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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23. 2020

69. 카페 사장이면서 왜 공부에 매달리냐고요?

<카페 사장이면서 왜 공부에 매달리냐고요?>


카페 한 구석에는 <독학 스페인어 첫걸음>, <중국어 HSK 6급 단어장>, <해커스 토플> 따위의 책이 쌓여있다.

심심해서 한 권, 두 권 들고 온 것이 어느새 탑처럼 가득 쌓여있다. 오늘은 무슨 공부를 해볼까? 중국어는 성조 때문에 독학으로 공부하기가 영 어렵다. 패스. 영어는 초등학생 때부터 의무교육으로 했으니,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공부했는데 왜 원어민 수준이 안되는 걸까? 시간 투자 대비 참 결과물이 안 좋다.

그런 의미로다가 오늘은 영어공부를 해보기로 한다. 형형색색 볼펜들을 꺼내어 밑줄을 긋고, 몰랐던 표현들도 암기해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손님이 한 분 들어오신다. 아! 단골 카공족 손님이다!

처음 카페에 왔을 때는 취준생이었던 손님, 지금은 직장인 그리고 이직을 꿈꾸는 이준생이다.

이럴 때면 내가 그래도 꽤 오랫동안 카페를 운영해왔구나 깨닫게 된다.

학생이었다 직장인이 된 손님, 결혼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됐다며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신 손님,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카페를 온 손님까지. 참 많은 인연을 만났구나.

만남 끝에 이별도 있었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단골손님들도 기다려진다.


카공족 손님은 계산대 뒤에 숨겨진 영어책을 보고 웃는다. "오늘은 영어 공부하시네요?"

손님에게 "다음에 오실 때는 불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말해본다.

손님은 하하 웃다가 궁금해졌는지 묻는다. "카페 사장님이시면서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세요?"

음. 왜일까. 나는 무언가를 배우면 항상 애매하게 해냈다. 뛰어나게 잘하는 게 없었다.

공부도 마찬가지 었다. 공부를 못하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언어 공부도 손대고 있지만, 정작 20년을 넘게 공부한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확신하건대 지금 하고 있는 이 공부도 결과물은 애매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공부를 하고 있으면 뭔가 즐겁다. 나중에 써먹기 위해서 정진한다기보다는,

그저 공부를 하고 있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만족감이 크다. 나는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배우기보다는, 그저 그 목적 자체로서 배움을 즐긴다. 그저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쓴다는 것이 좋다. 오로지 나를 위해 집중한다는 것이 행복하다. '카페 사장'은 나의 삶의 일부일 뿐이다. 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카페 이외의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처음 카페를 운영할 때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오면 커피를 만들고, 시간이 되면 카페 문을 닫고 집에 가서 쉬는 삶이 전부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계만 바라보고 있더라. 빨리 문 닫고 집에 가고 싶다고,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참 재미없는 하루지 않나? "아, 오늘 하루 힘들었다!" 하고 마무리하는 하루보다는 "아, 오늘도 새로운 걸 배웠다"라고 마무리하고 싶다.

아, 한 가지 꿈이 있다면 4개 국어(한국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에 능통한 할머니가 되는 거?

오늘은 카공족 손님과 함께 즐거운 공부를 시작해본다. 손님, 이직 공부 화이티잉! 우리 즐기면서 살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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