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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ul 16. 2020

88. 일주일에 한 번만 여는 카페

2021년부터는 더이상 버티지못해 한달내내오픈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여는 카페>


COVID19 발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단연코 이것일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삶은 이제 없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그 사실을 더 뼈저리게 느낀다. 잠시 커피를 마시러 왔다는 손님은 주변 이웃의 눈치가 보인다며, 모자와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왔다. 매장에 있는 손님들은 마스크를 내리고 커피를 마셔도 되는 건지 주저주저했다. 점점 손님들은 직접 방문하기보다 배달을 시켰다. 그런데 배달로 시켜먹는 커피는 이상하게 그 맛이 안 난다. 집과 달리 정돈되고 깨끗한 카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고유한 분위기, 그 속에서 여유롭게 한 잔 들이키는 커피. 배달시켜먹는 커피는 그 순간의 감성이 없다. 이에 손님들은 점차 홈카페를 시작했다. 가정용 커피머신을 들이고, 예쁜 잔도 찬장에서 꺼낸다. 카페에서 쓰는 파우더며 시럽을 눈여겨 봐뒀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간단한 레시피도 검색해본다. 그렇게 점차 사람들은 홈카페에 재미도, 맛도, 감성도 느낀다. 그러는 동안 점점 동네 카페는 재미도, 맛도, 감성도 잃어간다.


나는 오늘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바로, 매장 운영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것! 대폭, 아주아주 대폭으로! 어느 정도냐고? 일주일에 딱 한 번만 여는 거다. 나는 주 6일 영업에서, 3일로, 이어 1일로 영업일을 점차 조정했다. 손님들은 내게 물었다. "혹시 사장님 건물 사셨어요?" 처음 카페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카페를 취미로 하시는 거예요? 부럽다"라고 말했다.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것만으로 졸지에 부자(?)가 되다니! 나는 이 영업일 변경에 대한 이유를, 그리고 그 결심의 배경을 편지로 썼다.


안녕하세요, 애매한 인간입니다.

저는 지금껏 카페를 운영하며 제가 추구하는 이 공간의 개념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특히 임대차 계약 연장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더 처절하고, 절박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고민에 대한 답은 바로 여러분께서 내려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이 공간을 차리고, 커피를 내리고, 판매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제게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사회는 척박하기만 하다'는 제 생각을 고쳐주셨습니다.

일상에 지쳐있는 제게 당떨어진다며 건네주신 호두파이, 떡, 잡채, 파전, 과자와 주전부리들.

저는 그 입가에 감도는 따뜻함을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과 같이했던 책 읽기, 캘리그래피, 그림기리기, 코바늘 뜨기.

손님 없이 텅텅 빈 카페를 지키고 있는 제게는 작은 행복이자, 활력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이 카페를 '동네 사랑방'으로 재정의하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독서모임도 하고, 영어 팝송도 부르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지금껏 카페를 운영하며 여러분들과 나눴던 그 마음을 그대로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다음 주부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모임공간으로, 토요일은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카페로 탈바꿈됩니다. 모임은 누구나에게 오픈되어있습니다. 지친 하루를 위로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해요.

 

이 소식을 들은 몇몇은 걱정으로 가득 차서 연락을 해왔다. "아니, 이렇게 영업해서 인건비는 나와?", "일주일에 한 번여는 카페가 세상에 어디 있어?", "카페에서 모임 운영하면 돈이 돼?" 모두의 걱정과 염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 나는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랄까. 몸도, 마음도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하다. 손님들께 맛있는 커피를 내려드리고,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내 적성 분야와 전문성을 찾은 느낌이다. 드디어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바를 찾은 느낌이다. 단순히 카페를 차리고, 그 공간에서 음료를 사고파는 단순 행위를 넘어서 그 공간을 이리저리 탈바꿈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에 행복감을 느낀다. 새로운 시도를 이리저리 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찬 열정을 느낀다.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움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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