 뭐든 애매하기만 했던 나.


이런 나를 판매하기 위해서 자소서에는 온갖 미사여구와 이도 저도 아닌 자격증만 마구 갖다 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공기업'에 팔렸다. 첫 입사 후 받은 사원증은 형용할 수 없는 자신감과 행복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변명하에 변해가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나는 '갑약을강'했다. 이런 내 모습에 가장 먼저 지친 건 나였고, 난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탈출한 못난 돌이었다.

* 갑약을강: 갑에게 약하고, 을에게 강하다(=강약약강)




가진 거라곤 모은 돈과 퇴직금 3천만 원, 그리고 애매한 경력이 전부인 나는 '카페'를 차렸다.

그저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라는 공간이 좋아서. 나는 대부분 직장인들의 로망인 '퇴사 후 카페'를 선택했다.

막상 카페를 열어보니 맘 같지 않았다. IMF 버금간다는 경기 상황에 후회도 해보고, 울어도 보고, 폐업신고증을 들고 시청을 갔다 되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런데 이제 '카페'는 절대 포기하기 싫은, 반드시 지켜내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늘 따스하게 손인사를 건네는 경비아저씨, 친구인지 손님인지 모를 정도로 친해진 단골들, 그리고 카페에서의 소박한 일상과 여유는 온 사력을 다해 지켜내고 싶은 내 전부가 되었다. 그리고 사연 많은 손님들.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받기 위한 손님, 차 한잔으로 슬픔을 이겨내려는 손님, 삶의 거친 풍파에 조금 쉬어가는 손님, 그 모든 사연 많은 손님들을 위해 이 공간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다.




☞ 오늘의 손님 : 인절미를 품고 온 어르신


요 며칠 봄 날씨 같더니 오늘은 이상하게 온도가 뚝 떨어졌다. 태풍 같은 바람에 문이 덜커덩 흔들린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뚫어져라 문을 바라보는데, 어르신 한 분이 문밖에서 기웃거린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으로, 남루한 옷차림에 손에는 검은 봉지 두어 개가 들려있었다.

들어오시라고 문을 열어드리지만 쭈뼛쭈뼛 서있기만 한다. 손님에게선 코끝을 아리는 알코올 향이 난다.

"어르신, 날이 너무 추운데 들어오세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갑자기 검은 봉지에서 떡을 꺼낸다.

하얀 떡고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인절미. 난데없는 떡에 당황해서 들어오라고 누차 말해보지만 듣지 않는다.

"어르신, 저 주지 말고 어르신 드세요. 지금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데, 댁이 어디세요?"

어르신은 "내가 집이 어딨어! 난 월남했어! 월남!" 지금까지의 모진 세월을 한숨에 토해내듯 외친다.


새까맣게 때가 묻어있는 손톱, XXX회사라고 적혀있는 다 헤진 점퍼, 지독한 알코올 냄새.

그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는 듯 입이 앙 다물려있었다. 눈을 마주쳐본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꼬질꼬질한 데다가 술 취한 행인일 뿐인데, 그저 피하고 싶은 사람일 뿐인데.

그 눈이 전해주는 고단함과 고통과 울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프다.

"어르신 오늘 힘든 일 있으셨나 봐요."

어르신은 그 말이면 충분했다는 듯 자그맣게 웃는다. 몸 좀 녹였다 가라는 한마디에도, 커피 한잔 하라는 말에도 손사례를 치며 떡만 내 품에 안기고 도망가듯 가버린다. 뭐가 그렇게 힘들고, 뭐가 그렇게 고단했을까? 내가 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후련한 얼굴로 돌아갔을까? 아무 사연도 모르는, 그저 휙 지나가버린 손님이지만 내 손위에 올려진 뽀얀 인절미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저 그가 잠시의 시간이나마 위로를 받았길, 잠깐의 대화였지만 위로가 되었길 바랄 뿐이다.

어르신! 어르신이 이 글을 볼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 혹여나, 혹시나, 만에 하나 이 글을 보시거든
카페에 다시 한번 와주시겠어요?
저는 그때 그 자리 그대로 동네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어요.


   



작가의 이전글 66. 내가 너의 절친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