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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ul 02. 2020

87. 금어기에 투잡을 하러 간 아빠

<금어기에 투잡을 하러 간 아빠>


35년 이상 일한 직장을 내가 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닌, 나이가 차서 그만둬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자발적 퇴사를 하고 내가 원하는 카페를 차리게 된 나는 절대 모르겠지. 하지만 초조함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견디고 있는 아빠를 지켜보는 것은 참 힘겨운 일이었다. 아빠는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부터 하루, 하루를 꼬박 헤아리며 살았다. 퇴직 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불안해하며 살았다. 지게차 자격증, 소형선박조종사 자격증 등 온갖 자격증들은 아빠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려주는 상징이었다.


아빠는 결국 고심 끝에 섬으로 귀어를 결정했다. 허리디스크부터 심장 부정맥까지 온갖 병을 달고 사는 나이가 돼버린 아빠, 그런 아빠에게 힘든 길을 가지 말라 말려보지만 소용없었다. 가족의 염려와 위로, 격로만으로는 아빠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빠는 '일'을 해야만 했다. 쉬고 있는 몸뚱이는 죄악이었다.


100세 인생이라는데 남은 4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내겐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남의 집 밭일을 하며 힘들게 벌어준 학비로 다닌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다. 내가 가진 기술은 퇴보되었고, 세상이 내놓은 기술은 날로 발전하여 따라가기 버겁다. 눈은 갈수록 침침해지고 손은 무뎌진다. 경비일, 낚싯배 노동도 알아보지만 쉽지 않다. 뭔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가진 돈도, 능력도, 건강도 모두 애매하다 - 애매한 사람, 나는 아빠입니다 / 3화 '비린내 나는 아빠' 中 -


그렇게 아빠는 고심 끝에 어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주기적으로 '금어기'가 찾아왔다. 산란기나 치어기에 맞추어 어획이 금지되는 시기. 아빠는 이 시기를 못 견뎌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집에서 TV를 보고 누워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어했다.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라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몸에 익은 노동의 관성 때문에 찰나의 휴식을 '쉼'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집을 쓸고 닦고, 집에 모난 부분을 수리도 해보지만 남아도는 시간을 어쩔 줄 몰라했다. TV를 재밌게 보다가도, 순간적으로 우울한 표정을 짓곤 했다.


결국, 이런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일'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빠는 배를 타고 다른 섬에 있는 특산물 공장에 들어갔다. 쉬지 않고 컨베이너 벨트가 돌아가면, 그 위로 정렬되어 움직이는 상품들에 라벨을 붙인다. 섬과 섬을 왔다 갔다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편도 1시간 30분. 아빠는 결국 금어기 기간 동안 공장의 기숙사에 들어갔다. 캄보디아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면 공장을 청소하고, 또 일을 하고, 잠시 숙소에서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가, 또 출근한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에 아빠는 안정감을 느낀다. 나는 이런 아빠가 너무 밉고, 짜증나고, 속상하고, 답답하고, 또 비참하다. 이 모든 감정들이 갈무리되지 못하고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간다.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가는 비수들, 높아지는 언성들, 이 모든 것을 아빠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리고선 또 일을 하러 간다.


나는 아빠의 인생을 대신해 살아줄 수 없다. 일평생 일만 하고 살아 노는 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 쉬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빠의 남은 인생, 나만 믿고 살아달라고 당당하게 말할 처지도 못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의 낡은 지갑에 '취업 축하해요. 작지만 맛있는 거 사드세요'라는 쪽지와 왔다 갔다 교통비로 쓰라며 용돈을 넣어드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빠가 '다녀올게'라는 인사와 함께 등을 돌리며 떠난다. 아빠가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어깨를 토닥이며 내 마음도 다독여본다.


처음 아빠가 귀어를 결정했을 때 치열한 가족싸움이 있었다. 울고불고 떼써보고, 화도 내 보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나는 실패했다. 내 인생도 내 맘처럼 굴러가지 않는데,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아빠의 인생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아빠가 섬으로 취직을 결정했을 때도 눈물겨운 가족싸움이 있었다. 몸이 나이가 들었음을 모르는 아빠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악다구니를 써봤다. 하지만 나는 또 설득에 실패했고, 아빠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역시나 쉽지 않다고, 사람은 참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어려운 존재라고 다시 체감할 뿐이다. 나는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달달 외우고, 타지도 않을 배편 티켓을 구해 호주머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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