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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30. 2020

75. 구독자에게 온 메일, 잘 버티고 계신가요?

<구독자에게 온 메일, 잘 버티고 계신가요?>


카페에서의 일상은 어제와, 그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펼쳐지고 있다. 손님들을 환하게 맞이하고, 커피를 내린다. 손님들은 커피 향과 함께 각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음료를 마시는 손님들의 표정, 음악을 감상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다. 마침내 손님들이 어색함 없이 이 공간에 잘 어우러지면, 그제야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보통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또는 메일 확인을 한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구독자로부터 메일이 와있다. 생각보다 여러 번 구독자로부터 메일을 받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괜스레 수줍어지고, 설레고 긴장된다. 그저 일기 쓰듯 써 내려간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에 공감해준다는 것,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을 선물해준다. 그런데 이번 메일은 조금 달랐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해서 메일 써요. 주변에 카페에서 일하는 지인이 없다 보니까, 작가님이랑 소통하고 싶은가 봐요.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얘기가 있는 것 같아요. 실례되는 얘기겠지만 잘 버티고 계신가요? 주변에서 "카페는 여름이 성수기니까 바쁘겠네?"라고들 물어보시는데, 대답하기가 애매... 하더라고요. 멋쩍게 웃으면서 "네에.."하고 마네요ㅎㅎ.  성수기란 놈이 저희 카페만 비껴갔는지, 플레이리스트만 늘어가는 요즘입니다.


'카페'라는 공간은 참 정갈하고 여유롭다. 코 끝을 맴도는 커피 향에 귀를 촉촉하게 해주는 음악까지. 

그런데 보이는 것 이면은 항상 정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여유로워 보이는 이면에는 생계의 치열함이 있다. 한 명의 손님이, 그 손님이 지불하고 가는 음료 한 잔 값이 생활비가 되는 순간 절박해진다.

그 순간 카페는 '운영'하는 곳이 아닌, '버텨야 하는 곳'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구독자가 보내온 메일은 내게 큰 파동이었다. 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가, 혹은 버티고 있는가. 


그래, 솔직히 인정한다. 나는 버티고 있다. 카페는 '날이 더울수록 성수기, 추울수록 비수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일 년 내내 비수기였고, 일 년 내내 추웠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하루 매출로 7,600원을 벌었을 때 나는 두려웠다.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나이 먹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카페 사장이라는 직업의 정년은 몇 살일까?' 이런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마다 나는 버티고 있는 것도 '겨우 시'버티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버티고 있다고 해서 카페에서의 일이 불행하다거나, 우울하거나, 지치는 것은 아니다. '버티고'는 있지만 지금의 일이 꽤나 소중하고, 재밌고, 행복하다.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마다 이 공간을 소중히 해주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준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 이 곳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다. 다만 불행한 것은 행복하다고 해서 저절로 배가 부른 것은 아니라는 것. 그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고 슬픈 것이다.


보내온 메일에 대한 답장을 아직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을 통해 답장을 해보려 한다.

"저도 다를 바 없이 '버티고' 있습니다. 다만, 처절하고도 행복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이 삶이 고달파 보여도 절망만이 있는 '버팀'은 아닐 것입니다. 행복한 '버팀'일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란 시를 선물로 드립니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행복,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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